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을 예민하게 알아차려 가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두피가 팽창하는 느낌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머릿속이 뿌-연 느낌이 들었다. 일할 때 회의를 해도 금방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고, 집중을 하려고 해도 노이즈캔슬링을 한 것처럼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면 앞선 내용을 예측해 생각하고 있거나, 어떤 단어를 읽거나 상황이 떠오르면 그것에 빠져 눈으로만 글을 읽다가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읽고, 다시 생각에 빠져 되돌아가서 읽는 과정 중에 읽는다는 것이 지치는 일이 되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니 감정은 무뎌지고 냉감해졌고, 하고 싶은 일은 없었으며 세상에 벌어지는 일이나 사람에 대하여 염세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개 속을 헤메며 사는 느낌이었다.
몇 년동안은 그래왔어도 지금은 나를 붙잡으려는 때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책을 읽으려 했다. 앞 단락, 앞 페이지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집중해서 읽으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다 읽고 눈에 띈 책 제목이 있었는데 바로 《브레인 포그》였다. 뜻은 몰라도 왠지 지금의 내 상태를 말하는 것 같았다. 곧장 읽기 시작했다. 브레인포그(brain fog)란, 머리가 멍해지면서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기능과 집중력, 주의력이 저하되는 상태를 뜻한다고 책에 서술되어 있다.
"장기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스트레스에 맞서거나 버티려고 애쓰다가 실패하는 패턴이 반복되기 쉽다. 부정적 행동패턴이 반복되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고 만다.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쳇바퀴처럼 살 운명이라고 체념하는 것이다. 이처럼 절망적인 감정을 심리학에서는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한다. 목표를 달성하고 필요한 일을 하며 삶을 즐기고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뜻한다."
- 《브레인 포그》, 저자 질 P. 웨버 / 진정성 옮김
무기력했다. 사람을 만나고, 구경을 하고, 여행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던 내가 주말이면 커텐 친 방 안 침대에 누워 있기 일쑤였고, 일이 없을 때도 몇일씩 집 밖을 안나가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여행을 다니려 한 나였는데 말이다. 계절이 바뀌고 꽃과 나무가 제 모습을 바꾸는 것에 민감한 나였다. 어느새 그런것들에 둔감해졌다. 동생 찬스로 필라테스 원데이 클래스를 받은 적이 있었다. 강사님이 나에게 물었다.
“통증을 감내하는 편이시죠?” 그렇다고 대답했다.
“몸을 움직일 때 오는 통증이나 감각에 집중을 하고 어떤 느낌인 지 알아채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감정과 통증을 참고 누르다보니 곪아 터지는게 아니라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즉, 무감각을 감각으로 느끼는 상태가 된 것이다. 어떻게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일기를 쓰며 나의 감정과 하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갈 때면 휴대폰을 두고 나갔다. 웨이트를 하거나 러닝을 할 때 근육의 움직임이나 통증유발 유무에 대해 집중했다. 이전보다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을 예민하게 알아차려 가고 있었다.
어김없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친구들이 올린 최신 스토리를 확인하던 날이었다. 얼마전 해외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친구의 스토리가 떠 있길래 눌렀다. ‘출근길은 언제 안 힘들까’라는 멘트를 보자마자 명치쪽이 훅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했다. 나만 커리어에서, 남들이 다 가는 생계활동에서 뒤처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게 무서웠다.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요즘 사람들은 온갖 일을 처리한 대가로 멍하니 스마트폰을 쳐다볼 시간을 얻거나 저녁에 와인 한 잔 마시는 일이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어리석은 생각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게임은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의미도 새로움도 없고 피로를 유발한다."
- 《브레인 포그》, 저자 질 P. 웨버 / 진정성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