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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Apr 30. 2024

헤이즐넛의 추억

한 잔의 커피와 풍경들



언제부터인가 커피는 우리 생활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어린 시절 프랑스 어느 곳의 풍경인 듯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유유자적 한 그림과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감흥은 아득한 그 나라만큼이나 우리네 사정과는 다른 풍경에 멋있다는 생각만 했었다. 어느 사이 우리나라는 커피 공화국이 되어 버렸다.


 큰 도로가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뒷골목으로 들어서자면 자그마한 개인 카페까지 커피전문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근무하는 곳이 젊은 층들이 자주 왕래하는 로데오거리가 가깝기에 나도 웬만한 카페는 다녀봐서 알지만, MZ세대들은 카페투어를 즐기는 듯싶다. 혹간 글을 쓰려고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는 곳의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열중하다 보면, 백색소음의 장소인 그곳이 은근히 집중하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스터디 카페'란 용어가 생경한 나이지만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왔다. 무엇이든 속도를 내야 유능해 보이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여 뒤돌아 보는 일 없이 앞으로 내달려 지금의 삶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커피로 보는 세상은 내 어린 시절의 그림 속 풍경과는 다른 듯하다. 여유나 낭만, 대화도 빠진 그저 한잔의 커피를 탐닉할 뿐이다. 나는 헤이즐넛 커피를 좋아한다. 70년대 외국의 어느 곳에서 저가의 커피를 유통시킬 목적으로 헤이즐넛을 첨가한 이 향기는 아련한 기억과 유아적인 입맛을 가진 나의 최애 커피다. 굳이 비교하자면 흐릿하게 섞은 코코아 향취가 느껴진다.


 아버지께서 항만근무를 하시다 누군가에게 얻어온 코코아 가루는 어린 나의 후각을 사로잡았다. 마치 프랑스 카페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그 풍미는 오래도록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었다. 그러다 만난 헤이즐넛의 향기도 좀 더 성숙한 코코넛 향으로 인지 되었다. 넛류의 견과를 볶은 음료인 공통점이 있으니 나의 입맛은 아직 아동기를 기억하는 듯하다.

 커피도 유행을 타는가 보다. 지금은 제3의 물결이 커피업계에 불고 있다고 한다. 소비 패턴에 따른 블루보틀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이끌고 있어 커피에도 나름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다방'이 시내 곳곳에 있었다. 한국식 카페인 다방은 건물의 가장 임대료가 싼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려면 다방부터 찾고는 하였다.


 그때는 커피를 비롯한 국산차들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산뜻한 느낌은 별로 없었고, 어둑하고 침침한 조명에 '레지'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서빙에 바쁜 걸음을 종종 거리며 이리저리 테이블을 옮겨 다녔다. 다방 레지가 프림과 설탕을 몇 스푼을 넣을 거냐고 물을 때면 나는 늘 내가 하겠다고 했었다. 그것은 레지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는 의사도 포함돼 있었다.


 요즘은 커피를 분위기로 마시는 듯하다. 커피맛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카페의 분위기 또한 큰 몫을 차지하는 듯싶다. 고즈넉한 곳에서 적당한 백색소음은 커피맛을 북돋우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수도권을 좀 벗어나 지방으로 갈수록 카페는 기업화되는 것 같다. 예전의 공장터나 공공건물을 매입한 카페는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김포의 Positive Space 566은 국내최대를 넘어서 세계최대의 카페라고 한다. 좌석 수만 2,000여 석이라고 하니 가히 한국인의 배포는 가상할 정도다. 어쩌다 들러 잠시 구경을 했지만 그 규모에 압도되고 말았다.

역시 한국인의 배포는 가히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문화의 단면으로 자리 잡은 카페는 생활양식의 변화를 가져와 이제는 주변에 카페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으론 SNS문화가 가세하여 카페시장이 확장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 광고시장으로의 접근은 SNS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 더 이상 인력에 의존하는 홍보는 있을 수 없다. 나부터도 새로운 식당이나 카페를 찾는 경우 관련 창의 댓글부터 훑어본다. 광고와 경험의 차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어리숙한 시절은 모두 지나가는 중이었다.


 우리 사회의 인식 중 하나인 자영업에 대한 생각들은 좀 무리수가 많다. 일단 카페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그 경향을 보자면 너무 쉽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커피의 맛은 거기서 거기니 색다른 각자의 인테리어로 무장을 하고 대충 바리스타 흉내를 내면 손님은 알아서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골목길의 수많은 카페가 다들 그런 식이다. 그러다 보니 대충 조금 하다가 대충 문을 닫고야 만다. 그 손해는 오롯이 본인의 몫으로 남는다. 자영업은 시작 전에 철저한 준비와 상권의 분석, 그리고 대중들의 취향이나 유동인구의 수까지 고려하여 차분히 수없는 의심을 동반하여 시작을 해도 성공할 확률이 낮은 생존게임이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난무하고 있다. 정보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누구나 쉽게 수많은 정보를 접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관련된 이야기의 줄거리 즉, 서사가 빠진 토막의 정보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한잔의 커피를 만들기까지 기나긴 인고의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이다. 여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꼰대의 마인드라 폄훼되고 묵살되겠지만, 진짜 중요한 핵심은 그 속에 숨어있다. 진행을 해보면 이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할 찰나에 이미 늦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할 뿐이다.

 강릉을 우연찮게 가보면 젊은 층들이 많이 가는 이유를 알게 된다. '테라로사'의 김용덕이란 인물이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무엇보다 각 개인의 각성이 중요한 사업마인드란 점을 강조한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철저히 캐고 안다음에 실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어설픈 감상은 최대의 약점일 뿐이다. 남들과 다른 한잔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로스팅과정에서 원두를 다루기까지 그의 노력은 눈물로 점철되어 있었다. 시작은 같아도 남다른 생각과 노력이 있기에 향이 다른 한잔의 커피를 우리는 마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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