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라는 용어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사실주의’의 행주치마 끈에 꼼짝없이 묶여 있는 셈이었으며, 졸라 역시 그의 미술 평론에서 암암리에 이 두 말이 사실상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가정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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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졸라의 자연주의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 글 역시 스스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글의 전개 과정에서 연구자의 창의력이 스며들 곳은 그다지 많지 않고, 오직 텍스트의 충실한 읽기만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충실한 읽기는 독서 행위자의 지적 경험이 총동원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동적이며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자세를 지키지 않을 경우 쉽게 오독의 함정에 빠지거나 주관적인 해석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인 자세를 지킨다 해도 완전하면서도 동시에 충실한 읽기를 획득할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문학의 객관성은 과학의 객관성과 다른 종류의 객관성이며 실험이나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사실도 그 상황이었다면 어쩔 수 없어, 라는 식으로 객관적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문학의 중심에는 인간이 놓여 있고, 과학의 중심에는 실험으로 검증되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객관적 사실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얼마간의 오독을 감수하면서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에 대한 기본 텍스트를 중심으로 하여 샴쌍둥이와 같은 사조라고 불려지는 두 사조의 변별성과 공통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본 텍스트로 삼은 책은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된 문학비평 총서인 리얼리즘과 자연주의이다. 또 하나 덧붙일 것은 자연주의는 졸라의 자연주의에 국한시켜 논의하는 것이 개념의 명징성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라마다 자연주의의 개념이 서로 다른 데다가 존 스타인벡(John Emst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鋪道)」와 같은 작품을 자연주의 작품으로 분류하는 미국의 경우처럼 자연주의의 적용 범주나 인식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보다 자세하고 섬세한 논의는 논외(論外)로 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비교적 용이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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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주관적 의미 부여의 행위가 완전히 배제될 수 없음은 문학이 궁극적으로 개인의 세계 인식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며, 얼마간의 오독은 연구자의 선입관이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공통적으로 철학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리얼리즘이란 말은 哲學으로부터 차용하여 비로소 비평 용어가 되었다. (……) 이 단어는 원래는 관념론에 봉사하였고 普遍槪念 (正義, 善 등등)이, 그들이 발견되는 특정의 객체와는 상관없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스콜라 哲學流의 이론을 기술하는 데에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 단어는 槪念論(보편개념은 정신 속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한 생각)과 唯名論(보편개념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한 주장 ; 그것들은 단지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음)에 대항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8세기 (……) 이 단어는 지각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객체이고 이를 인식하는 정신 밖에 있는 현실적 존재라고 주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理念은 모든 형태의 관념론과 대립되는 것으로 발전되었다.②
사실주의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분명한 구분을 앞세우고 있다. 따라서 의식의 작용인 관념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물질이나 자연 등의 실재(實在)를 인정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다만 인식 주체의 정신에 있는 관념뿐이라는 관념론과 대립하게 되었다. 관념론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너를 꽃이라고 이름하였을 때만이 꽃인 너는 존재하는 것이고, 사실주의는 꽃이라고 이름하지 않아도 꽃은 존재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때 꽃은 사물이 아니라 기호화된 관념으로 읽어야 한다. 물론 사르트르가 지적했듯이 시인은 꽃이라는 언어를 사물로 보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이러한 논쟁은 겉으로 볼 때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 있으며 서로에게 무슨 영향이 있느냐고 퉁명스러운 대꾸를 할 법도 하지만 무게 중심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이기주의자 egoist와 이타주의자 altruist의 차이만큼 세계 인식의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즉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이 독립되어 있다고 볼 때 나와 인식 대상 사이에는 긴장이 생기고 관계가 생기며 갈등이 있으나 내가 인식하는 모든 대상은 이미 내 안에 있다고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일 뿐이다. 크게 보면 전자는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며 인간은 진화한 존재라는 진화론과 맥이 닿아 있고, 후자는 인간의 운명은 이미 결정지어졌기 때문에 운명에 순응해야 하며, 모든 것은 신의 손안에 있다는 창조론과 맥을 같이한다.
