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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i aber Einsam May 28. 2020

나는 성공보수로 후라이팬을 받았다

작년 여름쯤의 일이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만난 그는 아주 장황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폭행하여 온 얼굴에 멍이 들도록 한 사건이었고 존속상해로 결국 구속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라는 분이 연락을 해왔다. 엄마를 때린 아들이라 사선을 선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국선으로 맡은 사건이었다. 그 분은 아들을 용서하니까 빼내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로부터 필요한 서류를 받고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병이 있어서 그런 것이고 평소에는 그런 아들이 아니니 선처해달라(실제 정신병이 있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셨다. 글자는 삐뚤삐뚤하고 맞춤법도 다 틀린 70대 노모의 글이었다.


아들은 범행을 모두 자백 , 인정하고 피해자인 어머니의 용서를 받아 선처를 바라는 방향으로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피고인은 구치소에서도 장황하게 말이 길었고, 자신과 어머니 사이에 발생한 그 사건의 경위를 길게길게 써서는 그걸 재판부에 제출하겠다는 것이다(엄마가 먼저 나를 유발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말렸지만 소용이 없어서, 그걸 빼앗다시피 가지고 왔다. 내시면 안된다고. 우리는 전부 인정하고 반성하시는 거라고.


법정에서 나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왜 피고인들은 법정에 오면 자주 의견이 바뀌는 걸까? 법원에 수맥이 흐르는 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공소사실의 내용을 다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장이 갑자기 스크린을 내리더니 공소장을 거기에 띄우는 것이다. 그리고는 "피고인,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는 겁니까. 한 번 봅시다." 라면서 공소장을 한 줄 한 줄 확인하시는 것이었다. 재판장이 어금니를 깨물고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난 형사재판에서 그런식으로 공소장을 스크린으로 띄우고 한 줄 한 줄 확인하는 건 처음 봤다.

근데 피고인은 거기서 또 한 줄씩 본인이 각색한 내용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망했다 싶었다.

잽싸게 피고인을 진압(이쯤되면 거의 진압이다. 때릴뻔했다)하고,

"그게 아니고 피고인은 정신병이 있어서 일부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공소사실은 전부 인정한다는 취지이다." 라고 마무리를 했다. 아 부질없었다. 피고인 최후진술에서 피고인은 또 줄줄줄 할 말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재판부에 내면 안된다고 내가 뺏었던 글을 다시 곱게 써와서는 제출했다.


징역 2년이 나왔다.

판결문의 판단부분 첫줄은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고 있다." 였다.


피고인의 어머니가 울면서 전화가 왔다. 항소심(2심)을 가야겠는데 사정을 모두 아는 너를 선임하고 싶은데 난 돈도 없으니 싸게 선임료를 받고 해달라는 것이다(난 1심만 국선이 가능하다). 사실 그 분은 건물주였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엄마 또래인 그 분의 하염없는 눈물에 또 이성을 잃고 기본 선임료만 받고 수임을 했다.


그리고는 그 어머니는 거의 정말 매일매일 전화를 해오셨다. 문자도 하시고, 내가 무슨 그 어머니가 열심히 믿으시는 하느님의 그 바로 아랫자리 급 정도 되는 사람처럼,

"제발 우리 아들좀 풀어주세요."라고 하시며 우시는데, 당할 도리가 없었다.


구치소로 가서 피고인을 다시 만났다.

피고인에게 "이럴때냐, 반성문을 써내라는데 도대체가 왜 안써내는 거냐. 멀 잘했다고 재판부에 와서 헛소리를 하는거냐. 전부 인정하는 거였지 않냐. 그러면 엄마를 눈탱이 밤탱이 되게 때린 사실이 변하냐. 왜 그러는거냐." 라고 화를 냈다.

피고인은 누나 둘을 낳고 어머니가 어렵게 낳은 아들이었다. 우리 엄마도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낳으셔서 그 시절 아들에 대한 모정이 어떤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피고인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그 어머니는 매일 전화가 와서인지 그냥 내 동생같은 맘이 들면서도 콱 한대 강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피고인은 "변호인 선임료를 얼마를 받았냐."라고 물었다. 그걸 대답안 해주면 자기는 나랑 항소를 못한다는 것이다. 왜 궁금하냐고 실랑이를 하고 난리를 치다가 말해줬다. 그는 전과가 있는 자였으므로 이전의 변호사 선임료를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고, 듣고보니 무척 싸서 더는 말을 안하고 싸인을 했다.

