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가, 2013년도부터이니 어느덧 10여 년이 되어간다. 처음 이 방송을 봤을 때는 그 흔한 예능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장수하는 것은 나름의 사회적 실상을 담기에, 젊은 층들의 사회적 공감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혼자 사는 이유야 개인별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자유롭다는 것이 좋다고 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배우자에게 나머지 생(生)에서 끊임없는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다. 서로의 배필로 만나 부부가 각자 하고픈대로 한다면 결혼생활은 유지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젊은 사람들은 구속으로 보는 듯하다.사회적인 여건도 안정과는 멀어지고, 가변성이 심한 세태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러한 기류가 형성된 듯 보인다. 외로움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인식이 확산된 것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장년세대인 나 또한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는 한다. 인생의 우여곡절 끝에 무슨 인연인지 숲과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다루는 방송으로 공감 가는 면이 많다. 아마도 내 나이 또래의 시청자가 많은지, 12년이 넘는 동안 두 명의 개그맨이 고정 출연하여 이런저런 잔재미와 감동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엔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남성들의 로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 혼자 산다'의 맥락과 비슷한 연상이 되고는 한다.
홀로 산다는 것이 나 또한 나이가 들어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나만의 판단과 생각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것도 나름 매력이 있다. 실제로 나는 혼자서 산다. 뒤늦은 나이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한 달이면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 아내와 딸애가 있는 곳에 다녀오곤 한다. 아직 직장생활을 하니 혼자서 지내기엔 별 무리가 없다. 딸아이가 지방에서 직장을 다녀, 돌봐주려 아내가 왕래를 했다. 그러다 덜컥, 입원을 하게 되어 퇴원 후 외래도 지속적으로 다녀야 하기에 아예 딸과 지내라고 했다.
처음엔 혼자 지내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빈집에 나 홀로 있어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습관이 중요하다. 간단한 집안일조차도 일일이 전화로 아내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었다. 한동안 그런 일상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는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같이 있는 것이 매 순간 즐거울 수는 없다. 의견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발전하면 다투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어설픈 경험으로 독신주의를 찬양하자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글쓰기에는 좋은 점도 많았다. 글을 구상하거나 몰두하기에는 좋은 환경이 되곤 한다.
지난 시간을 생각하자면 나는 혼자 있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젊은 시절 군생활 때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한 경험은 있으나 워낙에 혈기가 좋은 시절이라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주위에 몇 사람이 늘 있고는 하였다. 지금의 나이가 되어보니 진정한 고독이 무언지 어렴풋이 가늠이 된다.집의 문을 열면 아무도 반기는 이가 없다는 것은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기 좋은 면이 있다. 나만의 느낌을 사회현상과 엮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들이 혼자 산다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되는 요즘이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층들은 무엇보다 기존의 장년세대와는 다른 인식의 틀로 사회를 바라보는 듯하다.
'연애는 필수이고, 결혼은 선택'이란 유행가 가사와 같이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 때와는 많은 점에서 달라진 세상이다. 혼자 사는 자유로움을 구속시키면서까지 결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못 찾겠다는 이유가 최근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결혼에 대한 시각이다. 막상 사랑하는 이 가 있어 결혼을 하려 해도 출산과 육아 등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현명한 요즘 세대들이 모를 리 없다. 현실을 정책은 따라오지 못하고, 그러는 사이 여전히 출산율은 낮아지고, 고령화 세대는 늘어만 간다. 젊은이들이 있어야 고령자들을 부양할 재원이 확보가 될 텐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표류하고 있다. 불과 몇 년 후에는 어떤 현상이 사회에 펼쳐질지 모른 채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서사(敍事)는 점점 사라져 간다. 표피적이고, 말초적인 느낌만을 강조하는 영상이 대세를 이루다 보니, 뭔가 깊게 사고하는 인간형도 주변에서 볼 수 없어진다. 정녕 스마트한 지배에 순응하고 예속되어 가는 것일까?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과 같은 위기를 인간은 겪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전 인류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억압하는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저항도 없다. 의미는 뒤로하고 삶을 게시하고 공유하며 '좋아요'를 하도록 지배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보는 포화 상태가 되도록 공유하는 통에 무엇이 진실인지, 혼돈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새롭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뉴스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이슈에서 이슈로 군상들은 시시비비를 따져보지도 않고 이동할 뿐이다.
남들의 삶을 훔쳐보는 사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만의 이야기는 의미 없는 것인 양 치부하는 사이 연애와 결혼도 부질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젊은 층들이 늘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얻고 싶은 경험에서 결혼이란 목록은 배제된 듯하다. 부모를 통해서 또는 친구인 지인들을 통해서도, 좋지 않은 정보만을 흡수한 이런 문화 속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즐거운 경험일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지 않는다. 결국 인프라의 확충을 통한 정책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아직은 요원한 정책적 후원은 나름의 자구책을 쓰고 있지만, 결국 결혼도 해볼 만한 인생의 경험이라는 사례가 주변에서 확산적으로 일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젊은이일수록 온라인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적 경험이 필요한 시기이다. 뭔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겪고, 거기에 관련된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어떤 일이든 경험을 하게 되면 뇌 속의 스냅스가 가소성을 일으킨다. 즉, 어려운 일을 마주 할수록 거기에 관련된 스킬이 증진되고, 방법을 찾는 기술이 향상되도록 진화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말이다. 젊다는 말이 도전한다는 의미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결혼 또한 생각하기에 많은 난관이 예상되지만, 결혼의 의미는 이성을 만나 자식을 낳고 자신의 DNA를 지상에 남기어 영원한 삶의 증거를 남기는 숭고한 일이다. 표피적으로 종교적이거나 과학적인 예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자신이 낳은 자식은 나의 또 다른 자아처럼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결혼을 하여 2세를 낳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감정이다. 비록 사회가 충족할 만큼의 지원이나 환경이 안된다손 치더라도,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증표로서 출산과 육아는 의미 있는 일이다. 모쪼록 의미 있는 문화적 기풍이 일어 젊은이들이 자신을 완성시키는 일에 망설임 없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