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항암치료를 코 앞에 두고.
약 두어 달 전, "파클리탁셀+카보플라틴"조합으로 치료약이 바뀌면서 요양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는 것을 택했다. 이전에는 각각 2주씩 두 곳의 요양병원을 이용했는데, 첫 번째 병원에서는 마음 맞는 언니들과 즐겁게 지냈던 반면 두 번째 병원에서는 괜스레 마음을 열지 못하고 병실 안에서만 처박혀있었다.
본래 활동적인 성격이기에 그런 요양병원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는 철저히 금지되었으며 보호자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비록 일주일 씩 있었지만 병실 안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나를 점점 더 환자로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환자이지만, 스스로 환자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심플하게 생각해
항암치료 중 '흔흔한 아만자' 매거진의 대부분의 글은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시간이 많았던 까닭일 것이다. 외적으로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그만큼 스스로의 내면 또한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갇혀버린 듯 혼란스러웠다.
"나 자신을 1순위로!"라는 목표이자 다짐을 위해서는 주변 관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 그들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주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들은 나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관계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끔 해주었다.
A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B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C는 이런 마음으로 날 생각하고 있겠지.
내가 A, B, C 가 아닐뿐더러 그들이 될 수 없음에도 굳이 이해해보려 애썼고, 불필요한 생각들로 앞서 판단하기 급급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혼자의 시간이 주어지니 이전 버릇이 그대로 나타나더라.
조금은 시끄러운 생각들을 비워내려 배우기 시작한 것이 "명상"과 함께 하는 요가이다. 일주일에 한 번 무리하지 않고, 타인의 페이스는 상관없이 '나'만의 수련을 해왔다. 짧지만 내 안의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과 생각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 법을 익혀왔다.
그렇게 스스로 터득한 인간관계 솔루션이 "심플"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NO! 생각은 하되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자. 결국은 나의 시선으로만 상대방의 입장을 가정해보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냥 "심플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직접 묻고, 묻고 싶지 않다면 그냥 잊자.
바쁘다 바빠 현대 아만자
흔히 브라운관에서 암환자를 표현할 때는 힘없이 병실에 누워 칙칙한 낯빛으로,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역할이 많았다.
(요즘 카카오TV 에서는 '아만자'라는 젊은 환자 이야기도 있던 것 같은데 찾아서 봐야겠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암입니다."라는 선고를 받고 한동안은 억지 미소를 띠며 괜찮다, 괜찮다 세뇌시키기 급급했다. 그렇게 항암을 앞두고 두려움과 고통만을 열거한 온라인 상의 말들을 마주했고,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이 밀려들 때쯤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해버렸다.
어차피 해야 하는데 이게 별거겠어! 긍정적으로 이겨낸 환자가 될 거야.
나와 같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 밝은 기운만 주는 사람이 될 거야!
3주 간격의 항암을 할 때는 1주일 입원, 2주는 출근하는 일정을 하였고, 일주일 단위의 항암치료가 시작되고부터 일주일에 한 번 회사에 나갔다.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회사에 나간 것이 아니라, 동료들 옆에서 열정의 기운을 함께 느끼고 싶어서였다.
항암 중에 출근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에는 체력만 따라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말하고 싶다. 특히 나와 같은 젊은 환자들은 사회생활이 갑자기 중단되었을 때 사라진 소속감 때문에 오는 허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의 동료들로부터 얻는 에너지도 굉장히 큰 것이다. 다만 점점 약해지는 면역력을 위해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암환자 선고 이전과는 다르게 정적인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큰 고민 없이 선택한 것은 "성악"과 "명상요가"이다. 두 가지 모두 복식 호흡이 중요한 활동이라, 온몸을 순환하는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정적인 활동들은 낯설었지만 마음을 진정시켜 안정을 얻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요즘은 때아닌 명상 전도사가 되어있다.
암환자 이전처럼 생활할 수 있을까요?라는 걱정이 앞선 질문들에는 물론 이전과 같을 순 없겠지만, 달라진 일상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위로하고 싶다. 스스로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했던 정반대의 활동들을 하여도 지루하거나 울적하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경험과 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새롭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그 어떤 고민 없이 즐겁기만 한 일들로 7일 중 3일을 보냈다. 남은 4일 중 반은 강아지와 하루 종일 무한 산책을 반복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부작용에게 지는 날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내 바쁘게 지내왔는데, 근래에는 또 하나의 활동을 늘렸다.
기대보다 더 큰 배움을 주고 있는 활동. 이 활동은 총 10회로 이루어진 활동으로 한주에 두 번씩 진행된다. 이렇게 아만자인 내 요즘의 스케줄은 일주일이 부족할 만큼 꽉꽉 채워져 있다. 새롭게 주어지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멋진 날들인지! 시간의 소중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바쁘다 바빠, 아만자!
마지막에 언급한 현재 진행 중인 이 "활동"은 암어모델, 암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