원래 ‘자연주의’란 유물주의 materialism, 쾌락주의 epicureanism, 혹은 여러 형태의 세속주의 secularism를 뜻하는 것으로 고대 철학에서 사용되던 말이며 (……) 18세기 자연주의는 인간을, 可知的인 현상 세계, 즉 자연을 규제하듯이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하나의 우주적 기계, 간단히 말하면 초험적, 형이상학적, 신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우주, 그 안에서 (인간은-연구자주) 홀로 생을 영위해 가는 것으로 파악하는, 하나의 철학 체계인 것이다.③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신앙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믿음은 당연히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나 낭만주의자들의 이상(理想)에 대한 외면을 일반적인 경향으로 가지고 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할 수 있는 신이 없는 우주에서 홀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들은 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와 의미 부여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철학 체계가 자연주의였다.
여기에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신(神)에 대한 입장이 같다는 것이다. 즉 사고 체계의 중심에 신이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다. 헬레니즘이 인간 중심의 사고 체계이고 헤브라이즘이 신 중심의 사고 체계라면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한 핏줄처럼 헬레니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모토로 인용한 구절에서도 자연주의가 사실주의의 행주치마 끈에 묶여 있는 이유를 이 점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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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다른 이름인가, 혹은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와 다른 독립된 사조인가 하는 논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분분하게 논의되어 온 문제인데 이 점에 관하여 두 가지 시각을 상정할 수 있다. 하나는, 자연주의는 과학적 태도를 가진 사실주의(模寫的 寫實主義)로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주의와 다른 차원에 서 있는 독립된 문학 사조라는 입장이다. 어느 쪽이든 졸라의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변별성은 자연주의가 유전과 환경이라는 과학적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사실주의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선입관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의 객관적 재현과 작가의 상상력에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비록 졸라가 변이설(變移說)을④ 이야기 했으나 어찌보면 이는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연주의의 과학적 태도는 움직일 수 없는 자연주의의 특징이다.
자연주의는 미술에서 먼저 사용되었다가 문학에 적용되었다. 즉 가능한 한 실재 대상물을 화폭 위에 고스란히 옮겨 그리는 일련의 유파를 지칭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사적(模寫的) 사실주의(양심적 사실주의)의 입장이었던 것인데 이러한 자연주의가 문학에 도입된 것은 프랑스에서였다.
자연주의라는 용어가 마침내 문학비평 분야에 도입된 것은 미술 분야로부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틀림없이 졸라 Zola의 <떼레즈 라껭 Thèrèse Rqcquin; 1867> 제 2판 서문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⑤
졸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무장한 자연주의를 문학에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연주의 문학작품을⑥ 쓰기도 하였다.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졸라가 끌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의 『醫學의 科學的 硏究 序說 Introduction à l‘étude de la médicine expérimentale』이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의 『실험소설론 Le Roman expérimental』의 기초로 삼았던 것은⑦ 재삼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이는 졸라가 과학적 방법이 문학에 적용될 때 문학은 과학이 이루고 있던 (당시는 과학의 대발견 시대였다. 온갖 종류의 과학적 발견들이 연일 쏟아졌으며 이러한 발견들은 즉각적으로 산업의 융성을 가져왔다.) 성과를 거두리라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졸라가 그런 성과를 기대하였건 하지 않았건 오늘날에도 졸라流의 시도가 전혀 없지 않은데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독자성과 변별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결과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자연과학은 인문학과 전혀 다른 학문적 기준과 연구 영역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곧 연구 대상의 차이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중심에 놓이거나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영역이다. 역사학이나 인류학, 철학이나 사회학은 비록 부분적으로는 과학적 방법론을 원용하거나 차용(借用)하고 있으나 자연주의의 선입관과 같은 것들은 없다. 자연과학은 연구 대상이 자연이다. 그런 면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변별성은 충분히 획득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한 영역인 문학에서 그 연구 대상은 인간이나 방법론이 자연과학적일 때에는 어떨까? 