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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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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Jun 06. 2022

그냥 일기: 여수 1

버티기 위한 여행과 일상 공유


저번에 올린 게시글부터 약 3주? 가 못되게 틴더 생활을 접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플을 통해 세 명을 만났고, 그중 한 분은 종교 권유 아닌(?) 권유, 다른 한 분은 바람 아닌 바람을 맞혔고 한 분과는 키스를 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온라인에 이런 글을 실명으로 적는 것을 우려할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얼마나 싸구려 같이 보일지 때때로 염려하고는 하는 부분이지만, 결국 내가 나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자기 비하와 폄하를 할 때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속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뭐 어떤가. 싸구려라면.

(어플에서 만나 키스하는 게 왜 싸구려야….)

요즘 인생의 화두는 즐기며 살자다. 너무 닫힌 마음으로 산 것 같아서 조금 오픈 마인드로 살아보고자 한다.

 

어제 들은 재밌는 말 : 기성세대들도 다 틴더 같은 거 했을 거다.

공감한다. 솔직히 난 틴더가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소개팅보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선자가 소개팅을 개최(?)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사람을 선택해서 모임을 만드는 거니까. 자기 자신을 믿는 나 같은 자뻑 인간에게 참 좋은 어플이었다.


그러나 접은 이유는 인간관계에 공짜가 없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그만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결국 난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인 것 같아서 포기….


거두절미하고 현충일 다음인 7일에 휴가를 내고 여수에 왔다. 이유는 검은모래해변이라는 곳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검말레라는 해변이 있는 모양이다. 연말에 휴가를 받아 제주에서도 구경했으면 좋겠다.


여수 만성리 검은모래해변


파도를 제대로 찍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파도가 쳤는데 관광객들이 다 비명을 질렀다. ㅎㅎ


파도의 비명. 비명을 지르는 것 중 유일하게 이해받을 수 있는 물질(?)이 아닐까? 

사람이 파도 같았다면 살 수 없었을 거야….


“바다의 비명은 파도다. 파도는 유일하게 이해받을 수 있는 비명을 내지른다.” 

다음 시나리오에는 이런 글귀를 넣어 보고 싶다.


이 깨달음 하나로 여수에 온 것을 만족했다.


노을이 지니 조금은 더 검은 모래 같아 보인다.


 해변이 검은 모래가  이유는 무엇일까? 무진장 많은 미역들을 보니, 떠밀려  미역들에서 나온  성분이 영향을 미친  아닐까 싶다. 바다도 자세히 보면 미역들로 인해 에메랄드 빛이다. 맑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관광지로는 젊은이들이 영 즐길거리는 없는 듯하다. 

뭐 가족이나 친구들이랑 오면 어디든 다 재밌겠지만….


민박집 사이 푸딩 가게(노키즈존이다 ㅠㅠ)


 해변 앞에 ncnp라는 카페가 있던데 꽤 모던하게 꾸며 있고 크다. 처음엔 해변을 보면 되는데 왜 카페에 갈까 싶었는데 걸어보니 알겠다. 낮 1-2시면 덥고 바닷가라 그런지 습하고 에어컨이 그리워진다….


 그래도 6월 초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초여름 기운이 느껴지는 바다를 좋아한다.


틴더 친구에게 보냈던 노을 무렵 해변


저녁에는 어떤 느낌의 해변일까. 사실 저녁에 필름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러 온 것도 있어서(?) 기대 중이다. 폭죽놀이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폭죽놀이는 많은 해변가에서 불법인 듯하지만.


부도덕하다는 건 뭘까.

부도덕하고 불완전해서 더 끌린다는 건…. 그렇지만 결국 평범하고 안정적인 사이를 바라게 된다는 건.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워서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산다, 요즘은. 흘러가는 대로…. 거기서 따라오는 나의 자유와 상대의 감정에는 책임을 지려 노력하며.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것을 기도할 게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고 책임질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다짐했다. 부디 나의 변덕으로 아름답고 좋은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를.


그게 어른인 것 같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깨닫는 게. 그렇다면 난 영원한 어린애이고 싶지만 어느덧 스물여덟이다. 이 지리멸렬한 삶을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까. 내년의 내 곁에는 누가 남을까. 내년의 나는…. 부디 몸 건강히 살아 있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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