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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Aug 24. 2022

실업 일기 1일 차

2022-08-24 수요일


놀랍게도 이번엔 실연 일기가 아닌 실업 일기다.


회사가 망했다.


회사가 어려운 분위기라는 건 회사에 굴러다니는 먼지도 알았던 일. 우리가 다 함께 힘을 내어 극복합시다! 하기에는 위기가 너무 컸다는 일.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어, 팀원분들 로비에서 만나 하하호호 웃으며 출근, 오후에 팀장님이 소집. "회사가 망했습니다." 그리고 웃음소리. 


어제 회사의 90% 가까운 인원들이 권고사직을 당했다.


짐을 택배로 부치고, 팀원들과 술을 마시고, 화분은 직접 들고 집으로 오는데 멍했다.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 어제까지는 그래도 웃음이 났다. 


일어난 아침에는 긴 꿈을 꾼 건가? 싶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여름휴가일지도 몰라. 하는 기분. 그런데 이제 영영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닫자, 알 수 없는 배신감과 허탈함이 들었다.


회사에서 잘린다는 것과 실연당하는 건 비슷한 감정이 든다. 오히려 회사라는, 먹고사는 문제가 직접적으로 다가오자 실연 때문에 아팠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른 생각이 들지 않기도 했다. 회사에 열정이 떨어진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근 10개월 간 즐겁게 했던 일을 하루아침에 못하게 된다는 건... 헤어짐을 통보받은 것과 거의 흡사한 기분. 우스갯소리로 팀장님이 이별한다는 건 회사에서 잘린다는 거랑 같아서, "내가 더 잘할게."라고 해도 이미 다른 사람을 구했다는 기분이라는데...


우리 회사는 다른 사람을 구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 볼 수 없게 된 건 실연과 마찬가지다. 대체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고 저번 달에는 실연을, 이번 달에는 실업을 당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좌절스럽지는 않다. 취업이 빠른 시일 내로 가능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만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고 그 시간에 여러 생각이 든다. 헤어짐과 마찬가지로 실업도 회사와의 좋은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웃었던 일, 몰두했던 일, 성과를 냈던 일... 난 대체 왜 이렇게 돌아갈 곳이 없나 싶다가도 이럴 때 혼자 살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일단 회사를 다니며 못했던 요가를 하며 몸을 정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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