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일기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뇌강의를 해야 한다. 주제는 '치매'인데 사실 市에서 주관하는 광역치매센터에서 퇴직자들에게 사회봉사 차원으로 하는 모집에 응모했다가 덜컥 연락을 받았다. 몇 번의 양성과정 모임을 끝으로 이젠 실강의를 해야 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준비한 PPT를 점검해 본다. 가지치기 대본을 만들어 내가 말할 것들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연습해 보았다.
먼저 '문제'라는 단어가 뜬다. 아이들이 흥미롭게 봐줄까?
"'문제'라는 글자가 나타나니까 괜히 골치 아픈 얘기하는 거 아냐? ~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ㅋ
꽤 재밌는 시간이 될 거예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를 치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해요!
우리 몸의 심장, 폐, 위, 대장, 소장 등을 많은 연구 끝에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냈어요!
그런데 머리 부분인 뇌에 대해서는 아직도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우리의 머리에 해당하는 '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우개, 곰인형, 자동차, 나무, 연필, 크레용, 해바라기, 칫솔 등의 그림이 화면을 채운다. 클릭을 하면 곰인형과 해바라기가 사라진다.
"뭐가 없어졌죠?" (다들 합창하듯 맞추면) "역시 우리 반학생 들은 똑똑해요."
다음은 토끼, 캥거루, 사자 등이 나타난다. 그리고 역시 사라진다. 하나씩 아이들이 맞추면, "이건 좀 간단하다. 그렇죠?.....' 토끼, 헬스보이 캥거루, 사자...., 와우 맞았어요!"....., "굉장해요!"
"다음은 과일의 순서 맞추기 "바나나, 귤, 딸기 수박, 파인애플......, 이렇게 되죠?"......, '우와...., 여러분들의 기억력은 정말 최고예요" 초등학교 4~5학년의 기억력을 감히 나는 평가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치매에 관한 강의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우리 시의 65세 이상 인구 중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치매....., 결코 나을 수 없는 병...., 좋아질 순 있겠지만,......, 결코 완치는 안 되는 노인질환이다. 어머니는 혈류성 치매로 7년여를 이리저리 요양원 순례 끝에 돌아가셨다.
어느 날 지방에서 올라오던 나에게 여동생은 전화를 했다. "엄마가 뇌진탕을 일으켜 입원했어" 한동안은 이게 무슨 소린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막내 여동생 아이들과 실내 아이스링크를 갔었던 모양이다. 입구 쪽이 붐비고 미끄러웠던 그곳에서 어머닌 넘어져 뇌를 다친 것이다. 병원으로 달려간 나는 아연실색했다. 어머니의 머리에서 무슨 플라스틱 줄이 링거병과 연결되어 있는데, 병의 반을 혈액이 차오르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이 바로 인지 되었다. 여동생과 담당의사의 방에서 연락이 와 들어갔다. "일단 머릿속 뭉친 혈액을 빼내고 하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한 1~2년 내로 혈류성치매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선생님!..., 뇌는 어떻게 생겼어요?" 마침 적기의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슬라이드를 넘겼다.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등..., 그동안 학습했던 내용을 아이들에게 나름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한다.
"먼저 머리 앞쪽의 전두엽이 중요해요! 생각이나, 문제해결, 계획 등을 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요." 뇌의 구조를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뇌를 망가지게 하는 안 좋은 습관들에 관한 설명을 시작한다. 나는 특히 스마트폰에 대한 습관이 아주 위험하다는 취지의 말을 힘주어했다. "뇌의 전두엽은 운동하는 근육처럼 자주 써야 튼튼해지는데, 스마트 폰을 오랫동안 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결국 전두엽이 약해져요."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 2010년도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이후로 인간의 습관은 바뀌었다. 사실 몰랐었다. 그의 발표가 인류의 뇌에 미칠 영향에 대해 그 당시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부터도 언제부턴가 한번 손에서 시작한 스마트폰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손바닥 안의 PC인 이놈은 어떤 작업이든 거뜬히 해내기 때문이다. AI가 나온 이후에는 더욱 편리해져 생각의 영역은 점점 줄어드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허울 좋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 그러면 공부를 위해서는 핸드폰이 나쁜 거예요?" 나는 나름의 지론은 있었다. 한창때의 이 아이들이 이 작고 무한히 유용한 기기를 자주 쓰다 보면 생각과는 담을 쌓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몇 마디 했다. "여러분의 뇌는 한창 자라는 중이라 생각을 안 하고 무조건 찾기만 한다면,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 잡힌 생각이 성장할 수 없어요." 스스로 생각해 봐도 나름 좋은 답변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하루 몇 시간이라도 멀리 하는 것이 여러분의 뇌건강과 성장을 위해서 좋을 거예요."
사실은 치매예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하는 교육인지라 아이들에게 치매에 관해 설명해야겠지만, 자신들과 연관된 말을 해줘야 집중이 될 것 같아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았다.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기억이 사라진다고 했는데, 오래된 기억보다 최근 기억이 먼저 사라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것 같았다. 학습의 기본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지만 그 이해에 도달하기까지 통각의 과정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문득 아이들의 눈동자가 너무 반짝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만 먹고 생각은 아직 어린 내가 이런저런 말로 아이들을 오히려 혼돈스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예순이 넘었다고 무조건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가 나는 영원히 학생 수준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답답해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근의 풍조는 나부터도 궁금한 것은 폰의 AI앱을 뒤지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하물며 이 아이들에게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인생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과연 AI가 실마리라도 제공할 수 있을까?...., 그럴 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한다. 아이들이 이런 위험을 인지를 할까?
초등학교 수업은 예전과 달라 40분 수업에 10분 휴식으로 되어있다. 그 짧은 시간에 내 머릿속에 휘도는 생각을 모두 말하기는 어려웠다. 벌써 보조교사로 나온 치매센터 직원은 설문지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만면에 웃음기를 머금고 마지막 한마디를 했다. "우리 학생들! 늘 생각하는 사람이 되세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네!"라고 길게 화답해 줬다. 수업을 모두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처서가 지난여름의 끝자락치고는 이상하리만치 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