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 Jun 28. 2022

"나의 해방일지"

My liberation notes. 2022. Drama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기억하고픈 작품을 남깁니다.
다른 이를 통해 듣는, 분명한 그 한마디에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던 그 순간을.
저만의 긴 여운을 가득 담아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짧은 기록입니다.



당신을 애정합니다.

당신의 해방을 응원합니다. 


이 작품을 남기기 위해 매거진을 만들었다. 오래 기억하고 싶어 어디든 남기고 싶었다.

드라마 방영 중에도 추앙하는 글을 올리고 싶었으나 결말이 산으로 가는 작품이 허다하기 때문에 끝까지 간절함을 담아 매 회 소중하게 마르고 닳도록 지켜봤다. 처음부터 마지막 회까지 살 떨리는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고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야 몸에 쭉 힘을 빼고 긴 숨을 내뱉었다. 

드라마, 영화를 좋아하지만 2번 이상 본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다시 보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어 자발적으로 다시보기를 눌러 첫 회부터 정주행 했다. 분명 본방 사수하며 다 봤던 장면이지만 볼 때마다 다가오는 장면들이 다르고 미처 몰랐던 부분이 새삼 새롭게 깨달아진다. 

작가님의 필력과 감독님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촌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인물들에게 모두 애정이 생겨났으며 배우들 또한 마치 옆집에 사는 이웃인 듯 그냥 다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작품의 모든 것이 내 일상처럼 가깝게 느껴졌고 담백한 위로를 얻었던 시간이었다.


대사를 자꾸만 곱씹게 되는 작품, 긴 여운에 잠기게끔 만드는 작품

스스로를 살피게 되고 나도 몰랐던 감정까지 발견하게 되는 솔직한 작품 

여러 번 봐야 비로소 숨은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작품


실로 엄청난 힘과 깊이를 갖고 있는 드라마를 만나게 되어 내내 행복했다.




실제로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진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최근 몇 년, 가까웠던 사람들과 자꾸 삐끗거리고 괜히 서먹해지고 불편하기까지 한 경우가 종종 생겨났다. 특별히 그럴만한 일도 없었고 누가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신뢰했던 사람들과도 과연 '이게 맞는 건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피어났고 편히 만나 내 얘기를 할 사람이 흐릿해졌으며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분명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또 전혀 모르겠다고 할 수도 없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는 그런 시기가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미정(김지원)의 대사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들었던 이유, 자꾸 마음이 불안하고 함께 있어도 외롭고 일상이 메말라간다고 느껴진 이유,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마음 편히 온전히 얘기하고 울 수 있는, 그렇게 마주할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 

마냥 좋기만 한..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나에겐.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까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이들이 있었으나 신경이 쓰이고 다소 불편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꼬집을 수는 없지만 탁 하고 걸리는 그 하나가 일정 선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멈칫거리고, 머뭇거리게 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스스로 자책하며 실의에 빠졌던 순간들. 완벽한 사람이 없음을 알면서도 사람을 향해 또 기대하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했던 날들의 반복.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여전히 어렵기만 한 나에게 지쳐있었음을 이 작품을 보며 깨달았다.


'슬프다, 어둡다, 우울하다'로 표현되지 않고 이게 뭐지? 하고 보게 되는 알 수 없는 작품

내가 본 첫 회는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화면을 뚫고 나왔고 한여름의 농촌 풍경, 생활감에 찌든 집안 모습, 현실감 가득한 회사생활이 모두 갑갑했으며 등장인물마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이목을 끌만한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이 모든 모습이 나에게,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세 남매와 부모님이 한 마디도 안 하고 밥을 먹는 모습에 우리 가족과 똑같다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고 서먹하고 불편한듯한 식사 장면이지만 서로의 애정이 묻어나는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출·퇴근길의 힘듦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에 백 퍼센트 공감했고 4인 가족이 행복하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머리 하나만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 회사의 중대한 결정도 상사의 느낌에 따라 정해진다는 말들이 현실감 가득했다. 내뱉는 대사들이 가볍지만 애잔했고, 분명했지만 쓸쓸했으며 냉정했지만 포근했다. 

지루할 정도로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애정이 잔뜩 담겨있어 소소한 일상의 감사함을 알아가게 하고, 살아가고 버텨냈던 모두의 삶은 의미 있고 가치 있음을, 그러니 서로 사랑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추천곡: 곽진언 <일종의 고백> , 하현상 <be my birthday>


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긴 시간 이렇게 보내다간 말라죽을 것 같아서
 당신을 생각해낸 거예요. 언젠가는 만나게 될 당신.
 적어도 당신한테 난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겠죠.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만나지지도 않는 당신.  
 당신. 누구일까요."

- 1화 중 미정의 독백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 2화 중 미정의 대사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 모르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 3화 중 미정의 독백


"생각해 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끔 생각해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진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한번 만들어 보려고요, 그런 사람.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에 나도 덩달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보려고요.
 방향 없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이젠 다른 게 살아 보고 싶어요."

- 5화 중 미정의 독백


출처: jtbc 드라마'나의 해방일지' 공식 홈페이지 및 영상 (네이버TV)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 제목 적어 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
 
  -11회 중 미정의 대사


"살아 있으니까 산다 싶은, 우물우물 여물 먹는 동물인, 오십 인 여자가 말해줄게.
 네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진 않는데 음..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 마흔은 어떻게 살지? 오십은 살아 뭐하나 죽어야지 그랬는데..
 오십? 똑같아. 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와.
 난 열세 살 때 잠깐 낮잠 자고 탁 눈 뜬 것 같아, 팔십도 나랑 똑같을 걸"

-15회 중 기정 옆 테이블 옆 여성의 대사


출처: jtbc 드라마'나의 해방일지' 공식 홈페이지 및 영상 (네이버TV)


"당신 왜 이렇게 예쁘냐.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한테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 마지막 회 중 미정의 대사


출처: jtbc 드라마'나의 해방일지' 공식 영상 (네이버TV)

                    

매거진의 이전글 "그 해 우리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