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길에서, 가게에서, 음식점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는 즐기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어찌나 유창한지 스몰 토크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하는데, 아마 앞으로 만날 일이 없는 사람과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이라는 안도감이 입을 풀리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도 가게나 카페, 음식점, 엘리베이터 등에서 스몰 토크를 주고받을지언정 길에서 낯선 행인과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개를 키우기 전까지는 그랬다. 개를 키우고 나니, 개를 데리고 다니면 말을 걸어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가 의아해질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내 개는 하루에 두 번 산책을 하는데, 한 번 나갈 때마다 반드시 한 명 정도는 내게 말을 붙이므로 하루에 최소 두 번의 낯선 이와의 대화 이벤트가 발생을 한다.
개를 데리고 다닐 때의 스몰 토크는 보통 세 종류이다.
그중 가장 이해하기 쉬운 부류는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이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그 동네 초행길일 확률은 대단히 낮으니, 동네 주민이라고 안심하고 길을 묻는 듯하다. 문제는 우리 동네는 길이 복잡하고 한 동짜리 소형 아파트나 빌라가 많아 나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행히 내가 이 길이던가, 저 길이던가 하고 머릿속 지도를 열심히 돌려 보고 대답하는 동안 사람은 물론이고 내 개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준다. 하지만 한 번은 길을 헷갈려 완전히 딴판으로 알려주고는 상대가 자리를 뜬 뒤에야 깨달아, 개를 끌고 부랴부랴 달려가서 제대로 된 길을 다시 알려준 적도 있었다. 미안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두 번째 부류는 내 개를 귀여워하는 사람들이다. 남의 집 개를 귀엽게 봐 주니 당연히 감사할 따름이다. 내 개는 사실 상당히 유쾌하게 생겨서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터이다. 커다란 머리에 큼지막한 귀 두 짝이 쫑긋 솟아있고, 허리는 긴데 다리는 놀랄 만큼 짧다. 개목걸이를 걸어주면 목걸이의 장식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바닥에 끌리고야 만다. 그래서 커다란 머리를 흔들며 바닥에 붙어 다니는 모양새인데, 또 그 와중에 기가 막히게 웃는 상이다.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짧고 귀가 쫑긋한 개가 바닥에서 올려다보며 헤벌쭉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젊은 여성분들이 일제히 돌고래 소리를 내며 지나가도 이상하지만은 않다.
몇 살이예요, 여자예요 남자예요, 하는 통상적 질문이 나오고 나면 적극적인 사람들은 벌써부터 손을 냅다 내민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내게 묻지 않고 개에게 손을 덥석 내밀면 매번 무척 긴장을 하는데, 다행히 내 개는 아직까지는 아무도 물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 누구도 물지 않고 일생을 마쳐 주기를 바라 마지않을 뿐이다. 한번은 어느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이렇게 생긴 개는 물지 않는단다. 이렇게 생긴 개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후한 평가다. 나도 이렇게 생긴 사람은 해롭지 않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나이와 성별에 대한 질문이 나오고 나면 스몰 토크의 주제가 굉장히 다양해진다. 어느 날에는 멋진 모자를 쓴 어르신으로부터 영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들은 적도 있었고 (내 개가 웰시 코기라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개에게 자기 과자를 나눠주고 싶어 하는 어린이를 말리느라 그 어머니도 나도 진땀을 뺀 적도 있었다.
하루 몇 끼를 먹는지, 잘 짖는지, 다리는 왜 그렇게 짧은지. 개를 키우기 전에는 사람들이 개에 대해 이렇게나 다양한 궁금증을 품고 있는 줄은 몰랐다.
세 번째 부류는 다른 개의 보호자이다. 물론 아무 말도 없이 무작정 자기네 개를 우리 개 쪽으로 들이미는 사람도 있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라면 삼만 자 넘는 글을 써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인사 시켜도 되는지, 다른 개는 좋아하는지를 물어보아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과의 스몰 토크는 즐겁다. 개들마다 인사성이 어떻게 다른지, 이 집 개는 어떤 성격인지, 어떤 간식을 좋아하고 어떤 산책 코스를 즐기는지를 듣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른다. 내 개와 상대방의 개가 서로 잘 어울려 주면 금상첨화다.
이렇게 말이 자주 걸리니, 소심한 사람이나 낯선 이와의 대화가 불편한 사람은 개를 산책시키기에 적합한 부류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어느 날엔가 다른 집 개 일행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가 유독 말이 잘 걸리는 타입일 뿐, 남들은 개를 아무리 데리고 다녀도 말을 붙여 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몰 토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말을 걸어 달라는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