나는 기세등등하게도

"피고인이 좋아서 이 사건을 맡은 게 아니에요. 어머니 때문에 맡은 거고, 어머니를 위해서 열심히 이 사건을 할 겁니다.  피고인땜에 열심히 하는 건 아니에요.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유치하기 짝이 없다)."


이후로도 어머니가 우시면서, 아들좀 만나러 가달라고 하면 꾸역꾸역 너무나 자주 그를 만났다.

이 사건 진행중 수술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신청까지 했고, 세상에 받아들여져서 나와서 수술도 받았다. 전 대통령도 잘 안해주는 구속집행정지니까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했더니 피고인은 왜 안되냐고 남들은(감방의 친구들) 다 된다고 했다며 따지질 않나, 서류를 열심히 써냈더니 재판부에서 뭐 하나 더 내라고 해서, 부랴부랴 그 서류를 준비했는데 사무실이나 피씨방에라도 가서 커버를 작성해올 시간이 안되서 "궁서궁서체"로 손으로 글을 써서 작성해 제출하기까지 했다. 근데 신기하게 받아들여졌다(이 모든 것이 나의 궁서체 덕이라고 주변에서 놀렸다).  그 이후에는 피고인이 다시 보석신청을 하라고 해서, 구치소가서 피고인이랑 대판 싸웠다. 인정사정없이 욕을 해주고 왔다.

"왜 저를 혼내십니까. 저는 애가 아니에요."라고 피고인이 말할 정도였다. ㅋㅋㅋ


항소심 재판에서, 정말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최후변론을 했다.

난 변호사가 아니라, 변사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쩔수 없었다. 연세가 있어보이시는 항소심 재판장님을 바라보며 집중적으로 감정적 호소를 했다.

"피고인의 어머니는 딸 둘을 낳고 어렵게 얻은 아들이, 정신병력이 기록에 남아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될 까봐 병원을 보내지 못한 본인을 탓하면서 매일 본 변호인에게 전화와서 우시면서 .......어쩌구.....피고인도 깊이 반성을 ...."

마침 내 변론에 맞추어 어머니와 피고인인 아들은 거기서 거의 대성통곡을 했다.


재판장께서 "양형조사관"을 한번 보내보시겠다고 하셨다. 양형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진짜 있는지 전문가를 보내서 관련자들을 만나고 확인하시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재판은 길어졌지만 정말 우여곡절 끝에(할왕많하않), 피고인은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었다.


다음날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다. 

너무 고마워서 선물을 보내고 싶으시다는 거다. 난 극구 사양을 했는데, 안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그런 배은망덕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어머니, 저 금은보화로 주세요. 크고 번쩍번쩍한 것으로."

그랬더니 어머니는 크게 웃으시면서 꼭 그러마 약속을 하셨다.


며칠후, 사무실에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열어보니 후라이팬 하나와 찜기 하나가 있었고, 보낸 사람에는 삐뚤빼뚤 어머니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번쩍 번쩍 광나는 찜기와 후라이팬을 보내셨으니, 약속을 지키신 거다. 게다가 혼자 그 무거운 것을 들고가서 직접 우체국택배로 보낸 걸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전화를 드렸다.

" 후라이팬은 우리 변호사님 드리는 거라 비싼거 보냇어요. 그리고 전자렌지에 음식 돌려먹으면 몸에 나쁘대. 찜기에 밥 쪄서 먹어. 위에 얇은 면포를 깔고....."

나는 세상에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닌가.


2만 5천원 스티커가 붙어있는 후라이팬이 고가인, 많이 못배우시고 애껴쓰고 열심히 일하시면서 돈은 많이 모아 건물주이신 그 어머니는, 본인을 마구 때렸던 아들과 함께 밥해주고 살고 싶으시다고 그토록 나에게 매일 매일 전화를 해서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온갖 버전의 얘기를 다하고 어떤 날은 시같은 글을,어떤 날은 심정을 담은 기도를 보내오시는데, 피고인은 철이 없어서 내가 맨날 화를 내야했다. 사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사건이었다.


정신병인 아들이 부모를 때리고 붙잡혀 온 여러 사건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는 없었다.

부디 그 어머니가 건강하게 효도를 받으시며 남은 인생 행복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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