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5

문구점에서 읽는 세계명작

by 조옥남 Ayuna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유령들의 사랑

캐서린이 떠난 뒤, 워더링 하이츠는 거대한 무덤과 같았습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완성된 듯 보였습니다. 원수들의 재산을 모두 빼앗았고, 그들의 후손인 헤어튼어린 캐시를 자신의 발밑에 굴복시켰으니까요. 하지만 승리의 기쁨 대신 그를 찾아온 것은 지독한 공허함과 기이한 환영이었습니다.


"나를 혼자 두지 마!" 벽을 두드리는 망령

히스클리프는 밤마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차가운 눈바람을 맞으며 울부짖었습니다. 그에게 복수는 더 이상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죽은 캐서린의 영혼을 한 번이라도 만질 수 있다면, 자신의 심장을 기꺼이 내줄 준비가 되어 있었죠.


"캐서린, 제발 나를 찾아와줘!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나를 미치게 해달란 말이야!"


그의 간절한 저주는 현실이 된 것일까요? 저택의 복도에서는 누군가의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창밖에서 가녀린 손길이 유리창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서서히 미쳐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 너머의 세계와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증고이 대지에 피어난 기적, 헤어튼과 캐시

아이러니하게도 히스클리프가 뿌린 증오의 씨앗 위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났습니다. 그가 문맹으로 방치하며 학대했던 헤어튼과,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살던 어린 캐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글을 가르치고 사랑을 싹틔운 것입니다.


복수의 화신은 이들의 사랑을 보며 비웃으려 했지만, 문득 깨달았습니다. 자신과 캐서린이 가졌던 그 순수했던 야성이 이 아이들에게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요. 히스클리프는 이제 복수할 기력조차 잃은 채, 먼 곳을 응시하며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이승이 아닌, 캐서린이 기다리는 그 '황량한 언덕'을 향해 있었습니다.


마침내 맞이한 평온, 유령들의 산책

어느 폭풍우 치는 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이름이 새겨진 창가에서 마침내 숨을 거둡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아닌, 기이할 정도로 평온한 미소가 서려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면, 언덕 위에서 검은 머리의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이 손을 잡고 무어 들판을 거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이죠.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유언대로 캐서린의 곁에 묻혔고, 관의 옆면을 틔워 두 사람의 유골이 흙 속에서 하나로 섞이게 했습니다. 세상이 그토록 갈라놓으려 했던 두 영혼은, 죽음이라는 가장 깊은 심연 속에서 비로소 완전한 안식을 찾았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여운

고전 중의 고전, 에밀리 브론티의 <폭풍의 언덕>을 함께 여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는 사랑이 구원이 아닌 파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조차 꺾지 못한 강렬한 집념이 우리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문구점의 오래된 종이 냄새 속에서 만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 한구석에 서늘하지만 뜨거운 여운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 "문구점에서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는 또 다른 불멸의 고전과 함께 여러분을 찾아오겠습니다. 황량한 언덕의 바람 소리를 뒤로하고, 평온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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