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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l 12. 2022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_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하루이길.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출근하면서부터 생각한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삼시세끼 챙겨 먹는 편도 아닌데 점심시간만 그렇게 기다린다. 개인적으로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이 아닌지라 음식 관련 정보가 전혀 없는 이 와중에도 회사에 출근한 이상, 왠지 점심은 맛있게 먹고 싶은 쓸데없는 욕심에 열정을 다해 주변 식당을 찾는다. 직장인의 유일한 즐거움이라는 점심시간을 알차게! 누구보다 뿌듯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진다.


여기에 전제조건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함에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이 돼버릴 수도 있고 이게 중요하나 싶기도 하지만, 치열하게 일하다 유일하게 마음 편한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며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모두에게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도 열심히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개인적인 약속에서 식사를 정할 땐 무조건 다수를 따라가는 쪽이다. 맛집 리스트를 꿰고 있지 않고 미각이 전혀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 맛있어하는 나로서는 무리 중의 한 명으로 모든 결정에 동의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국민 모두가 셰프인 듯 요리실력이 대부분 출중하기 때문에 식당도 일정 수준 이상은 맛을 내는 듯하여 누군가 식사 장소를 정하면 '그래' 하고 흔쾌히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결정장애까지 있는 나로선 점심 메뉴 정하기란 꽤 많은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기억력과 정보판단능력을 더하고 가성비를 따져 최대 효율을 높이고 결단력을 발휘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부대찌개, 순댓국, 김밥, 라면, 뚝배기 불고기, 수제비, 샌드위치 등 주변에 많지도 않은 음식점을 뒤져 메뉴를 복기한 후 "어제, 그제 뭘 먹었지?",  "저녁 약속이 있으니 겹치지 않는 음식이 좋겠지?", "누가 이 음식은 싫어하던데?",  "날씨와 어울리는 메뉴면 좋겠지" 등 무수한 경우의 수를 대입하여 회사에서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멀리 있는 오늘의 점심메뉴를 확정 짓는다. 그렇게 들어간 식당에 바로 앉으면 다행이지만 회사원의 점심시간이란 뻔하지 않은가.. 자리가 없으면 재빨리 머리를 굴려 근처에 있지만 맛있고 자리까지 있을 듯한 식당을 생각해내어 돌진해야 한다. 두 번째도 실패하면 점심시간은 끝났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식사 후,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산책을 해야 하니까.. 산책은 놓칠 수 없지! 이렇게 적고 보니 '점심시간 완벽하게 보내기'란 하나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듯하다.






아마 이런 점 때문에 원치 않는 상사, 동료, 후배들과의 식사보단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난 듯하다. 여러 매체에서도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들과 섞이기보다 각자의 식단에 맞춰 식사를 하고 오롯이 휴식을 취하거나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사용한다는 기사를 이전보다 자주 접했다. 주변만 봐도 샐러드로 식단관리를 하거나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밀린 잠을 청하거나 은행, 병원 등 개인 업무를 처리하는 등 각자의 필요에 맞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언뜻 삭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성급히 판단할 수 있겠지만 엄연히 보장받아야 할 자유시간, 휴게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동행자가 있다면, 특히 상사라면 앞서 얘기했던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부담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업무도 아닌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맛이 있네, 없네'하며 결과에 따른 냉혹한 평가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치 업무평가처럼 느껴지거나 본연의 업무에 피해가 된다면 점심시간이 곤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저렴한 가격과 정성스레 나오는 맛있는 직원식당이었지만 불편한 동료관계와 삭막한 분위기에서 매일 체한 듯 꾸역꾸역 밥을 먹어야만 했던 시간이 있었다. 옆에 누가 앉는가에 따라 대화 주제가 바뀌어야 했고 분명 자유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이 무리에 동참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으며 결국 혼자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숨이 조여오듯 답답하고 불편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기 때문에, 매일 소화제를 달고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건강하게 지켜 맡은 바를 해나갈 수 있게끔 만들었던 최선의 방어이자 처절한 움직임이었으리라!





이제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자유로운 점심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났고, 점심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직장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없이 소중하다. 단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업무에서 벗어나 사소한 취향을 나누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무해하게 웃으며 오후를 버텨낼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충전시키는 시간이 점심시간이다. 내년이면 각자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떠날 동료들이라 그런지 하루하루가 아쉬울 뿐이다. 

물가도 역대 최고로 치솟고 있고 코로나 이후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어버린 요즘, 그 유명한 확찐... 자가 되었지만, 소비를 줄이고 바깥 음식을 자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즐거움을 결코 놓치긴 싫다.

(저녁을 적게 먹는 걸로 스스로 타협을 보고 점심시간은 누리는 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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