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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May 21. 2020

06. 가공하지 않은 빛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들 옆에서 가장 빛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이슈가 있던 순간에 빛이 나는 사람이구나 느꼈을까


첫 번째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명함을 들고 꿈을 이뤘다 생각한 때. (일)

두 번째로,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좋아했던 사람 옆에서 미래를 그렸을 때. (마음)

세 번째로, 나로서 온전히 행복한 날것의 지금. (자아)



 세 가지 정도로 추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순간들 중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가장 좋다. 편안해 보이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옆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1. 꿈을 다듬으며 빛이 났던 순간


 목표를 이뤄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어릴 적 건축 시공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현장을 다닐 때면 아이소핑크 위에서 잠이 들기도 하고, 목공 반장님, 금속 반장님 등 많은 분들이 용돈을 쥐어주셨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도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길은 즐거웠던 것 같다. 때마침 러브하우스라는 방송에서 '남궁선' 디자이너의 모습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꿈을 갖게끔 만들어주었다.

 부모님의 반대는 극심했다. 10년 전만 해도 '여자가 하기엔 너무나도 험한 일'이라 여기는 직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너무도 잘 아는 일이기에 옆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기 싫으셨을 것이다. 빙빙 돌아 어떻게든 인테리어를 해보겠다는 생각에 이과를 진학하기도, 조소를 하기도 했다. 전부 들통나버렸던 계획이지만..

 하지만 결국 나는 부모님 몰래 입학했던 대학 등록금을 빼내어, 꿈꾸던 실내건축디자인과에 등록하였고 입학 후에야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나는 여러 풍파를 겪었지만 그 와중에도 꿈을 이뤄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었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남들보다 빠르게 진로를 결정하였다는 것. 아직도 내가 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Sub-Job을 미리 생각해놓을 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한 우물 만판 다고 그 우물의 주인이 되지는 못하더라. 사랑하는 일을 직업을 삼을 때에 가장 큰 시련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 있다.


 그 많던 열정도 언젠가는 식기 마련이었는지, 이상과 다른 현실에 좌절감이 컸기 때문인지. 나의 목표는 점점 작아졌다. 식어버린 열정에 안정적인 것을 원했기에, 회사의 일개 부품과 같은 생활을 하며 몸은 편했지만 온갖 스트레스는 감내했다. 비로소 목표도 없고 성취감도 없는 이 일이 지겨워진 순간이 왔다.


가공된 빛은 마모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는 멘토들과 함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비록 0.001%의 관심만 주는 아만자인 직원이라 할지라도 공간에 대한 애착은 강하다.

 암과의 전쟁, 이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2. 온 마음을 다해 상대를 빛나게 해 준 순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면, 온 마음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 후회도 미련도 없는 시간으로 남는다.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어떻든 그때에 내가 가장 아름다울 것이고, 가장 예쁜 미소를 짓고 있으며 따뜻한 순간도 많을 것이다.


 물론 커지는 마음에는 상처도 따르는 법이지만, 마음에 둔 이와 함께 빛나는 순간을 위해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과거에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습관화되어있었다. 연인이든 지인이든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추고자 하는 모습은 '상대가 편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갈 때도 있었고, 나 또한 무의식 적으로 참아내는 상황들이 많았다. 결국 괜찮지 않아도 '나는 괜찮아' 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스스로 어둠이 되어 상대를 빛내기 위해 나의 빛을 감추었다. 나도 함께 빛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것 같다.







 #3. '있는 그대로 날 것의' 빛  


 아만자가 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것, 괜찮지 않은 것은 굳이 나서서 하지 않는 것. 내 몸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달라진 내 모습을 많은 지인들이 편안해하고 좋아해 주는 모습에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가식적이진 않았지만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했고, 트집 잡히지 않고 싶은 마음에 실수할 까 조바심 내며 항상 눈치 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가끔은 건방지기도 하고 앞뒤 없기도 하고, 정말 단순하게 하고 싶음 하자! 묻고 더블로가!라는 마인드로 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가장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젠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실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네가 아무리 못난 모습이어도, 모난 성격이어도 옆에 있어줄 사람들은 있다. 그 사람들이 곧 네 사람들이야."


 애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제 있는 그대로 날것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조금은 긴장을 풀고 못난 모습도 받아들여달라 떼써본다. 이 또한 나의 모습이니, 좀 더 솔직하고 담백한 사람으로 당신들 곁에서 함께 빛나고 싶다고 말이다.







 4월 25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폴 킴의 '우리 만남이'라는 곡이 나왔다. 인연은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말과 함께.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지나간, 그리고 다가오는 모든 인연은 소중하다.

 방송을 봤을 때 내 기억에는, 이곡은 폴 킴이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형과 헤어지면서 그분께 선물로 드렸던 곡이라고 한다. 가슴 찢기는 이별은 아니지만 솔직하게 아쉬움을 표현하는 지인과의 담담한 이별곡. 그때는 이별이었지만 이 노래의 선물로 지금까지 그 인연이 이어진다고 하니, 진심이 담긴 마음은 어떤 인연을 어떻게 이어 가게 할지 모를 일이다.






 폴 킴 '우리 만남이'


인생은 헤어지고 만나고 익숙해지고

또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고

인생은 무뎌지고 아파하며 익숙해져서

다시 그땔 그리워해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이 나이에 뭐 있겠어

즐거웠다 또 만나자 어 연락해 말해도

한동안 또 안 볼 사이

그리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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