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 박상영
그때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영과 재희는 너무 비슷한 사람이다. 각자 남자를 엄청 밝히는 호모와 헤테로며,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비슷하기 쉽지 않은 독특한 조건이 잘 들어맞는다. 평범치 않았기에 둘은 과하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영은 언젠가부터 재희와 거리를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재희는 수시로 남자친구를 갈아치우지도 않았고 결혼까지 결심했다. 여느 신부처럼 신랑의 친구가 사회를 보는 관습을 따랐고, 예비 남편에게 영을 아웃팅 시키는, ‘어쩔 수 없는 헤테로’의 면모마저 보였다. 어느새 평범한 사회에 동화됐다.
모든 아름다움이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
영은 여전히 소수자다. 불변의 성질인가, 그냥 그렇게 남은 건 어쩌면 당연했다. 재희 역시 그렇기에 평범해질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평범했다. 재희는 성적인 취향에 있어 어쩔 수 없는 다수자였으며, 익숙함에 더 익숙해진 게 전부였다. 원체 쿨한 성격이 젊음에 불타 재희의 대학 시절을 달궜을지언정, 본질은 달라진 적 없었다.
사랑보다 진한 우정이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는 영의 상실감과 서운함이 축가를 부르다 눈물과 함께 섞였으리라 감히 추측한다. 남들과 절대 공유할 수 없는 비밀과 서로만 이해할 수 있던 취향은 냉동고 속 블루베리와 말보루 담배가 되어 찰나의 아름다운 시절로 얼어붙었다.
내게도 이런 우정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랑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자답할 수 있을 만큼 그들 사이는 깊고도 짙었다. 그런데도 이전에 읽은 <시절과 기분>이나 <일 년>에서 느낀 묘한 감정 없이 우정이라 선 그을 수 있는 이유는 대화 마디 마디에 배어 나왔던 담백함 때문이다.
상실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소중함도 있어. 네가 그래.
다소 오그라드는 말에서조차 사랑 이상의 우정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동의할 수 없다면, 소설을 읽어보면 된다.
이를테면 재희는 나를 통해 게이로 사는 건 때로 참으로 좆같다는 것을 배웠고, 나는 재희를 통해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찮게 거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 소수자로서, 여성으로서 이들은 사회로부터 폭력을 당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남성으로서, 헤테로로서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덧입힌 적이 분명 있었다.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자.
19년 5월에 쓴 박상영의 <재희> 서평. 이러니 B를 받았구만.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자"
꽤 재밌는 단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무리를 이따구로 냈다니!
그럼에도 당사자성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