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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Jan 27. 2021

이상과 현실의 간극 그 사이에서

역설


언제나 세상 모든 것들엔 실전이 필요한가 보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내성적이었다. 아니 멋모르는 유치원 때는 물려받은 운동능력 덕에 곧잘 여러 운동들을 잘했고, 반 아이들 앞에 나서 시범도 잘 보였던 거 같다. 딱히 먼저 나서진 않았어도, 날짜가 내 번호랑 겹치는 날이며 선생님이 시키시는 책 읽기, 나와서 문제 풀기 등을 하면서 떨린다거나 그냥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다던가 그러고싶진 않았던 거 같다. 그러던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부터일까? 언제부턴가 남 앞에 서서 주목을 받는 자체가 무척이나 두려워 그렇게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 버린 거 같다.


한창 이 증상이 심할 때는 어디 가게에 들어가 계산하는 것조차 심장이 쿵쾅거려 동생에게 심부름값 500원을 쥐어주며  시키곤 했다. 전화받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으며, 반 아이들 앞에 나와 뭐라도 시킬까, 혹시나 그래서 주목받게 될까 늘 노심초사했다. 이런 타고난 성향이 어릴 적엔 속된 말론 ‘호구’가 되기 딱 좋은 성격이었고, 이래저래 알게 모르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그냥 넘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 나이는 하나, 둘 차오르고 질풍노도의 학창 시절을 겪어 성인이 되었다. 현실은 현실 이랬던가, 어쨌든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 풍파를 뚫어가야 했고, 더 이상 문의 전화에 망설이거나 잘못 산 물건을 들고 환불을 해달라 요청하거나 하는 일 따위를 두려워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일들을 처리해야 함은 너무 빈번히 일어났고,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었다. 그럼 어쩌랴 해야지. 현실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게 참 어렵다. 혹시라도 칠판 앞에 나와 문제를 풀거나 발표를 해야 하나 걱정을 일삼던 학창 시절을 졸업하고도 이 환경은 끝나질 않았다. 아니, 사회에 나와서가 진짜 시작이었다. 울타리 밖을 벗어나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온갖 위험의 참혹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건 본인 자신뿐이었다. 먹고 삼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 치대여 어릴 적 피어오르던 ‘장래희망’ 칸에 써 내려가던 꿈들은, 나약한 나에게서 사라져 갔다. ‘뭐가 되고 싶다’는 ‘뭘 해 먹고살지’로 바뀌었고, 좋아하는 것, 되고 싶은 것, 살고 싶은 미래는 도대체가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다.


어릴 적 나는 참 재능이 많았다. 감사하게도 이기적 유전자는 나에게 좋은 조합을 주고 싶었나 보다. 끌어 모아 모아 여러 가지 재능을 하사 해주었는데 유독 특출 났던 게 그림과 운동 능력이다. 진작에 알아본 엄마는 미술학원을 보내 주셨고, 수영을 베이스로 삼는 유치원에 보내주셨다. 나는 신명 나게 그림을 그렸고, 수영을 했다. 재능 덕에 잘하니깐 재밌어서 재밌게 한 건지, 좋아하는 게 잘돼서 재밌게 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인간인지 꽤 알게 된 지금의 내가 생각해보면 어쨌든 막힘 없이 잘 되니깐 그렇게 자발적으로 즐겁게 했던 거 같다. 나는 그냥 했는데 그냥 잘 됐다. 시키는 수영은 별 무리 없이 접영까지 완료를 했고, 유치원에 내 키보다 두배는 큰 풀장에도 스스럼없이 들어가 즐겼다. 또래보다 특출 나게 잘했고, 일등은 늘 나의 몫이었다. 뜀틀이나 옆구르기 달리기 같은 기본 운동능력들도 항상 시범을 보였고 계주를 뛰었다. 그냥 무슨무슨의 날이라니깐 그려내라 했던 그림은 교내, 교외 할 것 없이 상을 받았고, 그 어린날 내 일상은 내 방 책상 위에서 하루 종일 만화를 그리고 만화책을 보는 게 일이었다.


자 뭐 너무 내 자랑에 재수 없을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별 이유 없이 잘되는 일들만 하다 보니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앞엔 늘 피하기만 하는 인간이 되어있더라.


