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낑깡 Feb 22. 2022

복숭아

말랑해도 고슴도치가 되고 싶을 수 있잖아요

복숭아와 낑깡 (1)

말랑해도 고슴도치가 되고 싶을 수 있잖아요


  복숭아는 K-장녀다. 어떻게 하면 K-장녀일까요?의 교과서 같다. 엄격한 부모님이지만 막내에겐 한 없이 다정한. 늘 우리는 복숭아에게 반역(?)을 꿈꾸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이 어려운 것을 알기에 마냥 뭐라고만 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복숭아는 참 순하다. 사람이 참 동글동글하다. 말랑말랑한 복숭아와 딱딱한 복숭아 중 말랑말랑한 복숭아를 닮았다. 달고 즙이 많고 동글동글한. 나는 말랑말랑한 복숭아 파라서 그런 복숭아가 참 좋다.


  하지만, 그런 복숭아도 말랑한 과육을 지키기 위해 가시가 있으니. 말랑말랑한 속에 속으면 안된다. 부들부들해보인다고 함부로 대하면 부드러운 털이 손에 콕콕 박힌다. 부드러워도 제법 아프다. 어렸을 때 뭣도 모르고 복숭아를 얼굴에 부볐다가 큰 코를 다친 나는 복숭아의 무서움을 안다. 그래서 복숭아는 복숭아다.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가시를 지녔으니까. 그래서 나는 복숭아를 부드러운 고슴도치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낑깡의 과일 놀이터>를 기획하면서 복숭아는 무조건 복숭아다! 하고 마음 속으로 꼭 정하게 되었다. 복숭아는 그런 카리스마를 지녔다.


  늘 꽁꽁 참는 복숭아는 내내 혼자 앓다가 화를 내는데 그마저도 너무 부드럽다. 고등학생 때 복숭아를 처음 만난 나는 그런 말랑한 복숭아가 싫었는데, 이내 그 말랑함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나서야 알았다. 복숭아는 자신 나름의 가시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기꺼이 자신의 말랑말랑한 속을 꺼내 줄 수 있지만, 자신을 겉만 보고 판단하려는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털을 내밀어 타인을 밀어낸다.


  "나도 좀 단호해지고 싶어."


  언제 한 번 같이 술을 마시다가, 고민을 말하면서 복숭아가 이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복숭아를 위로하면서, 복숭아가 영영 단호해지지 않았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랑말랑해도 고슴도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복숭아가 단단해져야만 자신을 지켜야하는 세상이 싫다. 그래서 복숭아를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미워할 용기를 얻게 된다. 복숭아가 말랑말랑한 가시로도 세상을 힘껏 살아낼 수 있도록.  


* 이 글은 복숭아의 허락하에 게시되었습니다.

* (1)이 붙었지만 시리즈가 이어질 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