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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야옹 Mar 11. 2024

열아홉의 영화관에 대하여

나는 수험생이던 당시에 1학기 수시모집이라는 전형을 통해서 대학교에 합격했다. 자녀도 없고 주변에 그럴 만한 나이의 자녀가 있는 사람도 없어서 최근의 입시 정보에 대해 무지해 같은 입시 전형이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없다고 가정하고 설명을 해 보자면, 내신 성적과 구술 면접만으로 평가를 받아 입학 허가를 받고 수능시험을 보지 않는 전형이었다. 그렇다,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하고 나면 수능시험을 볼 필요가 없어진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더 이상 수능시험을 볼 필요가 없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 계속 등교를 하면, 같은 반의 다른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에 좋지 않다는 의사결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담임 선생님에게 합격 통보를 알리고 나니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 수능시험이 끝날 때까지 등교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렇게 열아홉의 반짝거리는 초여름날, 나는 이른 나이에 백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무한정 놀고 싶겠지만, 다른 친구들은 수능시험을 앞두고 막판 스퍼트를 내느라 눈에 불을 켜고 있다보니 나와 놀아줄 상대가 없었다. 대학교에서는 미리 학점을 따 둘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지난 9년을 공부했고 앞으로 4년을 더 공부할 텐데 천금같은 놀 기회를 또 공부를 하느라 날리고 싶지 않았다. 혼자 노는 방법을 잘 몰랐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영화학도 지망생이라도 된 것처럼 게걸스럽게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집 근처에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멀티플렉스가 있었고, 당시에는 조조할인에 통신사 할인까지 결합하면 영화를 고작 2천원에 볼 수 있었다. 학생에게도 크게 부담이 되는 가격은 아니었다. 나는 새 영화가 나오거든 개봉 당일에 영화관으로 향했다. 한국 영화, 헐리우드 영화, 유럽 영화, 애니메이션, 편식 없이 골고루 보았다. 돌이켜보건대 여름부터 겨울까지 개봉한 영화는 거의 전부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영화를 여러 보고 싶지는 않아서 매번 새로운 영화를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고등학생의 시각으로도 도저히 만들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영화도 상당히 많이 보았다. 볼 영화가 한정적이었으므로 십대 후반이 좋아할 만한 오락영화만 본 것이 아니라 미성년자가 볼 수 있는 영화라면 전부 다 보아서, 아카데미상 후보에는 오를지언정 흥행은 불가능한 종류의 예술 영화도 잔뜩 보았다. 이른 아침에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종일 다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수첩을 사다 그 날 본 영화표를 붙이고 내 나름의 점수와 감상을 적었다. 그 시간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거의 없는 평일 조조할인 영화관에 들어서서 영화 시작을 기다리던 기분은 해방감으로 가득하고 무척 상쾌했던 기억이 있다. 


넷플릭스며 디즈니플러스 같은 플랫폼이 발달해서 이제는 조조할인 영화가 얼마인지, 통신사 할인이라는 것이 아직도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다가 놀란 사실인데, 그 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개봉작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 영화를 제외하고 전부 보았던 내가, 작년에는 영화관에 단 한 번도 걸음하지 않았다. 용돈에 여유가 있을 때에는 영화 시작 전에 나초를 사서 들어가는 게 낙이었는데 영화관에서는 아직 나초를 팔까? 영화관과 나는 언제 이렇게 먼 사이가 되어 버린 걸까?


언젠가 다시 백수가 되어도 영화 티켓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매일 아침식사를 하듯 조조할인 영화를 보러 가기는 어려우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관에 틀어박혀 보냈던 나의 열아홉 살의 여름이 도리어 한 편의 영화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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