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가 세워 둔 철창 문을 열고 나가지 못 했다.
모임의 중책을 나름 여러번 맡았다. 고등학교 반 전체 영화보러 갔을 때도 내가 총무를 맡아 영화 예매와 식사자리를 알아보는 것을 했고, 대학교 때는 학생임원이 되어 학과 행사들을 진행하기도 했다. 소규모 친목 모임이 있을 때도 먼저 연락하고 먼저 움직였다. 사람들은 잘 안 움직인다는 것을 진작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이루어지는 상황들이 많았다. 내가 연락을 해야만 했고, 나에게로 연락이 모였다. 가득 찬 일주일의 스케줄은 당연했다.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되는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을 지나 월급쟁이 프리랜서가 되었다. 영화일을 업으로 삼으니 새로운 만남의 자리에 가면 고정질문은 "무슨 작품했어요? 배우 누구랑 일해봤어요? 그 배우 어때요?"였다. 대뜸 몇년만에 연락해 싸인을 받아달라고 했던 대학 선배, 만나자고 할 때는 답장을 안 하더니 유명한 배우와 작품을 한 것을 알고 나에게 연락했던 필리핀에서 만난 어학원 친구. 혹은 영화의 평론가가 되어 영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거나 증권가에 떠도는 찌라시들에 대한 확인사살 요청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영화를 하는 사람의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런 알맹이가 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자리들이 많아졌다.
같은 작품을 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자리가 있거나 내가 먼저 안부 연락을 해도, 명절, 새해인사를 돌려도 돌아오는 인사는 점점 줄어가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품이 끊기는 상황이 계속 되니 술을 마시기 위해 만나는 자리는 꺼려졌다. 통제할 수 없이 나가는 킬링타임용 지출과 쓸데없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싫었다. 안부 연락을 해보려다가도 이내 마음을 접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연락에서도, 만남에서도, 대화에서도. 어릴 적부터 성인이 다된 지금까지의 인연을 주욱 돌아보았다.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꾸준히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를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고, 이해하려는 노력 조차 없는 사람들과의 떨떠름한 만남이 이제 소용없다고 생각됐다. 그러다 보니 되려 연락 오는 사람들까지도 만나고 싶지 않게 되었다. 집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시간 계산과 가는 방식을 고민해야했고, 뭘 먹을지, 뭘 할지 고민해야했고, 그렇지 않음에도 이야기를 즐겁게 듣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어려웠다. 잡은 약속도 전날이나 당일에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해외어학연수와 워킹홀리데이로 자연스럽게 멀어진 인연, 내가 연락을 먼저 해도 닿지 않은 인연, 오는 연락을 받지 않은 나의 결정으로 나의 대인관계의 범위는 점차 좁혀졌다.
내가 마주하는 세상이 넓어지니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영화계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었지만 허세가 하늘을 찌르는 사람, 큰 형, 큰 누나 역할을 자처 하는 사람, 술로 모든 인연의 시작과 끝이 정해진다고 여겼던 사람,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옳은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 세상이 그저 밝게만 보이는 사람, 일의 책임감은 뒤로 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했던 사람, 이런사람, 저런사람. 실망도 쌓여갔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잘못 생각했던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향,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을 걸. 잠을 자거나."
- <보다 읽다 말하다> 김영하 저
김영하 작가가 한 말을 합리화하며 사람들과 멀어질 결심을 했다. 그렇게 내가 세워 둔 철창의 문을 열고 나가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