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야옹 Mar 06. 2024

베이글에 대하여

나는 베이글에 있어서는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다.


베이글이란 모름지기 겉은 적당히 질기고 내부도 어느 정도 질겨야 한다. 포슬하거나 폭신하거나 이로 물어 툭툭 끊기는 빵은 그저 고리 모양의 빵이지 베이글이 아니다. 베이글이란 곧 쫄깃함의 동의어이다.


이렇게 베이글 철학이 확고하기 때문에, 유명 베이글 매장을 방문했다가 크게 실망한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퍼석퍼석하고 쉽게 부스러지는 베이글, 쫄깃하지 않은 베이글을 판매하면서 베이글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니, 슬며시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더 젊었을 때에는 모두가 굉장한 맛집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며 반드시 가 보라고 등을 떠밀던 딸기 케이크 가게에 방문했다가 너무나도 맛이 없는 바람에 그만 귀가하자마자 몸살이 난 적이 있었는데, 고리 모양 빵을 베이글이랍시고 파는 가게에 방문했을 때에는 그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딸기 케이크는 대체 언제 맛있어지는 것인가 하며 끝까지 꾸역꾸역 먹었던 반면에 유명 매장의 고리 모양 빵은 한두 입 먹고 바로 포기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누군가가 진심을 다해 추천해 준 매장이 아니라서 편한 마음으로 그건 베이글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먹었던 베이글 중 기억에 남는 베이글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먹었던 베이글이다. <론리 플래닛>에서 맛있다고 추천하여 방문했던 작은 매장이었다. 그 베이글 매장은 여행 서적에서 추천하기에는 좀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시 외곽에 붙어 있었는데,  근처에 예배당이 있었는지 머리에 아주 조그만 모자를 얹은 유태인 가족이 매장 앞 도로에 잔뜩 보였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날씨는 제법 추웠다. 혼자 여행하고 있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식탐이 많은 건 똑같아서 베이글을 세 개, 아니면 네 개를 샀다. 매장에는 자리가 없어 종이봉투에 베이글을 담아 안고 길로 나섰다가, 봉투에서 올라오는 베이글 냄새가 하도 좋아서 다음 목적지까지 걸으며 베이글 한 개를 느긋하게 먹어치우고야 말았다.


추운 날 먹는 갓 구운 베이글은 각별했다. 아직도 그 베이글이 기억이 난다. 봉투 안에서는 갓 구운 빵의 구수한 냄새가 뭉게뭉게 올라왔다. 겉면은 아주 매끄러웠고 짙은 갈색이었고, 한 입 깨물면 치아가 미끄러지려고 해서 겉껍질 아래까지 제대로 물려면 정신 차리고 힘을 주어야 했다. 그리 두껍지 않은데도 하도 쫀득해서 한 입 베어물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베이글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상당히 큼지막하고 밀도가 높아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름에도, 크림치즈도 바르지 않고 한 개를 해치우고는 다른 맛 베이글도 절반 정도는 먹어 버리고 말았다. 아마 목이 막히지만 않았더라면 공원이라도 찾아가서 벤치에 앉아 베이글을 전부 해치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내 기억 속 가장 맛있는 베이글은 몬트리올의 12월 말 베이글로 남아 있다. 몬트리올에서 돌아오는 길에 깨가 듬뿍 박힌 마지막 한 개의 베이글을 소중하게 싸 들고 왔던, 그랬는데도 깨가 잔뜩 떨어져나와서 가방 안이 엉망이 되었던 것도 기억이 날 정도로 멋진 베이글이었다. 몬트리올에 언젠가 다시 갈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베이글 가게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추억이 하도 멋졌기 때문에 나는 그 베이글 가게를 다시는 찾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