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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Aug 31. 2023

18. modern 하게, 무던하게.

평범하고 싶어서 평범함을 선택한 특별한 ‘나’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수많은 글들의 시작을 알리는 한 줄. 그리고 라디오 사연의 가장 흔한 첫 문장.

그 평범함 속에 들어온 후부터는 아만자라는 타이틀을 꽤나 자주 잊게 된다.

출근과 퇴근, 출장과 외근, 그리고 야근.

하루의 루틴을 지켜주는 장치 역할만 해주길 바랐던 회사는 어느새 하루의 중심이자, 벗어나고 싶지 않은 우물이 되어있다.

그렇게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대표단어, ”평범한 회사원“으로 국한되었다.


평범하다는 수식어가 어떤 때에는 참 거슬리지만, 이 흔한 말은 누구나 갈망하는 삶이기도 하다.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이따금씩 들려오는 유명인들의 암투병 소식들에 ‘아 맞다, 나도 저랬지.’ 하고 멈칫한다.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오래된 과거인 듯 기억이 희미해졌다. 2, 3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위해 귀한 연차를 소비할 때에, 그제야 나만 아는 내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작지만 큰 이슈들은 항상 존재한다.

평범한 회사원, 그중에 특별한 “암경험자”이니까.

완전 관해 판정을 기대했던 3년 차 검진은 뼈전이 의심 소견을 받았고, 반갑지 않은 선물로 추가검진들을 잔뜩 안겨주었다.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 무던한 마음을 갖고자 노력했던 3년의 기간은 리셋되었고 또다시 두려움에 요동치는 날들을 보내게 했다.

스스로의 감정을 다독이지 못해, 주변 사람들까지 걱정에 몰아넣고 혼란스럽게 만든 결과는 다행히 이상 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슈들은 떠나는 사람들을 가려내는 유용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물론, 떠나보내기도 하고..

”평범한 “ 30대의 여자들은 결혼과 임신으로 인간관계가 달라진다던데, 나는 암이라는 녀석이 먼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주고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온갖 생각이 뒤섞여 회색의 인간이 되어있다.

방향에 대한 확신을 잃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고 찾는다. 과정은 평범하지 않더라도 내면이 성장하는 과정임에는 틀림없겠지.


회색의 결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느긋하게 부유하듯 삶을 대하는 여유로움을 갖는 것.

외부의 자극요소에 무던해질 수 있도록 단단해지는 것.

기질적으로 예민함이 디폴트 값인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평범한 회사원, 그중에 특별한.

누구나 각자의 비범한 경험들은 가지고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가에 따라 완성되는 ‘나’는 다르다.

경험의 긍정적 해석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온다. 해석의 차이에 따라 앞으로의 내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다.


수없이 긍정을 외쳐대는 나는 과거의 경험에서 평범함을 선택했다. 누군가 고작 평범함?이라고 한다면 당신이 가진 그 평범함을 나누어달라 말하고 싶다. 평범한 하루만큼 무던하고 평온하게 지나가는 날들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앞으로의 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있다.


오늘의 경험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이끌도록 해석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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