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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Feb 07. 2024

안전청결 캐스트는 걸어 다니는 가이드 맵이다

걸어 다니는 가이드 맵이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

안전청결 캐스트는 길을 헤매는 손님에게 가이드 맵의 역할을 한다. 출처 :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 홈페이지


안전청결 캐스트는 걸어 다니는 가이드 맵이다. 가이드 맵이란 롯데월드에 어떠한 시설이 있고 그 시설에서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 자세하게 표시한 지도이다. 손님에게 정확한 응대를 하기 위해서는 먹거리는 무엇이 있는지, 어트랙션은 어디에 있는지, 기념품 가게는 어디에 있는지, 현금인출기는 어디에 있는지, 보조배터리 대여장소는 어딨는지 등등 최대한 속속들이 알아두는 것이 좋다. 가이드 맵을 눈으로 보면서 숙지하는 방법도 있지만, 직접 파크에 나가서 일하다 보면 갑작스러운 손님의 질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이드 맵을 우선 눈으로 익혀 놓고, 일을 하면서 선임 캐스트가 손님에게 어떤 식으로 안내하는지 보고 배우며 차차 현장 업무를 통해 익혀 나가는 것이다. 


캐스트가 된 후 초반 한 달은 혼자 파크에 나가기가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냄새가 심한 쓰레기를 치우고,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껌자국을 떼내느라 손목이 아픈 일은 몸만 힘들면 되는 일이고 그다지 마음 졸일 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청결 업무를 열심히 하다가 '저기요~' 하고 나지막이 부르는 손님의 부름이 마음 졸일 만한 일이다. 손님이 용기 내서 캐스트를 불렀는데 전혀 모르는 장소면 어떡하나, '여기로 가시면 됩니다!' 하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해 드렸는데 그 장소가 아니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을 항상 하는 상태에서, 손님 옆을 지나가거나 손님이 다가온다 싶으면 '큰일 났다 큰일 났다 물어보지 마세요 물어보지 마세요 저 잘 몰라요' 이런 반 캐스트(?) 스러운 마인드를 어쩔 수 없이 간직한 채로 일을 했다. 하지만 안전청결 캐스트는 손님이 모르는 부분을 알려줘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파크의 정보를 파악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고, 입사 초반에는 업무 시간이 아닌데도 혼자 나가서 파크 투어를 하며 가이드 맵으로 숙지해 놓았던 정보가 현장과 일치하는지 대조해 보았다. 


걸어 다니는 가이드 맵 정도에는 능력이 못 미칠 때, 걸어 다니지 않는 가이드 맵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제발 물어보지 마세요' 상태에서 '이젠 조금 답할 수 있어요' 정도가 되면 가이드 맵을 손님께 보여주며 설명 가능하다. 전혀 모르는 장소를 손님이 질문했을 때 나름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버는 방법이다. 특히 자이언트 스플래쉬, 자이언트 디거와 같은 롯데월드 대표 어트랙션은 안내하기 참 쉬운데, 손님이 자주 물어보지 않는 것을 물어보면 뇌가 정지해 버린다. 한 번은 손님이 회오리 감자를 어디서 파는지 물어보셨는데,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아서, 일단 가이드맵을 꺼내면서 시간을 벌어야겠다 싶었다.


"저한테 가이드 맵이 있는데 이거 보면서 설명드릴게요!"

(큰일 났다 회오리감자? 회오리감자를 대체 어디서 팔아 왜 여기서 회오리 감자를 팔아 감자에다 왜 회오리를 치게 가만히 놔둔 거야 미치겠네 생각이 회오리 친다... 아 일단 가이드 맵 꺼내는 동안 생각을 떠올려 보자)

"음 자 한 번 볼까요...? 여기 보시면..."

(잠만 아 무슨 자이언트 스플래쉬 근처였던 것 같은데 그 조그만 집 모여 있고,... 아아 바이킹 스낵!!! 맞다 맞다 그럼 스플래쉬 근처에 집이 모여있는 듯한 장소를 한 번 찾아보자)

"아 여기 자이언트 스플래쉬 쪽 봐주시겠어요? 여기 보면 조그만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보이시나요? 여기 들어가시면 바이킹 스낵이라고 있는데 거기 가시면 회오리 감자 팔 거예요."