오늘날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러한 방법론과 대상 사이의 불균형은 자연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졸라가 이론을 세우고 이론에 따라 실제로 쓴 『떼레즈 라껭 Thèrèse Rqcquin』은 자연주의 소설의 표본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이 소설은 낭만주의와는 전혀 다른 인간관을 보여주고 있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즉 낭만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상(理想)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졸라는 그와 같은 입장을 버렸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小說은 떼레즈와 로랑 laurent 사이의 불륜의 관계, 익사 사고로 위장된 그녀의 남편 까미으 Camille의 살해, 그리고 결국은 이중 자살로 끝을 맺는 그들의 悔恨에 관한 이야기이다. (……) 떼레즈와 로랑은 사고와 감정과 양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육체와 피와 신경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유기체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소설의 서문에서 졸라는 이들은 영혼이 없는 동물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⑧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자연주의의 가시적(可視的) 세계에 대한 신앙적 믿음 - 도덕적 불감증과 인간에 대한 평가절하의 태도, 나아가 일체의 존엄성이 거세된 동물로서의 인간의 초상은 자연주의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고 동시에 온갖 비난의 화살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결과를 불러들였다. 그렇다면 자연주의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바로 자연주의가 과학의 대발견 시대에 잉태된 사실과 관계가 깊으며 졸라의 개인적 성향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즉 다윈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자연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다윈의 이론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중요한 단일 형성 요인이다. 자연주의자들의 인간관은 인간이 하급 동물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윈의 견해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낭만주의자들이 인간을 이상화한 데 대조적으로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으로부터 보다 높은 열망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을 동물적 차원으로 끌어 내렸다.⑨
졸라를 중심으로한 메당 그룹 Le Groupe de Médan의 회원은 폴 알렉시스, 앙리 쎄아르, 레옹 에니끄, J.K 위스망스, 기 드 모파상인데 이들이 프랑스의 자연주의를 주도한 사람들이었다. 즉 자연주의는 하나의 문학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메당의 저녁 모임 Les Soirées de Médan』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 Boule de Suif」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작품성이 없다.
하지만 사실주의는 문학 운동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사실주의는 자연주의보다 한층 애매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골치 덩어리이다. 사실주의는 포괄적 견지에서 문학에 대한 하나의 자세라고 말하고 싶은데, 자세를 정의하기란 보통의 인내로는 감당할 수 없을 듯 하다. 왜냐하면 사실주의는 자연주의에서의 졸라과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 없으며 또한 문학운동을 통하여 구체적인 이론적 윤곽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텍스트에서 읽을 수 있는 사실주의의 명칭을⑩ 보아도 정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연주의 운동을 통하여 사실주의는 보다 심화되었다는 견해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어쨌든 각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실주의가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쓰여지고 있으며, 텍스트에서 실제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양심적 리얼리즘’과 ‘의식적 리얼리즘’이고 소단원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저자인 Damian Grant가 진리 탐구에 대한 두 가지 이론, 즉 대응 이론과 통일 이론에 주목해서 대응 이론을 사실주의의 양심으로, 통일 이론을 사실주의의 의식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진리는 지각하는 과정으로 통해 발견된다는 것이 대응 이론이며, 만드는 과정으로 창조된다는 것이 통일이론이다.)
이렇게 많은 사실주의를 자연주의와 비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교의 의미조차 상실하고 말 것이 분명하므로 자연주의를 잉태한 양심적 사실주의(模寫的 寫實主義)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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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사실주의는 자연주의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비롯되었다. 화가 Courbet가 1855년에 낙선한 그림을 전시장 입구에 전시하며 레알리즘展이라고 이름 붙었으며, 소설가 Champfleury는 1857년에 평론집을 발간하며 책이름을 『<르 레알리즘 Le Réalisme』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이 단어에 정치적 · 철학적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즉 양심적 사실주의를 1848년의 혁명의 와중에서 터져나온 많은 ‘主義的 宗敎’ 중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후에 어느 정도 정리된 양심적 사실주의의 개념은 아래와 같다.
