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겟층을 넓혔다. 학교로 유통해야 사업이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았다. BEP가 가능할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처음부터 학교로 진입할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고, 그만큼 인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도 아녔으니까..... 어쩔 수 없이, 노출되어 있는 서점을 중심으로 시장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일단, 서점의 수가 많지 않았고, 서점은 각 출판사에 의해서 운영되었고, 운영방식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이 아니었고, 정부 참여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건, 조언을 많이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이것도 녹록지는 않았다. 이 시장 자체가 워낙 인사이트가 있어야 했고, 통계도 정보도 없어, 조언을 받을 만한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또한, 이상하리만큼, 나의 인맥이 이 분야에서는 작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한숨을 쉬며 돌아볼 찰나, 남편이 옆에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남편의 교수님이 생각났다.
남편은 베트남어 학과 전공이다. 우리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20년 전쯤 이던가... 중국어가 대세였는데, 누군가에 조언에 의해서 베트남어학과를 지원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베트남이 대세가 될 것이니, 베트남어학과를 지원해 보라고... 그래서 베트남어학과를 갔다고 한다. 그 말이 맞았다. 실제로 현재 남편은 그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여하튼 샘플을 들고 한국에 계시는 남편의 교수님을 찾아갔다. 우리의 사업 미션을 설명하고, 의논했더니 단숨에 페이스북으로 몇 분을 소개해 주셨다. 베트남어도 잘하시고, 베트남을 12년 동안 방문하신 교수님의 베트남에 대한 이해도와 인맥은 과히 대단했다.
베트남에 돌아와, 소개받은 분들을 찾아뵈었다. 좋은 분들 이셨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방안을 찾고자, 다시 샘플을 들고, 관련 기관들을 방문했다. 여전히 적절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교수님을 찾아뵈었을 때가 5월쯤이었는데, 베트남에 8월에 오신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다시 한번 교수님을 기다렸다.
또다시 인내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