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 뜻하지 않게, 마음공부를 하게 되었다. 대형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그 후로 , 옛 그림, 동양미학, 동양철학 등을 조금씩 공부하였다. 그러면서, 옛 선인 중 은일처사들에게 나는 마음을 뺏기고 만다. 동일시라고 해야 할까? 사회와 멀어진 나는 카페에서 조용하게 책 읽고, 소소하게 글을 쓰는데, 은일처사와 나 자신이 조금은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조금은 과대망상이다. 나에겐 옛 선인들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마음도 부족하고, 남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조용히 안락하게, 은거하며, 자신의 일상을 즐기는 면은 닮아 보였다. 몇 년 동안 은둔을 키워드로 흥미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은일처사 중 단연 으뜸은 소옹이 아닐까 싶다. 소옹은 안락함을 지닌 이다. 그를 사람들은 안락선생이라고 불렀다. 소옹은 초년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시련처럼 겪는 인생의 겨울은 때론 밑거름이 잘 축적된 토양 같은 역할을 한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의 일생에 시련이 밑거름이 되는 것이 아닐진대, 소옹의 초년의 고생은 그를 단련시켰다. 그는 심학과 상수학에 밝았다. 이처럼, 소옹은 초년의 고생을 제하고 거의 30년간 ‘한閑’과 ‘낙樂’으로 세상을 살아 그가 읊은 시에서 ‘한과 낙’ 두 자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1) 사실, 한가로움은 시간의 개념일 수 있다. 시간이 많아야 한가로울 수 있다. 촉박한 시간 앞에서 여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은일처사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말하자면, 시간부자이다. 사회로 나가지 않으니, 당연히 시간이 많을 수밖에... 소옹은 많은 시간을 학문을 연마하는데 썼다. 그가 남긴 저서로 『황극경세서』, 『이천격양집』 이 있다. 소옹은 점을 잘 치기로도 유명했다. 매화점을 잘 쳤다고도 전하는데, ‘천진두견’(두견새가 남쪽으로 거슬러 올라온 것이 불길하다)이라고 불리는 일화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무튼 소옹은 한가롭게 살면서, 더불어, 자족하는 즐거움을 안 사람이다. 학문과 예술의 가장 큰 이득은 즐거움을 준다는데 있다. 일찍이 먼저 살다 간 소옹은 한가로운 즐거움을 누리다 간 사람이다. 은둔자에게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것은 크게 말해 이 두 가지이다. 즉, 한가로움과 즐거움이다. 현대인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쾌락적인 즐거움에 중독되고 있다. 그것은 말초적이며, 통제가 잘 안 되는 과잉에너지이다. 쾌락적인 즐거움은 더 큰 쾌락을 원한다. 선대에 나라를 기울게 했던 왕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절제되지 않은 즐거움이었던 듯싶다. 깨달은 사람 소옹은 한가로움과 즐거움만 있으면, 인생의 누려야 할 것은 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궁극적인 것을 깨닫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 청빈한 이가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에도 즐거움이 있다고 했던가? 지금 한가롭고, 즐겁다면, 우리는 인생의 진정한 맛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