재능은 영원하지 않았다. 세상은 넓었고, 나 정도쯤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이었다. 재능을 가져도 꾸준히 가꿔 나가지 않으면 노력에 쉽게 잠식당한다. 처음부터 너무 잘 되기만 한 나는 막힘의 노고를 몰랐고,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이겨낼 방법을 몰랐다. 나보다 잘 그리는 애들이 내가 받던 시선과 칭찬을 가져갔다. 또 나름 욕심이 다분했던 인간이라 내가 더 잘해볼 거라고 열정을 불태워 보지만, 쟤가 되는 일이 나는 안되었다. 이런 게 처음인 나는 안 되는 일 앞에선 늘 몇 번 해보다 짜증을 내며 때려치우기 일수였다. 그렇게 처음부터 완벽을 그리고 그만한 성과가 나야 만족할 텐데, 높아진 이상만큼 따라주지 않는 나 자신을 점점 비난하게 된 거 같다. 비난은 회피만 낳았다. 진득하게 마무리함을 져버리고 새로운 걸 찾아 또 새로운 기대만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애초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내가 새로운걸 한다고 끝까지 해내어 잘할 리가 없었다. 또 조금 하다 말았고, 또 조금 하다 말았다. 이러니 뭐가 되고 싶어요! 하던 그 수많은 꿈들은 이미 사라졌었다. 더 이상 그림은 그리지 않게 되었다.



뭐, 이 일은 그림에만 국한되진 않았다. 세상 모든 일 앞에서 나는 조금만 뜻대로 안 되면, 조그만 어려우면 회피하기를 택했다. 그러니 커갈수록 자신감은 결여되었고 세상이 비판적이었다. 문제를 내 안에서 찾는 게 아니라 뭐든 되는대로 탓만 하게 커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 같았다. 그 빛나던 어린날의 내가 이래 될 진 몰랐지. 어쩌면 이게 나를 더 내성적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설적인 삶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깨달음의 기회도 준다. 


인정하기 싫어 이마저도 회피하고 있던 내 못난 점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언제나 결괏값만 들고 내 존재가치의 여부를 비난만 하던 짓이 끝나지 않는 블랙홀이란 걸 알게 되었다. 역경에 처한 사람은 흔히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대응한다 한다. 안타깝게도 난 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었다. 자기 판단과 수치심에 휩쓸려 자신을 공격하거나, 자존감을 높이려고 합리화와 격려의 말로 실수를 덮는다. 스트레스를 받은 뇌는 편도체에서 투쟁, 도피, 경직 호르몬들을 내뿜는다. 호르몬들은 뇌의 학습센터를 방해해 문제를 회피하고, 자기비판은 잠재의식 속에 남아 어느 순간에든 튀어나와 나를 휘감는다. 그렇다. 세상 모든 어려운 일들은


피하기만 할 수 없다는 것.
그 일을 자꾸 반복하는 것 만이 해결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어렵다. 남들 앞에 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목받는 것, 호기롭게 시작한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아 휩쓸리는 감정에 나의 존재 여부를 비난하는 것이. 특히나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내 주장을 꺼내는 것은 아직까지도 생각만으로 식은땀이 나고, 의연한 척해보려 하지만 심장이 쿵쾅대며 목소리부터 누구나 알아들을 정도로 벌벌 떨린다. 하지만 이제 전처럼 마냥 피하기만 하진 않는다. 마냥 날 비판하기만은 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고등생물인 인간은 학습을 통해 진화한다. 내 이상과 간극이 너무 큰 지금의 날 인정하고, 그래서 괴로운 나를 보듬어 주려 노력한다. 다시 해보자 말을 건네며 괜찮다고 토닥여 준다. 뭐가 문제인지 찾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아주 조금씩 능력치를 키워 나감에 초점을 맞춘다. ‘꾸준히만 하자.’ 계속해서 반복하여 그 일이 익숙해져 쉬워질 수 있음에 초점을 맞춘다. 그냥 그렇게 나를 달래며 이상을 좇아 간다.


욕심 많은 나는 누구보다 내가 잘 되길 바랬기에 괴로움도 그만큼 더 컸다.


이제 그만 괴로워하려 한다. 괴로움 대신 타인이 되어 나에게 용기와 희망의 말을 건네므로 나를 괴롭히는 모든 일들에 계속 부딪혀 보려 한다. 뭐 그러다 보면 이 지독한 ‘남들 앞에 나서기가 죽기보다 싫은’ 떨림도 능숙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를 들어내는 건 나에겐 참 큰 도전이자 숙제이다. 그렇지만 해 내보려 한다.


내가 그리는 이상의 나를 위해서.
누구보다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림도 다시 그려 본다. 재능을 놓아버린 지금도 그림은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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