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연 Jun 23. 2024

사람, 사람

"네가 얼마나 이 학교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 너는 학교 사람들의 마인드셋을 바꿨어. 국제 학생 =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알면서도 귀찮으니까 묵인했던 문제를 다루게 했어. 지금 너를 위로하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난 그런 위로할 줄도 몰라. 정말 사실을 말하는 거야. 그리고 그런 시상식들? 우리 음악학부에서 너 빼고 한 명도 못 갔어." 


얼마나 학교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냐는 그 말에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유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당장 내일 비행기 타고 돌아갈 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참 가슴에 박히는 말이었다. 그것도 뭐든지 확실하고 깐깐한 교수님으로부터 듣는 칭찬이니, 의미가 남달랐다. 내가 서럽게 소리 내어 우는 것을 그칠 줄 모르자 조그만한 손가락 인형을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게 뭔 줄 아니. 너는 이런 닭과 같은 존재였어. 아침에 꼬끼오 울며 사람들을 깨운 닭과 같았어.”      


영국에 유학 왔는데 반 전체가 나 빼고 중국인이던 설움. 수업 시간에도 내내 중국말만 들리고, 수업 내용조차도 중국 관련 이야기만 나오자 그 불합리함을 바꾸려고 얼마나 얘기했던가. 어쩌면 어떤 교수나 학교 스탭은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똑같은 동양인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유일한 백인이었다면 그래도 수업 시간에는 영어 사용을 하라고 했으려나 싶기도 했다. '알면서도 무시했던 문제인데'라는 말에 보람을 느꼈다. 그 덕분인지 이후 수업 자료에서 케이팝과 한국 문화 산업에 대한 내용이 종종 등장했으며 "영국은 이런 게 있다. 중국은 어때?"라고 하신 후 "한국은 어때?"라고도 물어보셨다. 


다음에도 이렇게 음악학부에 한국인이 혼자 수업을 듣는다면, 그 친구는 훨씬 더 교수들이 이미 겪어봤기에 챙겨주시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 학생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데 내가 충분히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출결이 성적이 들어가지 않으니 수업에 아예 나오지 않는 학생들도, 수업 시간에 게임하고 심지어 화장도 하고 너무 수다를 떨어서 시끄럽다고 지적받는 학생들도 있었다. 영어를 잘해서 친해질 수 있었던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곤 많은 학생들이 강의는 동시통역 사이트를 사용해야 알아듣고 학교에서 영어라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기가 중학교인지, 내가 기대했던 석사생 레벨의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나는 교수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극소수 중 한 명이었고, 거의 늘 맨 앞자리에 앉고, 어떤 이야기든 수업과 학교에 건의 사항을 시시때때로 전달했다. 한 명 밖에 없는 한국인으로서 참 최선을 다했다. 


"내가 얼마나 다른 학생들 보고 가연처럼 하라고 하는데. 오 마이갓. 그렇게 힘들었는데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였다니 정말 지금 너무 놀랐어." 


그 뒤에 만난 교수님은 학교만이 정말 위안이고 행복이었다는 말을 들으시곤 충격받으신 얼굴이셨다. 꼭 개인 메일로 연락 주라고, 연락하고 지내자고 하시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역시 또 눈물이 조금 났다. 그렇게 나름 가장 가깝게 지내던 교수님 두 분과 인사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사람 때문에 울고 웃는 건 영국에서도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담당 교수님께 학업과 커리어가 나에게 제일 쉬운 일이었다고 했다. 영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사람 때문에 많이 울고 웃었다. 소중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를 응원해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내 노래를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