문학의 양심으로서의 리얼리즘은 현실 세계에 대해 즉 그가 무조건적으로 스스로의 몸을 의탁하는 현실 세계에 대해서 모종의 의무, 모종의 보상의무를 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George J. Becker가 그의 서론에서 “현실이 무엇이건간에 그것이 예술작품과 동일한 것이 아니고 그에 선행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렇다면 리얼리즘은 모종의 방법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의 환영을 표현하려는 예술형식의 하나이다” 『近代리얼리즘 文學文獻 p.36.』라고 썼을 때 그는 명백히 이 양심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⑪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의 환영을 표현하는 이러한 사실주의는 극단적인 모사적 사실주의로 흘러 작중인물의 숨소리나 발자국 소리까지도 충실히 재현한다. 모사적 사실주의는 곧 자연주의를 잉태하는 모체母體이기도 하다. 졸라는 자연주의와 양심적 사실주의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였지만, 엄격히 이 둘은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즉 사실주의는 문학 운동이 아니며 동시에 하나의 방법론도 아닌, 보다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Damian Grant는 아래와 같이 이 둘을 구분하고 있다.
리얼리즘은 철학으로부터 유래하여 어떤 대상을 기술하고 현실적인 것을 성취하는 것임에 반하여 자연주의는 자연 철학 내지는 자연과학으로부터 유래하여 현실적인 것을 성취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 필자는 자연주의를 더욱 명료하게 정의 지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자연주의가 하나의 방법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있다.⑫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가장 큰 변별성은 바로 과학적 선입관의⑬ 유무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선입관은 객관적 사실처럼 너무나도 명확하고 분명해서 선입관 이상의 무게를 가지게 되어 자연주의 그 자체까지로도 의미 확대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급기야 자연주의를 하나의 방법(인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 방법)이라고까지 하게 되었다.
그들의 생물학적‧철학적 가정은 그들을 선입견 없는 객관적 태도를 취하는 사실주의자들과 구분시켜 준다. 왜냐하면 인생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자연주의자들은 이미 어떠한 패턴을 예상하기 때문이다.⑭
과학적 방법이 인간의 탐구에 적용될 때 이 또한 못지 않게 놀랄 만한 일이다. 인간은 철저한 중립적 입장에서의 관찰과 묘사와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기계의 동작처럼 이해될 수 있고, 그것은 마치 기계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판단에 거의 지배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 역시 유전과 환경과 ‘순간’에 의하여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⑮
자연주의자들의 선입관이란 인간은 유전이나 환경 따위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라는 인식이다. 인간의 어떠한 의지도 몰가치화(沒價値化)하는 자연주의는 생래적(生來的)인 한계로 인하여 졸라가 제시하고 작품화하였던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단명(短命)을 살았다.
자연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은 과학적 발견 이외에 산업의 영향이 있다. 산업의 발달로 사람들은 물질적 세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그 물질적 구조를 더욱 존중하게 되었으며 외면 세계, 사물, 재산 등에 더욱 주의를 쏟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정신적 생활을 침범하였고 자연주의는 유물주의와 같은 말이었다.⑯ 과학의 발달과 산업의 융성, 급격한 정치적 변동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체험하였던 당시의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을 과학적인 눈으로만 바라봄으로써 인간에 대한 그릇된 선입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입관은 너무나도 구체적이어서 선입관 자체가 자연주의의 단점이 되었다. 인간은 오직 유전과 환경, 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자연주의자들의 견해는 지금도 여전히 객관적이며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적일지는 모르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외면했다는 측면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사실주의가 그러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또 비교가 가능하리라 본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구분이 어렵고 설령 구분이 성공적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납득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자연주의의 대부(代父)인 졸라가 이들 두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은 점에도 어느 정도 기인한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주의는 분명한 하나의 문학운동으로서 출발했다는 점, 그리고 졸라에 의해 이론의 거의 전부가 만들어져서 작품화되어 구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둘은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하다. 즉 자연주의는 창작 방법으로서 구체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인 인간관은 예외 없이 적용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연주의 작품의 특징이 되었다.
