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난이도
ADHD 때문에 평범한 일상에서조차도 인생 난이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깨닫곤, 참 이렇게 살아오느라 대견하게 느껴졌다.
1. 감각 편
- 차 안에서 몇 초라도 핸드폰 보면 멀미한다. 핸드폰 안 봐도 1시간 타면 멀미한다.
- 비행기가 갑자기 훅 떨어질 때 소리 나게 '흐업' 한다. 놀이기구 못 탄다. 다 컸을 때 어린이 바이킹 타고도 울려 그랬다.
2. 후각 편
- 식탁 위에 오이가 올려져만 있어도 냄새 때문에 밥 못 먹는다. 부엌 쪽에 다가갈 때 엄마가 미리 오이 썰고 있다고 말해줘야 토하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3. 미각 편
- 외식할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이다. 나도 한두 달이라도 연애를 해봤지만 상대가 곤란해했다. 맨날 파스타,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 같은 거 중에 골라야 한다.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다. 몇몇 야채는 들어있는 줄 모르고 씹으면 헛구역질하면서 바로 뱉는다. 편식 지적만 수백 번 들었는데, 무릎반사처럼 뱉는 거 보여주고 싶었다. 애기 때는 진심으로 뭘 먹여도 다 뱉어버렸다고 한다.
4. 촉각 편
- 아주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안 입고 안 신는다. 옷장 대부분이 내가 직접 산 옷이 아니기 때문에, 편한 옷만 돌려 입는다.
- 라벨 같은 거 거슬리면 바로 자른다. 엄마 말에 의하면, 두 살 때부터 걷다가도 라벨 있는 부분을 계속 긁어서 엄마가 옷마다 다 잘라야 했다고 한다.
- 나를 5년 이내에 본 적이 있다면, 나를 마주한 모든 날 모든 순간 노브라였다. 나도 공식 무대용으로 하나는 있었는데, 그거 입고 나왔다가 교대역 지하철 화장실에서 벗은 적도 있다. 돈 줘도 못 입는다. 문득 전남친이 그래도 입어야 할 때가 있지 않냐고 했던 기억이 났다. 이제부턴 욕할 거다.
- 날개 달린 생리대도 절대 절대 못 쓴다. 시도하다가도 짜증 내며 새 걸 버리길 반복했다. 탐폰도 열 가지 이상 시도해 봤는데 다 실패했다. 내 돈!! 무료 나눔했다.
- 스타킹도 발까지 달린 거 싫어하고 발목에서 잘린 거 신고 양말을 따로 신어야 한다.
- 끈적임 때문에 뭐 바르는 걸 싫어한다. 핸드크림 당연히 없다. 평소 외출할 때 선크림만 착실하게 바르고 생활한다.
5. 시각 편
- 연애할 때 화장실 갔다가 나와서 내가 상대를 못 찾으면 어떡하나 걱정해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 내가 만일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의 "나 뭐 달라진 거 없어?"를 마주해야 했다면 난 디졌다. 집에 뭐 인테리어 달라져도 잘 몰라서 엄마가 "넌 그걸 이제 봤니?" 해왔다.
6. 청각 편
- 남들은 그 정도까지 안 놀라는 소리에 과하게 깜짝 놀란다.
- 반복되는 소리에 분노를 느낀다. 어릴 때부터 내 방에는 초침이 움직이는 시계가 없었다. 어딜 가도 그런 게 들리면 잘 수가 없어서 일어나서 조치를 취한다.
- 정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잠을 잘 수 있다. 유튜브 수면용 ASMR도 안 된다. 기차, 비행기에서 다들 어떻게 자는가.
- 큰 소리로 음악을 못 듣는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도 소리를 1이나 2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