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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Sep 23. 2020

13. 항암 종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감정.

2020년 09월 21일. 막항 데이.

드디어 마지막 항암 주사를 맞았다.

임상에 참여하며 별도의 주사실에서 다른 환우 분들에 비해 기다림 없이 편안하게 항암을 했던 편이었다.


 주사실에 가기 전 방사선종양학과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는데, 아주 혹시 ‘방사선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역시나 헛된 바람이었다. 앞으로 표준치료를 위해 남은 것은 방사선 15회. 끝이 참 멀기도 멀다.



감사해요. 따뜻했어요.

  끝이 끝이 아닌 걸 실감한 순간 허탈함도 있었지만, 이내 막항이라는 단어에 금세 기뻐 날뛰는 심장이었다. 이런 팔불출 환자는 주사실에 들어섬과 동시에 간호사 분들께 ‘저 오늘 막항이에요!’ 라며 함박웃음으로 일관했다.

 임상 시험 센터 주사실에는 세 분의 간호사님께서 근무하고 계시는데, 친절함은 물론이고 주사실을 들어설 때부터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셨다. 그래서 주사실에만 가면 그렇게 꿀잠을 잤나 보다.

 “벌써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라는 말에는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벌써 6개월이 다 지났구나. 끝이 안 보일 것 같던 두려움에 빠져있던 시간이 무색하게 치료 전, 한 환우가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니더라.’라는 말을 할 때에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짐작이 되었다.


 무슨 일인지 한 방울 똑똑 잘만 떨어지던 약이 느릿느릿 떨어지는 듯 느껴졌다. 끝이라는 생각에 마음도 어지간히 조급해졌나 보다.

 똑.!!!!

 드디어 끝났다! 이제 초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또 뭘 해야 하지 들떠있는 나와는 반대로 주사 바늘을 빼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울먹거렸다.

 첫 번째 항암을 맞던 날, 간호사 선생님은 긴장을 하셨던 탓인지 쉽게 혈관을 찾지 못하셨고 몇 번의 시도를 실패하고 결국 다른 간호사 선생님의 손을 빌려야 했다. 그때에도 선생님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와 미안함으로 어쩔 줄 모르셨다.


 “환자분 아프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제가 다음에는 꼭 불편하시지 않게 연습 많이 할게요.”


 집에 가기 전까지 내내 미안하다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아마도 함께 계신 두 분의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에 비해 뒤늦게 경험을 쌓고 계신 듯했다. 오른팔은 곽청술로 주삿바늘을 사용할 수 없었고, 케모포트를 심지 않았던 나는 왼팔의 혈관이 매우 소중했다. 12차를 버텨야 하는 혈관이었기에 다음날 보랏빛으로 물든 팔을 보니, 처음 오셨던 간호사 선생님의 손으로는 맞지 않아야겠다 생각하고는 다음 차수부터는 양해를 구해 말씀드렸다.

 충분히 기분 나쁘셨을 수 있었을 텐데 당연히 마음 편히 맞으셔야 한다고, 본인이 너무 죄송하다며 재차 사과를 하셨었다.

 마지막 주삿바늘을 뺀 후 선생님을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지 않은가. 너무 좋은 일이라 이러면 안 되는데 괜히 못 본다 생각하니 아쉽다고. 이게 뭐라고 가슴이 먹먹했다.

 기분이 좀 나아지셨으면 하는 마음에 장난 섞인 농담을 했다.


 “저도 집 떠나는 거 같아요, 선생님. 이제 독립할게요!”


 6개월의 시간 동안 주사를 맞는 것 외에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선생님들이었다. 손수 핫팩을 먼저 챙겨주시기도 하고, 수치가 떨어졌을 때에는 어떤 음식이 좋은지, 어떻게 관리하면 좋은 지도 함께 알려주셨다.

 생각해보면 항암 치료 기간 중 단 한 번도 주사실 지겹다, 가기 싫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웃으며 왔어요? 오늘은 기분이 어떤지. 그동안 잘 지냈는지.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셔서였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감사함을 전할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누가 보면 연말 시상식인 줄 착각할 법도 하다.


 방사선 할 때에 오며 가며 만나자는 간호사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오면서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엄마, 고생했어요.”


 딸내미 하기 싫어하는 방사선에 당첨되었다고 울컥하셨던 엄마는 또 한 번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다.

 제일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딸은 그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지긋이 바라만 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나의 한때는 항암치료를 위해 내어 주었지만 되돌아보면 참 묘하게도 따뜻했다.

 한 주마다 잘 지내고 난 뒤에는 역시 이번에도 잘 견뎠어! 라며 뿌듯했었다. 이번엔 어떤 부작용이려나 두렵기도 했었고, 수치가 내려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날에는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이 답답했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흘렀고 드디어 끝을 마주했다.

누군가 나처럼 항암을 시작하기에 앞서 복잡한 두려움에 휩싸여있다면 다독이며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정말 혼란스럽고 두렵겠지만, 이것도 지나고 나니 별 일 아니더라고요. 당신은 생각보다 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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