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의 순수의 시절을 듣고
대학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문득, 고등학생 때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누군가 말했다. 그 말에 (취한) 나는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말하고 너무 과했나, 싶었는데 애들은 낑깡이가 취했나 보네, 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정말로 진심이었다. 술맛 떨어지는 말이었다. 나는 누군가 내 머리에 총을 겨누면서 고3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극도로 예민했고 살이 쭉쭉 빠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타입임에도 살은 쭉쭉 빠졌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엄마에게 나를 굶겼냐고 말했고, 예민의 끝을 달리던 나는 화를 냈다. 왜 애꿎은 사람한테 그래요! 저 잘 쳐먹고 살거든요?! 빼액, 소리 지르면 고3이라 그런가 보네. 하고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몸무게에 올라가서, 숫자로 나의 스트레스를 체감하는 일은 정말 싫었다.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머리를 쓰는 것만으로도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고3 때는 정말 바빴다. 네가 서울로 갈 수 있겠어?라고 대놓고 말하는 선생님과의 신경전과 하루에 100문제씩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 국어, 영어, 사탐 모의고사 정오답. 간헐적으로 나오는 숙제들. 내가 입시를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일…. 그것은 잠을 자지 않고 하루를 꼬박 새워해도 끝이 나지 않았다. 학교를 가야 하는데 숙제를 다 하지 못한 나는 그 자리에서 수학 문제를 풀면서 뚝뚝 울었다. 내가 우는지도 모르고 울었는데, 나를 깨우러 온 엄마가 말했다. 너 뭐하냐고, 왜 우냐고. 나는 엄마한테 해도 해도 숙제가 안 줄어요. 나는 진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다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낑깡아, 힘들면 그만해도 돼.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할게. 괜찮아. 괜찮아. 우리 엄마는 '그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날 처음으로 엄마 입에서 공부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을 나는 음악을 통해 위로받았다. 가장 생각나는 노래는 당연하게도 이소라의 '순수의 시절'이다. 나도 언젠가 '끝이 닳아버린 교복을 보며 너무 많이 야위었다'는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 그 생각으로 버텼다. 교복을 보며, 내 기억을 미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때의 내가 버텨주어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힘들었던 시간이 힘들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소라의 '순수의 시절'을 들으며 그 시절을 씁쓸하게 웃으며 보내 줄 수 있었다. 이소라의 노래는 함부로 희망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소라는 덤덤하게 현실을 노래하며, 그 현실 속에서 해야 할 일을 나열한다. 숨소리마저 노래 같은 이소라의 목소리와 어우러져서, 이 노래를 들으면 매번 속수무책으로 울게 된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모두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끝도 없는 시험속에 살고 있지만 그렇게 작은 일에는 서럽게 눈물 짓지'말라고. '구속같은 이 시간을 벗어 나오면 새롭고 낯설은 딴 세상이' 될 거라고. '문을 열어 저 어둡고 사납게 거친 하늘을' 보라고. '아무도 도울 수 없'으므로 '나 혼자 일어서야'한다고. '지금보다 더 힘들고 불안한 삶의 표적들이 내게 다가'오겠지만, '잊지말'라고. '이 푸르름의 날들을'.
이소라의 '순수의 시절'을 들으며 나는 지옥 같던 날을 '푸르름의 날들'로 바꿀 수 있었다. 잔인할 만큼 순수했던 시절. 순수는 죄가 아니지만, 잔혹하다. 그 시절을 잔혹했지만 보내줄 수도 있어야, 무거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