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미션스쿨에 다녔다. 정확한 과목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종교교육이 있었다. 일주일에 1시간씩 배워야 했다. 물론 전교생이 참여하는 체육관 예배도 있었다. 지금 떠올려 봐도 무엇을 배웠는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교수법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결국엔 이야기인데, 야훼의 신성(神性)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이제 막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사춘기 무렵이라,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야훼의 신성이라니! 멀어도 너무 멀지 않는가.
가령 이렇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며 아벨은 최초의 피살자이다. 야훼는 카인에게 영원히 떠도는 징벌을 내렸다. 무섭지 않은가? 두렵지 않은가? 그러니 야훼의 뜻을 좇아 야훼를 섬기며 살아야 한다. 너무 뻔한 스토리지 않는가? 철없이 천방지축 날뛰던 사춘기 무렵에 살인이라는 어마어마한 관념에 맞닥뜨리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주눅 들 수밖에 없고, 찍소리 하나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어마어마한 협박이다.
그러나 이야기로 봤을 때, 상황은 전혀 다르다. 야훼는 노골적으로 카인의 십일조를 탐탁잖게 여겼다. 반면에 아벨의 십일조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우스갯소리로 야훼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육식주의자인 셈이다. 어쨌든 당연히 카인과 아벨 사이에서 누가 더 아빠에게 이쁘게 보이나 식의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카인의 시기와 질투는 절정에 달해, 급기야 해서는 결코 안 되는 살인을 저지른다. 야훼는 전지전능하기에 많은 독재자가 그렇듯 무결점 무오류의 존재로 카인과 아벨 위에서 군림한다. 자신의 이익과 편애가 낳은 살인임에도 카인에게 덤터기를 씌운다.
당연히 형제 살인, 또는 동족상잔은 유구한 전통으로 대대로 내려왔다. 근세사에 동학혁명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한국전쟁이다. 정적을 골로 보내는 정치사는 새 발의 피다. 김구(1876∼1945)의 암살이라든가 장준하(1918∼1975)의 이해할 수 없는 추락사, 김대중(1924∼2009)의 납치 및 수장 미수 사건 등등은 한국전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여전히 전쟁 와중에 잠시 한숨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감자다.
역사이기 이전에 한국전쟁을 이야기로 살펴보면 어떨까?
카인이 아벨을 향해 총을 쏘아댄다. 탱크가 밀물처럼 들이닥친다. 야포도 쉬지 않는다. 삽시간에 개성, 연천, 동두천, 의정부까지 점령한다. 그야말로 따 놓은 당상이다. 비록 지천으로 널린 아벨의 시체가 뜨거운 6월의 햇살에 썩어가고 있을지언정 카인은 멈출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다. 야훼는 어디에 있는가? 카인은 3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샴페인을 터트린다. 수도를 점령했으니 이미 끝났다고 여긴다. 카인은 3일의 파티를 끝내고 곧장 남하한다. 천안, 충주, 대구로 이어지는 숱한 아벨의 시체들. 낙동강 기슭에서 카인과 아벨은 마지막 혈투를 이어간다. 야훼가 느닷없이 계산기를 두드린다. 카인이 자신의 이익을 빼앗고 있다는 의구심이 산술적으로 확신으로 바뀐다. 아벨에게 관심도 없더니 갑자기 편애다.
기아에 허덕이던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은 졸지에 후방 보급기지로 떠오른다. 셋의 탄생이다. 쏟아지는 달러를 날름날름 받아 무기 제조에 필요한 중공업을 일으키고, 경제 재건을 위한 엄청난 힘을 쌓는다. 카인과 아벨의 싸움으로 패전국의 설움을 단번에 씻어내고, 물밑에서 점령국의 자존심을 조금씩 곧추세운다. 카인을 필생의 은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벨의 죽음으로 아담과 하와는 물론이고 야훼에게서 이쁨을 독차지한 셋이다. 식민지를 잃었지만, 오히려 잃어버린 식민지 덕을 톡톡히 본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셋은 아벨의 죽음 이후에 태어났을 뿐이라고 한다.
아벨은 등 뒤로 숱한 아벨의 시체를 남겨두고 3∙8선을 넘어 북진한다. 이윽고 압록강 강변에 도착해서 수통을 허리춤에서 꺼내 강물을 담는다. 누군가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은 오래도록 남아 한국전쟁 사진 전시회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뜬금없이 야훼에 대항하는 타락 천사 루시퍼가 나타난다. 전선(戰線)은 여지없이 남쪽으로 밀리고, 한반도 허리에서 지루한 소모전이 이어진다. 카인의 등 뒤로 숱한 카인이, 아벨의 등 뒤에 숱한 아벨이 시체로 썩거나 비명(碑銘)도 없이 야산에 묻혀있다.
야훼가 보시기에 이만하면 주거니 받거니 했으니, 휴전을 선언한다. 타락 천사 루시퍼는 옳다구나, 맞장구쳤다. 카인 역시 식겁을 먹은 터라 휴전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벨은 못마땅하다. 셋도 불만이다. 한참 달러 맛을 보기 시작하는데, 그만 싸운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러나 야훼에게 대들지 못한다. 밑천 두둑하게 챙겼으니 입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훗날 많은 만담꾼이 야훼가 지도를 펼쳐놓고 3∙8선을 긋는 탁상행정이나 대책 없는 철군(撤軍)이, 혹은 셋의 대한제국 합병이 한국전쟁의 원인이라고 지목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태초에 카인의 형제 살인이 있었음을. 하여,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음을. 허접한 글이 춘천 누님에게 위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