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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May 10. 2020

05. 내 꽃의 계절과 생김새

그까이꺼 뭣이 중헌디

 지난 4월, tvN에서 2부작으로 김창옥 쇼를 방영했던 적이 있다.

 2차 항암 직전이라 제시간에 잘 잠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연 내용에 푹빠져 새벽까지 이어진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보고야 말았다.

 그는 "여러분의 사이는 어떠신가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며, 곧 나와 나 사이의 거리를 진단하는 법을 제시했다.


첫째,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지

둘째, 동물과의 교감을 하고 있는지. 이것은 곧 셀프 텔러를 수월하게 해 준다.






 #1. 나의 계절, 엄마의 계절


"꽃이 예뻐 보이는 이유는 내 마음에 꽃이 있기 때문입니다"     - 법륜스님


김창옥 님의 강연 중 내 심장을 찌르르하게 만든 문장이다. 의아하게도 지금 내 안에는 꽃이 있다.


 3월 중순,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고 퇴원하는 당일부터 "꽃이 정말 예쁘게 피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새싹이 돋는 봄내음도 코끝에 전해지고 있었다. 꽃꽃꽃, 노래를 부르는 나와는 상반되게 엄마는 항상 바쁘고 우왕좌왕 정신이 없으셨다.

 마지막 수류탄(배액관 튜브)을 제거하러 성형외과 외래를 가는 택시 안에서 또다시 나의 꽃타령은 시작되었다.


"엄마 꽃 핀 것봐, 봄 냄새난다. 저 쪽은 벌써 지고 있는 것 보니 금방 여름이 오겠어!"


"그러네,

하필 이렇게 예쁘게 꽃 필 때에 우리 딸 병원에 있어서 안타깝네.

올해는 꽃이 피는 것도, 지는 줄도 몰랐다. 언제 이렇게 따뜻해졌지"


 나는 수술, 퇴원과 동시에 모든 잡념과 근심을 털어버렸다. 속앓이 하며 끙끙대던 모든 것들에서 해방되었다. 반면에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큰 근심과 걱정, 슬픔을 안게 되었다.

 꽃은 피었지만 엄마와 나의 계절은 달랐다. 그렇게 나는 올해 엄마의 봄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내년엔 다시 흐드러지게 핀 꽃 아래에서 엄마의 꽃과 계절을 찾아드려야지. 작년 이맘때의 우리 모녀의 여행이 그립기만 하다.



2019년 4월, 정확히 이 대화를 나누기 1년전 엄마와의 도야마 여행






 #2. 신뱅울과의 교감보다 어려운 셀프 텔러


 아침에 눈을 뜨면 반려견인 나의 개동생 신방울(https://www.instagram.com/o_bangwool_o/) 은

 "언니 일어나, 배고파, 놀자, 산책 가고 싶어, 인형놀이 먼저 할까? 배변패드 좀 치워줘!! " 등등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수다스럽다. 핸드폰을 하고 있는 손을 박박 꼬집듯이 긁어 대며, 놀아달라 칭얼거리기도 한다.

 대답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 엄마와 나는 방울이와의 시간이 항상 수다스럽다.


 "착하다, 아이고 장난도 안치고 잘했네! 방울이가 제일 예뻐!"


 특별히 혼쭐이 날만한 상황을 연출하지도 않을뿐더러, 유일하게 집에서 웃음거리를 제조해내는 막내인지라 칭찬만 받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이 요물 같은 까만 생명체는 스스로 사랑스럽게 행동하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까지 알기에 어딜 가나 관심을 받기 위해 안달이 난다.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강아지 친구에게는 브레이크 없는 직진으로 기분을 표현하곤 한다. 마치 "여기선 내가 제일 예뻐야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놀자! → 오빠, 여기 나 좀 봐 → 역시 난 예쁘네 훗!



 나와 방울이 사이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나 가까운데, 나는 수년간 '나와 나' 사이를 왜 이렇게 멀리 방치해두었을까.

 다행히도 나는 이미 강연 방송을 보기 전 셀프 텔러를 시도했고, 그래서인지 나를 많이 아껴주고 있었다.

 수술 직 후, 병실 화장실 거울을 보며 힘든 시간들을 잘 견뎌온 나에게 마음속으로 괜찮다는 단 한마디 말을 전했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고, 모나지 않게 잘 견뎌주어 고맙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이 모습을 상상해보면 오글거리기도 하고 조금은 쑥스러운 장면이긴 하다.

(길진않았다 한 5초 정도?의 시간이었다.)


 방울이는 강아지임에도 가족과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기에 스스로 꽃인 줄 알고 감정을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안다.(꽃보다 예쁜 줄 착각할 수도 있다.)


 강아지도 자신감을 뽐내는 시대에 사람임에도 움츠러들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3. 안 나갈 것 같던 화분, 꽃들도 제각기 주인이 있다.


 1차 항암 후 열흘이 지난 시점에 면역력이 바닥을 쳐 감기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감기에는 취약한 항암환자이기 때문에 열이 나거나 증상이 심해질까 무서워, 부랴부랴 주말에도 문을 여는 근처 내과를 찾아 약을 지어왔다.

 금세 아픈 건 잊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꽃집을 하나 발견했다. 제발 그냥 집에 가서 쉬자는 엄마의 걱정을 뿌리치고 못난 딸내미는 홀린 듯 꽃집으로 들어섰다. 꽃집은 어버이날 기념 마크라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었고, 불편해진 팔은 무시하고 그 자리에서 예약을 감행했다. 실행력 하나는 정말 알아주는 고집쟁이 딸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마크라메를 만들었다. 수업 전에 한 시간여 동안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 꽃은 무슨 모양일까, 어떤 계절을 맞이했을까 생각하게 했다.

 모든 이에겐 한 번쯤 꽃 시절이 온다는 것, 그리고 그 시점이 지금일 수도 혹은 내일 일수도 있다는 말에 어쩌면 나의 꽃 시절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거의 다 시들어 판매되지 않을 것 같던 화분도, 예쁜데 왜 나가지 않지 라고 생각했던 꽃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제각기 주인은 있더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마음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나에게 못나 보이는 것도 남에게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일 수 있다.


오늘 입양한 반려식물 춘봉, 나에게 와서 "홍봉"으로 개명하였다. (a.k.a.홍은동춘봉)






 내 안에 항상 꽃은 있다. 들여다보지 않을 뿐이다.


 내 꽃의 모양이 장미이던 튤립이던 중요치 않다. 그 모양 그대로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된다.

 또 나의 계절이 겨울이라도 괜찮다. 겨울은 곧 지날 테고, 더 크고 화려하게 꽃 피우기 위해 잠시 움츠러들어있는 것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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