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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Oct 08. 2020

14. 성벽 쌓기

우리 암 친구, 앞으로는 절대 찾아오지 마세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항암 끝!  저는 이제 암병원을 떠납니다! 암으로부터 자유예요!

전 암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라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렇게도 하기 싫어했던 방사선 치료는 벌써 세 번째 회차를 마쳤다. 재발과 전이를 막기 위해선 선택지가 없었다.


사실 항암보다도 이 치료에 대해 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솔직한 말로, 내 몸에 방사선을 마구 쏘아댄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지 않나.

그렇게 방사선종양학과로 향하는 내 모습에선 항상 밝고 당당했던 걸음은 온데간데없었다.

치과에 온 유치원생에게 형님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쭈구리가 되어 엄마의 오른팔에 매달린 채로 불안 초조의 대명사가 되어있었다.


“엄마, 방사선은 진짜 안 걸렸으면 좋겠다. 아니다, 하긴 항암도 했는데 무조건 하겠지? 아, 마음 비워야 되는데...”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유방외과 주치의 선생님의 말 중에 후자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분명히 종양내과 선생님도 ‘방사선 치료를 한다.’라는 전제로 몇 번을 말씀해주셨는데, 환자 본인인 나만 확정 짓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만의 희망고문에 갇혀서 일주일 전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긴장감이 무색할 정도로 막상 항암보다는 껌(?)인 치료여서 머쓱하다.


“방사선은 15회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당연히 기대감은 한순간에 무너졌지만, 예상했던 것이라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엄마는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솟구치셨는지, 눈물을 보이셨다.

아차, 내가 또 괜한 어리광으로 속상하게 만들었나 보다. 환자 본인이 모든 치료 과정을 우직하게 잘 견뎌야 하는 이유이다.


가족.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응, 네 꿈일 뿐이야.




나는 방사선 치료까지도 임상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처음 방사선 치료를 접하는 환우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시험이라고 했다. VR기기로 방사선 치료에 대한 설명과 과정을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체험하고, 두려움의 변화 정도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10-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미리 가상화면으로 만나본 치료실은 실제와 매우 흡사했고, 긴장을 낮춰주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온몸에 보랏빛 선을 긋는 설계 작업까지 마쳤다.


보라색을 좋아하긴 하지만, 막상 내 살 위에 그어지니 정육점 돼지고기 위 도장 색상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꿀꿀”

푸른빛 도는 보라색 선이 지워지지 않게, 향긋한 비누거품이 가득한 샤워타월로 뽀득뽀득 닦아내는 것도 삼가라 했다.

하지만 꼬질 해져서 혹여 퀴퀴한 냄새라도 날까 걱정에 빠진 친구를 위한 간호사 친구의 조언대로, 나는 이 선의 흔적만 남길 수 있는 정도로의 샤워는 하는 중이다.




임상시험, 이래도 참여 안 하실 거예요?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렇게 나와 같은 사례로 임상 참여를 제안받는 환우가 있다면, 꼭 임상에 참여할 것을 권하고 싶다.

다른 병원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브란스병원을 예시로 임상 참여의 이점을 보자면 이렇다.


첫째로, 항암 같은 경우에는 별도의 임상시험센터 내에 주사실이 있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항암주사를 맞으려면 대기 시간 때문에 하루 종일이 걸린다라는 말을 적잖이 들어보게 될 것이다. 그만큼 항암주사실 앞, 그리고 주사실 내에는 대기인원뿐 아니라 치료받는 환우의 숫자도 많다. 항암 후반부에 수치가 감소하여 수혈을 받기 위해 이 곳에 간 적이 있는데, 많은 인원이 몰리는 만큼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나중에는 의자에 앉아서 불편하게 주사를 맞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반면에 임상시험센터는 간격이 충분히 확보되어있는 베드와 세명의 간호사 분이 비교적 여유 있게 환자를 케어해주실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조용하다. 나는 그 덕에 매회 항암을 할 때마다 딥슬립 할 수 있었다. 또한 대기 환자도 많디 않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짧기 때문에 하루 전체를 항암으로 날려버리는 일이 없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은 외래로 항암주사를 맞는 경우에 한한 내 경험의 나열이다.


두 번째로는 치료비용의 절감이다. 나는 ‘카보플라틴+파클리탁셀’ 조합 시험군으로 선정되었는데, 여기에서 카보플라틴의 비용은 임상참여자이므로 자원받게 되었다. 회당 10만 원 상당의 비용이라 하는데, 약 40만 원의 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던 셈이다. 큰 비용은 아니지만 다른 여러 이점들을 생각하면 플러스알파 느낌의 지원이다. 그리고 임상시험약의 경우에는 대체로 많은 시험을 걸쳐 보고된 자료가 있어 안전하며, 부작용에 대한 대처도 가능하다.

(이에 대한 걱정으로 임상 참여를 꺼려하시는 분도 계신다고 했다.)


세 번째로는, 임상간호사님의 전담마크이다. 종양내과 진료 전 임상 간호사님과 먼저 대면하고, 진료실도 동행하게 되는데 이때에 혼자 진료실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의 몸 상태를 좀 더 세세하게 주치의에게 전달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놓칠 수 있는 부작용도 미리 챙겨주셔서 부작용 방지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 항암 중 응급상황 발생 시에도 무작정 응급실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임상간호사님의 도움을 받아 수월하게 병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증상들이 대해서도 바로 질문하고 답변받을 수 있는 나만의 병원 채널이 하나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심적으로 병원이 좀 더 편해진다.


네 번째, 임상시험약이 급여화되고 정식 치료약으로서의 역할을 하면 추후 나의 사례로 치료를 받는 환우에게 하나의 데이터를 만들어줄 수 있다. 이것이 임상 참여의 가장 중요한 의미로 보는데, 나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자면 카보플라틴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카보플라틴 약제는 임상시험약이기도 하지만, 크게 다른 치료약에 비해 큰 부작용이 없다고 하여 인터넷에도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많지 않다. 탁셀계 부작용은 손발 저림, 감각이상 등으로 많이 적혀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물론 많은 사람이 이약을 필요로 하진 않아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AC만큼이나 카보플라틴이 무서웠다. AC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설명하기 힘든 메스꺼움을 동반하였고, 먹고 싶은 음식은 없어지는데 비해 살은 살대로 쪄버렸다. (임상간호사님은 나에게 붓기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중 8할은 왠지 살인 것 같다.) 이때에는 산쿠소 패치도 소용이 없었고, 케어밴드라는 오심, 구토 완화 기기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적은 지표의 증상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사례로 설명될 수 있으니, 미리 부작용 그리고 항암 결과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유방암 치료 수준이 상당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는 많은 이의 임상 참여로 축적된 데이터가 많은 덕분이라고도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의 질병의 치료 수준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의료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해서 이 암이라는 녀석도 감기처럼 알약 하나에 무찌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TV광고로도 나오지 않을까. 음.. TV가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유방암, 난소암, 여성암 전문 치료약! 다나았솔!”





참, 방사선종양학과 선생님은 내 치료가 재발과 전이를 막기 위한 예방적 항암과 방사선 치료라고 하셨다.

나는 아만자지만 아만자가 아니다.

우리 암 친구, 멀리멀리 가서 다시는 오지 마세요! 정말 보기 싫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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