(휴 넘겼다... 살았다)


이런 식이다. 가이드 맵을 찾고 펴는 시간 동안 손님이 찾는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정말 난감하다. 손님을 기다리게 한 데다가 정보까지 전달하지 못하면 손님 입장에선 속은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보통 공부를 한 학생이라면 책을 보면 모르는 부분을 떠올릴 수 있음과 같이, 숙지하려 노력했던 가이드 맵을 다시 보면 잊고 있었던 정보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손님과 함께 손님의 질문한 부분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여러 겪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정도면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답할 수 있겠는데? 그래! 어디 한 번 질문해 보시죠 손님분들!' 

이상하게도 이런 의기양양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이드 맵을 챙겨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파크에 나가면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사실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데 재능이 있다면 이런 경험을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다만 나는 지형지물을 외우고 있더라도 실전에 들어가서 손님이 갑자기 물어보면 머리가 멍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가이드 맵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가이드 맵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 '저 신입이라서 좀 서툴어요 죄송합니다.. 다른 캐스트에게 물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하고 대응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보다는 가이드 맵을 가지고 다니는 게 내가 직접 정보를 전달할 확률을 높여줄 것 같았다. 


사실 2D 가이드 맵을 보다가 3D인 현실 파크를 둘러보면 손님 입장에서는 곧바로 안내받은 곳이 어딘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캐스트도 마찬가지로 신입 때는 손님의 상태와 다를 것이 없다. 네이버 지도를 보다가 주변을 보면 여기가 네이버 지도상 가리키는 곳이 맞는지 헷갈리는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보통은 가이드 맵을 보면서 설명하기보다는, 지금 보이는 특징 있는 건물을 먼저 가리킨 뒤 그 건물에서 어느 쪽으로 가면 가고 싶어 하시는 곳이 나오는지 설명을 드린다. 가고 싶어 하시는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묘사하면 좋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기요, 혹시 우의 어디서 파는지 아세요?"

"우의요? 저기 왼쪽으로 멀리 보시면 큼지막한 말하는 나무 보이시죠? 말하는 나무 얼굴 방향으로 쭉~~ 내려가시다 보면 나뭇잎 지붕으로 되어있는 조그마한 집이 있어요. 거기서 구매하시면 됩니다."

말하는 나무 얼굴 보이시죠? 얼굴 방향으로 쭉 가시면 우의를 파는 곳이 있어요!

가이드 맵을 가지고 다니면, 가이드 맵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손님에게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캐스트 입장에선 귀찮을 수 있지만, 가이드 맵을 가지러 가기 위해 지정된 장소까지 가야 하는 손님의 귀찮음을 단박에 덜어줄 수 있다. 사실 모바일 가이드 맵이 있다고 안내해 드려도 되지만, 손님에게 직접 가이드 맵을 전달했을 때 만족해하시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캐스트가 가이드 맵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조금이라도 손님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러한 노력이 손님의 웃는 모습으로 결실을 맺는 순간을 좋아했다. 가이드 맵을 파크를 완벽히 이해하기 전까진 계속 가지고 다니며, 나도 가이드 맵을 보는 겸 손님에게 전달해 드리곤 했다.  


그 말은 즉, 파크를 완벽히 이해하고 나서는 가이드 맵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는 말이다. 덩달아 손님에게 가이드 맵을 직접 전달할 일이 없어졌다. 가지고 다닐 수는 있었지만, 업무가 힘든 날에는 힘들다는 핑계로 그러지 않았다. "내가 인간 가이드 맵인데 굳이 가이드 맵을 들고 다녀야 돼?"라는 다소 오만한 생각 때문이었을 테다. 어떤 질문을 하든 손짓과 말 한마디로 손님에게 간결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효율적인 정보 전달에 초점을 두고 일을 하게 되었다. 그때가 안전청결 캐스트로 일하는 순간을 서비스보다는 단순 반복 업무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손님에게 가이드 맵을 전달했을 때 기쁜 표정을 하는 손님과, 그 손님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업무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일하는 시간이 아닌데도 파크에 나가는 열정은 업무에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기에 그랬겠지만,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긴장하는 과정을 업무가 익숙해진 이후로는 겪을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낀다. 특히 안전청결 캐스트의 업무는 그다지 난도가 높지 않아서 업무를 배우면서 느끼는 뿌듯함은 한 달 정도밖에 유지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업무를 하며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햇병아리 때는 실수를 하지 않는 숙련된 상태를 갈망하고, 업무에 숙련된 후에는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노력하던 열정적인 햇병아리 때를 갈망하는 듯하다. 


하지만 업무가 익숙해지고 지지부진한 날을 보내며 '에이 놀이공원 알바도 지루할 때가 있네 뭐'라고 생각할 때쯤, 사건은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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