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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키 Feb 15. 2024

다키와 음식

요즘 식탁에만 앉으면 옆에서 낑낑거리는 뽀르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말그대로 눈칫밥을 먹고 있다. 아내가 오늘 저녁을 먹는 중에 "다키가 없어서 뽀르가 더 심해진 걸까" 의문을 제기했는데,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키라면 뽀르처럼 낑낑거리지 않고 씩씩댔을 것 같긴 한데, 다키가 없어서 뽀르가 더 어리광이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키를 보내면서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정확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더 정확하게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분명한 태도로 행동에 옮겼다면 나았겠다' 하는 후회는 다키를 떠올릴 때면 세트가 되어 따라붙는다. 다키가 떠나는 날 뿐만 아니라, 오늘처럼 부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다키가 있을 때는 어땠었나'를상상해야 하는 나로서는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다키와의 일상이 참 아쉽다.


흐릿한 기억을 아무리 뒤져도 다키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는 부분이 큰 후회 중 하나다. 다키는 고구마를 좋아했지만, 모든 강아지가 고구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꼽기에는 너무 성의 없는 접근이 아닌가 싶어서 고구마를 꼽을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다키는 편식이 심한 강아지였다. 주면 주는 대로 모두 먹는 먹성 좋은 뽀르와 달리, 입이 짧은 다키는 음식을 가렸다.


예를 들어 다키는 브로콜리를 먹지 않았고, 과일도 잘게 썰어서 주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큼직한 과일을 시도도 하지 않을 때를 보면, 세상 그런 요조숙녀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까탈스러움이 마냥 귀엽고 우스웠다.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는 뽀르를 보다가 앙증 맞은 다키를 떠올려보면 이것이 딸 키우는 맛인가 싶기도 하다.


다키는 야채나 과일에 비해 고기는 확실히 좋아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키랑 뽀르가 베란다에 배변패드에 쉬를 누면 작은 육포 조각 간식을 주었는데, 다키는 쉬를 누고 나서 꼭 챙겨 먹곤 했다. 행여 잘 쌌는데 우리가 놓치고 주지 않으면 씩씩대면서 받아 먹었으니 고기를 제일 좋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육포 간식은 큼직해도 곧잘 받아 먹었고 아무리 커도 두 손에 꼭 쥐고 뜯어 먹었다.


간식과 관련해서는 내가 두고두고 심장을 쓸어내리는 일화가 있는데,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뽀르 생일 케익을 다키와 뽀르에게 급여했는데, 케익의 양이 많았다. 전날 먹고 남은 케익이 상하기 전에 줘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주었던 것이 쿠싱 증후군을 앓고 있던 다키에게 급성 췌장염을 일으켰다. 급여한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여기저기 토 자국이 남은 집안과 계속 토를 하는 다키를 데리고 24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모든 악재는 겹쳐서 온다고,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배터리 수리 출장을 부랴부랴 부르고 차 시트에서도 연거푸 토를 하는 다키를 안고 퇴근한 아내와 병원으로 달렸다. 운이 좋게 잘 회복해 준 다키는 초보 견주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긴 했다.


내가 처음에 다키를 만났을 때는 사료도 잘 먹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건 성치 않은 이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키는 노견치곤 이빨이 많았지만 성한 이빨이 많지 않아서 스케일링을 하면서 10개 가량 발치를 해야 했다. 강아지도 스케일링을 하는지 몰랐던 나는 의외로 발달한 강아지 치과 의료 서비스에 감탄했다. 하지만 곧 수술 후 이빨이 사라져 삐뚤어진 입을 한 다키와 함께 나온 10개의 이빨을 보면서 나오는 눈물을 혼자 억눌렀다. 노견들은 불편한 이빨을 갖고 있는 것보다 쓸만한 튼실한 어금니를 갖고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수의사분의 말을 들으면서도, 가지런히 놓여진 셀 수 없는 이빨들이 꽤 충격적이었다. 안쓰러워 하는 내 마음과 달리 다키는 흔들리는 이빨들이 사라지고 나니 식욕도 전보다 왕성해졌다. 저지방인데다 쿠싱 약까지 얹어져서 맛이 없었을 텐데, 사료도 곧잘 먹었다.


다키의 식사 절차는 꽤 길었다. 사료를 담고 쿠싱 약을 뿌리고 물을 말아 줘야 했는데, 앞니를 뽑은 이후로 가루약 때문에 밥 먹을 때 기침을 했기 때문에 물을 말아서 먹여야 편하게 먹곤 했다. 밥 그릇을 놓아주면 다키는 사람 얼굴을 한참 보다가 먹곤 했는데 왜 그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다키의 식사 의식은 '밥이 놓인다 + 먹는다'로 이루어진 뽀르에 비해 더 복잡했다.


식욕이 왕성해졌다고는 하나 다키는 빈도는 줄었지만 가끔 밥 투정을 했다. 다키가 밥 투정을 할 때면 옆에 있어주면 안심을 하였는지, 아니면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미안해서 였는지 밥을 먹곤 했다. 매번 다키 케이지 옆에 붙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나름의 묘수로, 다키의 식사용 케이지를 우리 얼굴을 잘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옮겼다. 지금 생각해도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밥을 먹던 다키의 습관을 고려해 위치를 옮긴 일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 편하자고 옮겨둔 그 케이지가, 다키가 떠난 다음 날 뽀르의 밥만 챙겨주면서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해준 게 변변찮다 보니, 밥이라도 잘 먹여보겠다는 것이 좀 부끄럽고 미안하고 그랬던 것 같다.


가끔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으면 다키의 시선이 그리울 때가 있다. 다키는 내가 밥 먹을 때 가끔 식탁이 보이는 큰 방에 멀찌감치 앉아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줬었다. (물론 옆에서 씩씩대던 적이 더 많았지만...) 간단한 밥 한 끼 먹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면, 다키가 공존하던 식사 자리를 더 정확하게 기억에 담을 걸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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