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빠의 편지
아이들이 태어나고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많이 사랑하고 열심히 놀아주고 아빠와 시간을 많이 갖는 것,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다음으로 열심히 회사를 다녀서 정년까지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년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눈을 질끈 감고 동시에 이를 악 물고 버티면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은 시키고 퇴직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회사에 붙어 있으면 의식주 문제와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해결이 된다. 결론은 애는 일찍 낳아서 키워야 한다. 그게 답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특별한 편지를 남기기로 했다. 바로 아빠의 편지다.
나는 10살 이전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7살 이전은 전무하다. 7살 이전 시기는 부모님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리 사진을 열심히 보아도 전후 사건과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7살부터 10살 정도까지는 사진을 보면 그나마 사진과 연계된 사건과 기억이 어렴풋하게 생각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의 기억나지 않는 유년시절의 모습이 많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모님의 기억 말고는 그리고 몇 장의 사진 외에는 어린 시절의 기록이 없었다. 그러한 아쉬운 마음을 담아,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들려주고 보여줄 아이들의 성장일기를 ‘아빠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쓰기로 했다.
아빠의 편지를 처음 쓸 때는 육아일기처럼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이메일로 보내야 분실의 위험이 적고 보관과 읽기가 편한 까닭이었다. 그런데, 잠도 부족한데, 매일 따로 시간을 내서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부담이 됐다. 그래서 주 2회로 쓰다가, 결국 주 1회로 조정했고, 지금까지 주 1회 정도 아이들에게 ‘아빠의 편지’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아래는 아빠의 첫 번째 편지다.
사랑하는 봄아 꿈아. 드디어 아빠가 너희들에게 처음으로 메일을 쓴다. 너희들이 태어난 지 이제 76일. 너무 늦었다. 미안. 조금 더 빨리 시작했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 같아서는 이렇게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너희들에게 아빠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 또 너희들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아빠의 편지를 보면서 우리가 어릴 때 이랬구나 그러면서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빠도 기분이 좋다.
어제는 예방접종으로 병원에 갔었다. 꿈이는 눈곱이 많이 껴서 그것 때문에 걱정도 됐고, 봄이는 심장소리가 조금 나아졌는지 그것도 궁금해서 아빠가 반차를 쓰고, 반차는 오후 휴가를 말하는 거란다, 집에 오후 2시 40분 정도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꿈이는 자고 있었고 봄이는 바운서 위에서 귀엽게 놀고 있었지. 옷을 입고 엄마랑 할머니랑 콜택시를 불러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꿈은 아빠가 품속에 안고 갔었고 봄은 할머니가 안고 갔다. 어제 주사는 두 개를 맞았는데, 뇌수막염이랑 폐구균. 근데 이 폐구균이 예방접종 주사 중에는 제일 아프다고 그러더라.
너희 둘은 역시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는지, 병원에서 기분 좋게 잘 있었고 주사 맞고도 그때만 잠깐 울고 바로 그쳤었다. 어찌나 대견하든지 우리 아들들 너무 멋있다. 꿈이 눈곱은 눈물샘이 막혀서 그런 거라고 눈 마사지를 해주라고 하고, 봄이는 심장 잡음 소리가 더 줄어서 엑스레이만 나중에 한 번 더 찍자고 하더라. 꿈이 봄이보다 키는 1센티 정도 크고 몸무게는 100그램 정도 덜 나간다. 하루하루 너희들 크는 모습을 보면 아빠는 너무 기분이 좋고 신기하다. 우리가 언젠가 언어로 말과 말로 소통하는 날 너희들이 엄마와 아빠를 부르는 날 그 날의 마음은 얼마나 또 벅찰까.
봄은 요즘 옹알이를 많이 한다. 너무 귀여운 소리를 많이 내고 있고 꿈은 가끔씩 옹알이를 하고. 아 그리고 너희들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봄은 조금 점잖아지고 있고 꿈이는 더욱 야성미를 발하고 있다. 둘 다 너무 건강하게 잘 먹고 잘 놀아 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봄아 꿈아. 우야 준아. 보고 싶다.
배움은 끝이 없고 일은 할수록 요령이 생긴다. 묘하게도 아빠의 편지가 그랬다. 아빠의 편지를 쓸수록 아이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고, 고민하게 됐다. 어느 정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육아의 세계가 끝이 없는 것처럼 아이들의 세계도 끝이 없었다. 아이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고, 아이들을 더 이해하도록 노력하게 됐다.
또한 아빠의 편지도 쓸수록 요령이 생겼다. 시각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처음에는 사진만 첨부했는데, 점차 동영상과 음성을 붙이며 더욱 생생한 기록을 만들었다. 요일을 찾다 보니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노래 제목처럼 토요일 밤이 좋았다. 토요일은 본가를 다녀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차에서 잠이 들어 밤 시간을 오롯이 쓸 수 있었고, 다음 날 늦잠을 자도 부담이 없었다. 토요일 밤에 아빠의 편지를 쓰다 보면 지난주의 일을 떠올리면서 글을 써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일주일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시에 이것은 나에게 또 다른 만족감으로 다가왔는데, 우선 아이들과 평일에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대한 위로가 되었다. 또한 내가 비록 머리는 다 빠지고 체력은 저질인 늙은 아빠지만, 그래도 괜찮은 아빠라고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근거가 됐다.
아빠의 편지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됐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감기 등으로 아프게 되면 그 원인과 증상, 회복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렇게 기록해 보니 쌍둥이들은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떨어질 때 산책을 나간 경우 예외 없이 감기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아빠의 편지에는 그날의 최저 최고 기온과 풍속을 같이 적어서 바람이 많이 불고 일교차가 심한 날은 외출을 삼갔다. 또 감기를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아이들이 열이 나도 39.5도 까지는 버틴다는 것을 알게 됐다. 39.5도를 넘겨야 심하게 보채거나 힘들어했다. 그래서 해열제 먹이는 온도를 39.5도로 잡았다. 그렇게 해열제 먹이는 온도를 비교적 높게 잡았더니 웬만한 감기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냈다.
부부싸움을 했을때도 아이들의 반응도 기록했다.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이 엄마 아빠 눈치 보고 풀이 죽은 모습을 확인하게 됐다. 이것도 예외가 없었다. 조금 더 커서는 ‘엄마 아빠 지금 싸우는 거야’ 그러면서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아이들이 자고 싸우고 어지간하면 대면 싸움을 피하고 카톡 싸움으로 하자고 합의하고 이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이렇게 아빠의 편지는 아이들의 성장일기이자 우리 가족의 실록이 되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것 중에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부하는 것이 바로 아빠의 편지다. 나는 언젠가 아이들을 떠나 하늘나라로 갈 것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기억은 활자로 남아 이메일을 통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내가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면, 쌍둥이들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질 때면 바로 들여다볼 수 있는 최고의 기억 저장장치가 바로 아빠의 편지다. 처음에 마음먹었을 때는 아이들이 10살이 될 때까지가 기한이었는데, 아무래도 10년 더 연장할 것 같다. 아이들이 아빠와 거리가 생기고 사춘기가 되면, 말도 하기 싫다고 하던데, 그러면 이메일은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어쨌든 나는 아빠의 편지를 내가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써 보려고 한다. 아이들은 아빠의 최고의 보물이고 아빠의 편지는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아빠만의 특별한 보물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