자연주의는 분명 사실주의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사실주의와 관계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兩者의 관계를 전달할 가장 적절한 이미지는 아마도 어떤 기관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팔, 다리를 가지고 있는 샴 쌍둥이의 그것일 것이다, 사실주의자들과 자연주의자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外的 진실의 模寫的․客觀的 再現(낭만주의자들에 의하여 실천된 상징적․주관적 변형에 대조되는 뜻으로)이라는 기본 신념이다. (…) 즉 사실주의의 초연한 중립적 태도에 어떤 특수한 인간관을 부과한 것이 자연주의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보다 더욱 구체적이며 동시에 더욱 한정적이다. 즉 자연주의는 분명한 이론과 분명한 流派와 분명한 실천을 갖춘 하나의 문학운동인 것이다. (…) 자연주의는 19세기 과학의 발견과 방법들을 문학에 적용시키려는 한 시도라는 것이다.⑰
즉 사실주의는 자신들의 기본 신념에 어떠한 구체적인 선입관이나 세계나 인간 인식의 기본적인 틀을 설정하지 않고 있으나 자연주의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의 틀을 가지고 있다. 자연주의가 그러한 규격화된 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형성 요인이⑱ 너무나도 강렬하게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주의는 광범위한 범위에서 문학에 대한 하나의 태도이나 자연주의는 구체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예의 구체적인 인간관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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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측면에서 사실주의는 너무나도 많은 갈래를 가지고 있어 아직도 총체적이며 구체적인 윤곽을 그려내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이미 살펴보았지만, 규격화된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모사적 사실주의는 자연주의와 다르다.
현실 세계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것이 언어로써 과연 가능할까? 아무리 거울이 그러한 일에 비유되고는 있지만 거울 속의 현실은 좌우가 뒤바뀐 현실이며 얼굴을 아무리 거울에 비추어 봐도 입체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주의는 문학에 대한 하나의 자세이며 그 적용에서 보다 많은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융통성이 자연주의와의 변별성을 가지게 되는 계기일 것이다.
끝으로 자연주의에 대한 위레 J. Huret의 견해와 다소 길기는 하나 사실주의에 대한 René Wellek의 견해를 인용한다.
자연주의는 사물을 생각하고 보고 숙고하고 실험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어떤 독특한 作文의 스타일보다는 사물의 이해를 위한 분석의 필요성을 뜻한다.⑲
우리는 까다로움을 피지 말고 리얼리즘이란 당대 사회 현실의 객관적 묘사라고 하기로 하자. 이 말이 별 뜻이 없고, 또 객관적이란 무엇을 뜻하며 현실이란 무엇을 뜻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급하게 근본적인 문제와 씨름해선 안 되고, 이 기술(記述)을 역사적 문맥 속에 넣고 낭만주의에 대한 반론(反論) 무기로, 또 포괄(包括)의 이론이자 배제의 이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환상적인 것, 동화적인 것, 우의적(寓意的)인 것, 상징적인 것, 고도로 양식화된 것, 전혀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신화(神話)도 동화도 꿈의 세계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또한 있을 성싶지 않은 것, 단순한 우연, 극히 예외적인 사건의 배제를 은연중에 뜻한다. 왜냐하면 지역과 개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실이란 당시 19세기 과학의 질서정연한 세계, 원인과 결과의 연쇄로 파악된 세계, 설사 개인이 사사로이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손치더라고 기적과 추월(超越)이 배제된 세계로 파악된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실이란 말은 또한 포괄의 용어이다. 추악한 것, 구역질 나는 것, 천한 것이 예술의 정당한 주제이다. 성(性)과 죽어가는 것(사랑과 죽음은 항시 허용되었지만)도 이제 예술 안으로 수용(受容)된다.⑳
○ 참고문헌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천승걸, 자연주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6.
Damian Grant, 김종운, 리얼리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7.
이선영 編, 문예사조사, 민음사, 1995.
