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피스레이디

지금도 빛나고 있어

by 창업가제이

기다림은 지루하다. 2차 시험을 마치고 발표까지 한 달 남짓. 자격증이 손에 들어오기까지 또 몇 주.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바로 직업소개소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H와 함께 사무실 위치를 고민하고 동선을 체크했다. 혼자 사무실을 알아보고 구청에 가고 세무서에 갔다. 살면서 도전한 것 중 손꼽힐 정도의 큰일이었다.


내가 혼자 이런 준비를 하고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참 별 걸 다 하는구나 싶다가, 스스로 기특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가 본 적 없는 전철역과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얻었다. 학원에 갔다가 마을버스를 타던 그 정류장 앞에 있는 건물. 건물은 낡았지만 보증금과 월세가 부담없고 전철역이 가까워서 좋았다. 부동산을 여러 군데 갔었는데 부동산 사장님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괜히 주눅이 들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건지)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걸고 돌아왔다.


마음이 복잡했다. 진짜 잘할 수 있을까? 비가 오던 날, 집주인과 계약서를 쓰자고 연락이 왔다. 조금 일찍 도착해 부동산 앞 밀크티 가게에서 블랙 밀크티를 홀짝였다. 집주인은 나를 보고 놀란 눈치다.


"본인이 하는 거예요?

아니 젊은데, 직업소개소를 한다고요?

보통 나이 드신 분들이 하지 않나?"


"네. 제가 소장이에요."


참 입이 안 떨어진다. 내가 소장 맞는데, 나를 직업소개소 소장이라고 소개하는 건 낯설다. 이 일 저 일 하다 보니 뭔가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건축일이야 중학교 때부터 꿈꿔 오고 대학 4년, 회사에서 5년. 긴 시간 내 안에 들어왔던 일이라지만 다른 일들은 다 생소하고, 공부해야 했던 일이다.


공부 자체는 어렵지 않다. 어느 정도 수준의 일을 해내는 건 집중해서 노력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이상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시간을 갈아 넣은 일이 아니라서, 그럴 만한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뭐 이래저래 핑계를 대자면 이렇다.


잘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잘하지 못해서였을까.

자꾸 작아졌다.


내 이름으로 사무실을 얻었다. 처음이다. 친구에게 청소를 부탁하고 남편에게는 사무실 인테리어를 부탁했다. 오래 비어 있어서 쌓여 있는 짐들도 먼지들도 많았다. 벽은 엉망이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이라 일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사무실이 완성되는 데 시간이 또 몇 주 지나갔다. 사업자등록을 해 놓고도 몇 주. 애가 탔다. 간판과 출입문에 시트를 붙였다. 간판 사장님을 소개받고 시안을 작업했다. 우리의 디자인이 있어서, 현장에 맞게 조정만 하면 되는 일이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여기에 써먹게 될 줄이야.


어느 주말, 남편의 지인이 벽 목공 공사며 도배를 깔끔하게 해 주었다. 사무실이 환골탈태하였고, 내 공간이라는 것이 낯설고 설레었다. 정말 소장이 된 거라고?


아이들을 채근해 등원시키고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책상에 앉아 일을 보고 전화를 받는다.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 포스팅도 한다. 실장님, 아가씨, 부장님 나를 부르는 호칭도 다양하다. 대부분 그러려니 하다가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물을 때면, "제가 소장이에요. 소장이라고 부르시면 되세요." 하고 한 번 각인시켜 준다.


월급 받을 때는 미처 알지 못한, 남편이 갖다 주는 월급으로 생활할 때는 느껴 보지 못한. 책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온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H가 많은 것을 코멘트해 주었다. 하지만 소화는 내 몫이다.


이제 나의 일을 탄탄히 쌓아가면 된다. 더 새로운 일을 찾지 않고, 키워나가면 된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이력서 보내는 건 정말 이골이 난다.


또다시 겨울이 되자 회원도 제법 늘고, 매출도 늘어났다. 거의 사무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구직자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하루 두세 명. 그래도 출근 때마다 화장을 신경 쓰고, 옷매무새도 신경 쓴다.


나는 오피스레이디니까.


이게 뭐라고 재미있다.

치열하게 공부했던 겨울과 봄, 사무실을 갖게 된 여름이 지나고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제 좀 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연말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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