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안 났으면 좋겠어요.”
2021년, 지인의 소개로 예술인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일정 자격이 되면 예술 활동 중 겪는 다양한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을 심리상담 전문 서비스로 사전 예방하고, 예술인의 마음건강 돌봄을 통해 지속적인 예술활동 지원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화가 많아요. 안 좋은 상황을 겪거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봤을 때 화가 나요. 다른 사람들은 편해 보이고 평화로운데 저만 화가 나 있어요. 화가 안 났으면 좋겠어요.”
상담가가 어떤 것 때문에 오게 되었냐고 물었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왜 화가 안 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은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여요. 다들 평화로워 보이는데, 저만 화를 내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예를 들어보니 충분히 화가 날 만한 상황들이었어요. 화를 안 내는 것이 이상적인 본인의 모습이라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본인에 대한 기준을 낮추는 연습을 해 봐요. 화가 나면, 화가 났구나 받아들이세요, 인정. 그 다음은 화가 왜 났을까? 묻고 상황을 인지. 화가 충분히 날 만한 했구나, 위로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나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스스로 생각했는데 상담가의 말은 한동안 도움이 됐다. 화가 났다는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대부분 화가 풀렸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화가 난 감정에 빠져들어 이성적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머리로는 알게 되었지만 실천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답답하면 화가 났다. 내 생각과 다르면 화가 났다.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화가 났다. 화를 일부러 내야하는 상황은 분명 존재한다고 여겼고, 화난 감정을 연기해야할 때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변화를 주려고 할수록 꼬여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일어나는 감정을 방치했다.
“한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편안하고 안락할 때가 아니라, 시련과 논란의 순간에 어떻게 서 있는가에 달려 있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나는 한계에 부딪히거나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해결하려고 집중하다 보면 화가 났다. 조급했고, 문제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원인을 환경에서든 사람에서든 찾아내려고 했다. 환경 탓을 하든 사람 탓을 했다. 아등바등하며 해결하려고는 하지만 나의 노력과 대비되는 것들을 계속 입에 올렸다. 화를 내면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다. 몸의 열은 오르고, 기분은 나빠진다. 사실 화를 낸 사람이 가장 괴롭다. 나와 내가 화를 내는 대상과 나의 화를 들어야 하는 사람 모두가 괴로웠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이던 때에 예술인 상대 무료 템플스테이 행사가 있어 서산 서광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둘째날 4시반 스님의 말씀을 듣고 아침밥을 먹고 같이 간 친구가 오침을 누리는 동안 나는 주변 산책을 했다. 다른 숙소를 정리중이던 예약을 도와주신 보살님을 마주쳤다.
“화를 내지 말아요.”
절을 지키는 강아지를 만지던 나에게 대뜸 보살님이 하신 말씀이다.
“화가 나는 걸요.”
“그래도 화를 내지 말아요.”
"화를 안 내려고 할 수록 더 화가 나요."
“그건 집착이에요, 집착하지 말아보세요.”
아, 집착이었구나. 다시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런데 집착은 또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