유종호 外, 한국현대문학전집60, 평론선집Ⅱ, 삼성출판사, 1981.
①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천승걸 옮김. 『자연주의』, 서울대학교 출판국, 1984년. 7쪽.
② Damian Grant, 김종운 옮김, 『리얼리즘』, 1987..4~5쪽
③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3~4쪽.
④ 이선영 編, 『문예사조사』, 민음사, 1995. 125쪽. “<어떻게>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 것,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 집착하지 말 것. 그러나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알고 싶어하는 지성의 욕구를, 그 불안스런 호기심을 항상 멀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다만 사변적인 견지에서의 이야기지만, 과학의 現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철학적 체계를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변이설은 오늘날 가장 합리적인 체계이며, 자연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직접적인 기반으로 삼고 있는 체계이다.”
⑤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6쪽.
⑥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61쪽. <루공 마까르叢書>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1871년부터 1893년 사이에 쓰여진 20개의 일련의 소설들에 집합적으로 붙여진 제목이다. 이 소설들은 각각 그 자체로서 완성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소설들과 연관을 맺고 있다. 이 연관은 ‘第二帝政下의 한 家門의 자연적․사회적 역사’라는 그 叢書의 副題로 주어져 있다. 루공家와 마까르家는 5代에 걸쳐 그 추이가 추적되고 있는 한 방대한 가문의 두 支流이다. (졸라는 그 계보까지 그리고 있다.) 그들의 ‘자연적 역사’는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질병의 놀라운 결과로 <루공 마까르叢書>에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유전의 역할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적 역사’는 그 가문의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직업들, 즉 농업, 법률, 광산업, 의학, 매음, 은행, 철도업, 부동산 투기, 세탁업, 군대, 소매업, 관직, 매매업 등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들 각 분야는 놀라울 정도의 鑑識力으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루공 마까르叢書>를 읽으면서 개인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 그리고 그 시대의 프랑스의 사회적 풍토를 잘 알게 된다. (……) 그리고 근본적으로 생리학적인 인간관과 객관적 방법의 시도에 있어서 <루공 마까르叢書>는 소설에 있어서의 자연주의의 뛰어난 업적이다.
⑦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29쪽.
⑧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58쪽.
⑨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23쪽.
⑩ Damian Grant, 앞의 책, 1~2쪽. “비판적 리얼리즘, 지속적 리얼리즘, 역동적 리얼리즘, 외면적 리얼리즘, 공상적 리얼리즘, 형식적 리얼리즘, 관념적 리얼리즘, 하층부 리얼리즘, 아이러니적 리얼리즘, 전투적 리얼리즘, 소박한 리얼리즘, 국민적 리얼리즘,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객관적 리얼리즘, 낙관적 리얼리즘, 비관적 리얼리즘, 심리적 리얼리즘, 일상적 리얼리즘, 낭만적 리얼리즘, 풍자적 리얼리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주관적 리얼리즘, 초주관적 리얼리즘, 환상적 리얼리즘. (이외에도 저급 리얼리즘, 고급 리얼리즘, 단조로운 리얼리즘, 牧歌的 리얼리즘, 唯心的 리얼리즘, 深層自我的 리얼리즘, 大都市 리얼리즘 따위가 있습니다.)”
⑪ Damian Grant, 앞의 책, 19쪽.
⑫ Damian Grant, 앞의 책, 43쪽.
⑬ 인간은 유전과 환경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결정된다는 결정론. 그러나 후에 졸라는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유전과 환경의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는 쪽으로 한발 물러났으며 변이설(變移說)은 그러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⑭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13쪽.
⑮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28쪽.
⑯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19쪽.
⑰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11~12쪽.
⑱ 형성 요인에 관하여서는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의 14~26쪽을 참고.
⑲ Peter N. Skrine & Lilian R. Furst, 앞의 책, 18쪽.
⑳ 유종호 外, 『한국현대문학전집60』, 평론선집Ⅱ, 삼성출판사, 1981, 39~40쪽.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