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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바나나 May 01. 2024

오늘, 유행의 맛(1)

옷장을 나답게 채워나가는 방법


나는야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맥시멈 리스트.

그러다보니 계절마다 넘쳐나는 옷들로 골머리를 앓는다. 옷이 공간을 잠식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옷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기필코 오늘은 옷 정리를 끝내리라. 베란다에 있는 옷 박스들을 하나둘씩 열어보았다. 구매한 지 꽤 오래된 옷들이 가득하다.


“음 이건 작년에 산 옷들이지만, 지금 입기에도 아주 예쁜걸!”

“이건 대학생 될 때 산 옷 아닌가? 아직도 나한테 있다니!”


‘나만의’ 안목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 유행을 따라 샀던 옷들이 보인다. 지금의 나로써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누군가 공짜로 준다고 해도 선뜻 기쁜 마음으로 받을 자신이 없을만큼.


 나는 유행이라는 불과 함께 쉽게 타올랐다가 쉽게 꺼지곤 하였다. 그 시절 내가 유행을 따르고 싶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그들과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 함께 속해져 있다는 소속감, 그래서 그들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느껴지는 연결감. 이 3가지를 느끼고 싶었다. 그들과의 괴리감을 느끼지 않고 싶었던 나는 유행을 따라 함으로써 세 가지를 충족시키곤 했다.      

 

데님 청바지 유행의 뿌리였던 ‘L’ 사의 청바지는 10여 년 전 90년대생들에게 유행하던 옷 중 하나였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선명하게 박음질 되어있는 갈매기 모양의 로고는 스스로가 ‘간지나는’(이는 스타일이 살아있다, 멋지다 등을 표현할 때 많이 쓰였다.) 사람이 되게끔 했다. 특히 얼짱 인플루언서들이 펑퍼짐한 ‘L’ 사의 청바지를 입고 나오면서 시중에서는 불티나게 팔렸다.

 길거리를 가도, 친구들을 만나러 식당을 가도 대부분 ‘L’ 사 구제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바지를 입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부모님에게 졸라 그 바지를 사러 매장에 갔다.


“요즘 유행하는 그 구제바지 주세요!”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서둘러 바지를 샀다. 거울 속의 나는 간지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빨리 바지를 입고 그들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L’ 사 바지의 유행이 지나면서 늘 옷걸이에 걸려있었던 바지는 옷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그 바지의 존재는 잊혀졌다.

시간이 흘러 옷 정리를 하던 중 먼지가 가득 묻은 바지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다리가 아주 짧아 보이면서 살집이 있는 나에게는 더 통통한 느낌을 부각해 주는 것 같았다. 과거 나의 깃을 세워주었던 바지가 지금은 내 체형의 약점을 부각하는 바지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각 체형의 강점을 부각하는 스타일링이 등장하면서, 나는 나의 체형에 걸맞은 옷이나 색상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만의 ‘안목’이 생겼다.


 스타일에 대한 안목이 생기는 시기나 나이는 따로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삶의 경험을 통해 안목이 형성되며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경험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안목이 발달하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 발달을 위한 자신의 가치, 신념, 취향 등을 자각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성인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볼 줄 안목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 깊고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부딪혔던 경험이 많다는 말이다. 나다운 스타일은 나에게 잘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일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내가 옷을 살 때 염두하는 기준들이다.

1. 모던한 스타일

2. 연한파랑(스카이블루), 인디핑크 등 무채색 파스텔 계열

3. 일자 통바지나 A라인 와이드한 하의     

 

1-1.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 세부적인 디테일에 더 주목한다.

2-1. 나는 퍼스널 컬러 여름 쿨 뮤트에 해당된다. 채도 낮은 무채색 상의계열 중 대표적 색상 은 소라색, 인디핑크가 해당된다. 선택하면 안되는 색상은 쩅한컬러, 카키, 어둡고 답답한 계열이다.

3-1. 상체에 비해 하체에 살이 많은 나는 허벅지가 달라붙지 않는 일자 통바지나 A라인 와이드한 스타일의 바지가 옷 맵시를 살려준다. 나는 드디어 내 체형을 받아들이고 빛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추럴. 궁극적 자연스러움. 민혜련 작가님의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에서 “패션 하면 떠올려질 만큼 모든 시대의 유행이 모두 공존하지만, 파리에는 유행이 따로 없다.” 라며 그들의 몸에 걸치고 있는 의복의 색상, 스카프 하나, 아이템 하나가 조화를 이루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고, 자기 몸의 수준에 맞는 대로 입고 싶은 대로 다양한 스타일을 즐기는 것이 그들의 유행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하는 문화가 유행이라니.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지향하는 나라는 역시나 뭔가가 다르다. 유행을 따르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자연스럽고 진실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다움’은 애초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옷정리를 계절마다 하면서 맞지 않던 옷을 입었던 과거의 나의 스타일을 청산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적합한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찾아 옷장을 채워나갈 것이다.


오늘 유행의 맛은, 나만이 소화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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