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안에 누가 들어있어요?

손님에게 테마를 전달하는 세 가지 방법

by 사육일칠
나이트 퍼레이드의 모습. 로리 여왕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출처: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 홈페이지

"너구리 안에 누가 들어있어요?"

어떤 손님은 퍼레이드 때 나타나는 로리 여왕을 보고는 가끔씩 안전청결 캐스트에게 물어보곤 한다. 보통 이런 질문은 너무 어린 아기 손님보다는, 한참 친구들과 개구지게 놀 나이의 손님이 한다. 이 질문에 캐스트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캐스트 입문 교육 때 강사님께 들은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한 번은 로리의 머리 부분, 그러니까 인형탈을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야 하는 업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 업무를 맡은 직원은 생각했다.


'아, 그럼 로리의 머리와 몸을 분리해서 머리만 챙긴 다음 서울에 있는 연기자에게 입히면 되겠다!'


직속 상사에게 이 생각을 말하니 웬걸, 직원은 대차게 혼이 났다고 한다. '로리는 롯데월드라는 테마파크 안에서 완전한 캐릭터로 존재하는데,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건 테마를 붕괴시키는 것'이라며 타박을 들었다. 결국 롯데월드의 테마를 지키기 위해서, 연기자가 로리 옷을 그대로 입은 뒤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동을 했다고 한다. 테마에 관심 없는 어른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강사님께서는 장차 캐스트가 될 사람들에게 롯데월드의 테마성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전달하려고 노력하셨다.


그렇다면 글의 시작에서 했던 질문에 대답해 보자. 너구리 안에는 누가 들어있을까?

"저 캐릭터는 너구리가 아니라 로리라고 해요. 그리고 로리는 그냥 로리랍니다. 로리가 누구인지 물어보신다면 답변해 드릴게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안전청결 캐스트가 롯데월드에는 특정한 테마가 있음을 손님에게 직접 알려주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순수한 물음에 잘못된 점을 정확히 정정한 뒤 답해준다. 안전청결 캐스트는 테마를 생각할 새도 없이 파크의 잡무(쓰레기 비우기, 자재 옮기기 등)를 도맡아 하다 보니 롯데월드의 테마를 손님에게 알려줄 기회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퍼레이드 때 손님을 통제할 때는 다르다. 퍼레이드 자체가 '로리를 구한 로티 기사를 축하하는 행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님이 테마의 요소를 물어봄으로써 캐스트가 손님에게 테마를 알려줄 기회가 생긴다. 다만 이것이 기회인지는 본인이 테마파크 캐스트라는 인식이 있어야만 알 수 있다.


위 내용은 캐스트가 테마를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한 경우이다. 손님이 먼저 물어봐야 테마를 전달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물어본 손님에게 본인이 있는 장소가 어떤 곳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 경우 손님이 테마의 이해도와 관심도가 높을 경우 더욱 효과적이다.


손님이 먼저 물어보지 않아도 테마를 안내할 수도 있다. 퍼레이드는 파크 전체를 빙 돌면서 행진을 하지만, 총 2회 공연을 하기에 특정한 곳에서 정지 공연을 진행한다. 정지 공연 때는 그만큼의 공연 장소를 확보해야 하고, 확보해야 하는 장소에 손님이 있으면 부드러운 말투로 장소에서 벗어나게끔 유도한다.

퍼레이드 1부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 노란색 티셔츠에 흰색 바지, 로티 가방을 멘 안전청결 캐스트가 손님이 공연 장소에 들어오지 않게끔 통제하고 있다.

이때 손님이 어른일 경우, '여기는 공연장이라서 노란 선 바깥쪽에서 관람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명료하지만 무미건조하게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손님이 어른 골반에 겨우 미칠 정도의 앙증맞은 키라면 멘트가 훨씬 길고 부드러워진다. 심지어 어린이 손님이 혼자인 경우에는 명료, 무미건조한 멘트를 듣고 어린이 손님을 데리고 갈 어른 손님이 없기에, 어린이 손님의 입장에서 알아듣기 쉽게 부드러운 말투로 잘 타일러서 보호자님께 안기게끔 유도해야 한다.

'여기 로리 여왕이 와서 로티 기사를 위한 축하 공연을 할 거예요. 그런데 어린이 손님이 여기 있으면 로리 여왕이 많이 당황할 거예요. 저기 엄마한테 가 볼까요?'


어린이 손님이 보호자와 같이 있는 경우에 손님에게 테마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로리 캐슬에는 교복을 빌릴 수 있는 상점이 1층에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인생네컷이 2층에 있다. 파크 내 손님이 퇴장하도록 유도하는 업무를 안전청결이 맡는데, 보통 열심히 놀다가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로리 캐슬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가족이 오는 경우가 있다. 어린이 손님이 아무리 귀여워도 마감 시간은 지켜야 하기에 마감임을 어른 보호자님께 '저희 캐슬 마감했습니다. 퇴장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내드리면 어린이 손님이 어른 손님에게 떼를 쓰기 시작한다. 자기 안 가겠다고. 찍게 해달라고. 그럼 어른 손님은 '이제 마감하셨다잖아. 다음에 또 오자. 응? 그때 와서 사진 찍으면 되지.' 어린이 손님은 거의 눈물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이럴 때 캐스트도 같이 어린이 손님을 잘 달래주면 좋다.

'로리 캐슬에 이제 로리 여왕님이 잘 시간이라서 갑자기 올라가면 깰 수도 있어요~ 로리 여왕님이 자고 일어나면 그때 다시 올까요?"


위 두 경우는 너구리 안에 누가 들어있냐는 손님의 질문에 "로리는 그냥 로리에요." 하고 대답하는 경우보다 테마 전달의 관점에서 적극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캐스트가 테마를 인지하고 어린이 손님에게 안내를 했더라도, 어린이 손님이 테마에 대해 생각할 확률은 낮다. 하지만 손님이 테마의 요소에 대해 먼저 질문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테마를 녹여내서 손님에게 안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른과 같이 있는 경우에는 캐스트의 안내가 테마에 기반했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 아이 때문에 당혹스러웠는데 저 알바분이 잘 달래줘서 집에 빨리 가겠네. 고마워라.'


안타깝게도,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저 캐스트는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캐스트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는구나! 대단하다.'


테마를 손님에게 알리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애초에 손님이 테마를 인지하지 못하다 보니, 손님에게 테마를 알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은 미미하다. 캐스트가 무대 위의 연기자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로 손님을 대하되, 손님에게 좋은 서비스를 전달함에 초점을 두는 편이 이상적이다. 캐스트는 연기자가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회사 직급에서 가장 아래에 있기에 '우리도 테마를 손님이 잘 인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라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보람 있게 롯데월드 안전청결 캐스트로 일하려면 현실적인 타협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업무를 하고 캐스트라는 낮은 직위에서 현실에 부딪히지만, 그래도 캐스트의 역할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앞으로의 실제 업무를 통해 선보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