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아니라, 지금이 현실이란 것.
한살 터울의 동생과 피아노학원을 다닐 때였다. 학원 내 무대 위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내가 그 자리에서 연습을 한동안 했더니 동생이 심통이 났나보다. 내 어깨를 꽉 물고는 도망갔다. 난 갑작스런 아픔과 억울함에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러나 난 동생에게 복수의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악의적인 말에도 짖궂은 장난에도 난 대응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을 것이다. 조금 자란 나는 현실에서보다 티비 속 세상을 보며 잘 울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예능 속 감동의 장면에서, 책을 읽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툭, 툭 눈물이 터졌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 이야기가 컨텐츠로, 예술로 세상 밖에 나오는 것을 환영했다. 연말에 번화가를 거닐다가 만난 구세군의 자선 냄비에 주머니에 있는 가장 큰 돈이었던 5천원을 넣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돕고 싶었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팁박스(Tip Box)를 채워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 위안부라 불리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곤 그들의 억울함을 듣고 풀어주고 싶었다. 누가 더 책을 많이 읽나 친구들과 내기를 하며 학교 도서실에 살았던 시간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 과제로 시를 써 제출했던 것이, 아침 조례시간 운동장에서 전교생들 앞에서 교감 선생님께 상장을 받게 했다. 편집 동아리에 글을 읽고, 쓰고 전시하고 잡지로 만드는 것을 즐겼다. 제법 성대모사를 잘 했다. 다양한 캐릭터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다른 높낮이와 소리의 말투를 곧잘 흉내내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는 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장난치며 노느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동물을 좋아해 인간이 훼손한 지구에 동물들의 터전을 잃어가는 안타까워 했다. 한국에는 울분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회가 소수의 개인을 이용하거나 외면하면 분노를 표할 줄 알았다. 대학교 영상실에서, 영화제에서 밤새 영화를 보는 걸 즐길 만큼 영화를 사랑했고, 또 만들고 싶었다. 처음 월급을 받자마자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상을 위해 할 일을 찾아 자선단체에 정기후원을 신청했다. 용기내어 친구와 여행을 가보고, 국토대장정도 다녀왔고, 해외 생활도 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었고, 영상을 찍었다. 그 속에서 웃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손해보는 일이나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내 마음을 알릴까, 어떻게 나도 똑같이 해줄까 고민했다. 불편해지면 인연을 끊었다. 자선단체에 정기후원을 끊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더럽혀진 환경은 돌이킬 수 없다고 여겼다. 가족을 챙기기보다 너의 이익을 우선하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했다. 내가 에너지를 소모할 가치가 있는 시간인지 아닌지 분석했다. 좋은 물건보다 값싼 물건을 샀다. 어울리는 옷보다 내 주머니 사정에 맞는 옷을 사 입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보다 가성비 있고 양이 많은 음식을 찾았다. 슬픈 감정을 터치하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냉소적인 시선을 가지려 했다. SNS를 보며 너는 너니까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나니까 할 수 없는 거라고 합리화 했다. 신체활동보다 뇌 활동을 더 했다. 햇빛을 보는 시간보다 햇빛을 거르는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대한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도 알았다. 정의롭지 않은 일들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 커리어, 여가, 자기계발, 친구...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날카롭고 차가운 사람이 되었다.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분명 좋은 면도 나에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것으로 덮어가는 나를 스스로가 발견했을 때 어느 날 울린 머릿속 메아리는 나를 잘 살게 하려는 메시지였지 않았을까. 세상도 세상이지만, 스스로와 자꾸만 멀어지려는 나를 붙잡으려는 절규였지 싶다.
이제는 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