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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Sep 01. 2020

강아지 대식구. 1편

어쩌다 보니 다둥이 집이 되었다.

01. 처음으로 아기 강아지가 찾아왔다.


 형제가 없는 나에겐 어릴 적부터 강아지 친구들이 항상 옆을 지켜주었다.

 이전에는 항상 이웃, 지인들이 키우다 더 이상 키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성견 혹은 노견인 아이들을 주로 키워왔었기에 긴 시간 함께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나는 꼬물이 동생이 생겼다.

 모란시장 철장에서 구해온 첫째 꼬물이 뽀미는 제법 몸집이 커져서 마당에서 지내게 되었다. 목줄 없이 지냈던 뽀미는 작은 텃밭을 파헤치고 온 몸에 흙을 잔뜩 묻히는 것이 가장 큰 놀이였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절, 예상치 못했던 다른 동생이 생겼다. 그때는 흔치 않았던 품종인 포메라니안 '은비'가 내 생일에 맞춰 동생이 되었다. 은비는 아버지가 건설 현장 근처 펫 샵을 지나치다 "곧 죽을 것만 같아서" 데리고 온 아이였다. 은비는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였고 오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되었다고 하시며 대리모를 구해 수유를 해야만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은비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두 달을 병원 케이지에서 지냈다.

 두 달 만에 다시 만난 은비는 오동통하게 살이 올랐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이 꼭 인형 같았다.


인형같았던 은비


 흙놀이를 좋아했던 뽀미와 겨우 살아나 결국은 공주님처럼 자라게 된 은비. 이들은 곧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02. 다둥이 집이 되는 과정


 은비는 워낙 약한 몸으로 우리 집에 왔던지라 그 당시 귀한 것이란 것은 모조리 골라서 급여했고, 가족 모두가 행여 유리처럼 깨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다. 뽀미보다 어린 아기강아지가 찾아왔던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은비와 함께한 지 1년 정도 지났을까, 친척분 동네의 상가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버리고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은비와 같은 견종인 포메라니안이라고... 그렇게 일주일 뒤 그 아이도 식구가 되었다. 기존 이름이 "민우"였다고 해서 굳이 바꿔 부르지는 않았다. 가만 보면 그래도 그때에는 다둥이를 케어할 만큼 여력이 되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점점 대식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은비, 그리고 은비♥민우


 여기에서 끝일 줄 알았던 강아지 식구는 또다시 늘어난다. 그 당시 아버지는 건축 일을 하셨는데, 건축주 분의 강아지가 3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한 마리가 입양을 가지 않고 있어서 걱정이던 찰나에 분양업자가 사겠다고 했단다. 꼬물이를 지나칠 수 없던 아버지는 그렇게... 분양업자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집으로 무턱대고 데리고 오셨다.


 그렇게 우리 집은 막내 "금비"까지 총 4마리의 다둥이와 함께하는 가족 라이프가 열렸다.

애교쟁이 금비 ♥




 03. 꼬물이 이야기  


 금비가 우리 집으로 온 후의 일이다. 은비는 민우는 무척 좋아하고 따랐다. 당시에는 중성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었다. 중성화라는 것이 지금처럼 수면 위로 올라와있는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둔 2005년 설 명절에 3살 은비의 산통이 시작되었다. 당장 설 연휴 당일에 문을 연 동물병원은 없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를 보긴 하셨어도, 직접 출산 과정을 겪어본 적이 없으셨다.


 낑낑대는 은비를 두고 볼 수 없던 나는 열심히 "강아지 탯줄 자르는 법" 등을 검색한 후 은비 곁을 지키며 배를 쓸어주고 안심시켰다. 새벽부터 시작된 산통은 3시간 정도 지났을까. 두 마리의 꼬물이들이 아침 해가 밝음과 동시에 차례로 태어났다. 두 마리 모두 다행히 소독한 실로 탯줄을 예쁘게 잘라주었지만, 태어나자마자 숨을 쉬지 않아 입으로 양수를 빼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꼬물이들은 삐약삐약 가녀린 목소리로 귀여움을 발산했다. 아직도 그 순간의 벅참은 잊을 수가 없다.


 공주처럼 자란 은비는 출산 직후부터 새끼들을 돌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첫째는 둘째보다 한참 작은 체구와 한쪽 다리가 기형인 채로 태어났는데,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두 꼬물이들을 종일 케어해야 하는 건 어머니와 나의 담당이었다. 첫째는 점점 둘째보다 초유를 먹는 힘이 줄었고, 낑낑대는 울음도 잦아들었다.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전에 그렇게 열흘만에 강아지 별로 떠났다.


 둘째는 삶의 의지가 강했는지 첫째와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는 왼쪽 뒷다리가 온전치 못했지만 잘 먹고 잘 싸고고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저절로 나아지게 되었다.

그리운 내 자식, 장군이

 씩씩하게 잘 자라라고 "장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밝은 크림색의 둘째는 엄마인 은비를 졸졸 쫓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하는 행동도 외모도 미운 구석 하나 없는 아이였던 장군이는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고, 7개월 차에 외갓집으로 입양가게 된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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