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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Feb 14. 2024

오거스 후룸 1번 상황

캐스트의 한계에 대하여

오거스 후룸 입구이다. 손님은 보트가 레일 중간에서 멈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입구로 들어간다.          출처 :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 홈페이지

"오거스 후룸 1번 상황입니다. 정비 직원분들은 신속히 오거스 후룸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건이 터졌다. 무전기를 통해 모든 롯데월드 직원에게 널리 퍼지는 안내 방송. 오거스 후룸은 익히 알고 있는 후룸라이드(급류 타기)이고, 1번 상황은 어트랙션 시스템 오류로 인한 장비 고장이다. 즉 오거스 후룸 1번 상황은 리프트에 문제가 생겨 보트가 운행 중 정지한 상황을 말한다. 안전청결 캐스트는 방송을 듣는 순간 무슨 일을 하고 있었든 상관없이 오거스 후룸을 향해 뛰쳐나간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안전청결 캐스트가 급하게 나가야 할까? 어트랙션 캐스트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손님이 오거스 후룸 근처를 지나다니며 사진, 영상을 촬영하는 경우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 막아야 하느냐고? 장비가 고장 난 상황이 담긴 사진이 온라인상에 퍼지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 사진이 퍼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안전청결 동료 캐스트 M은 이렇게 말했다.

"오거스 후룸 1번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손님의 촬영을 제재하는 건 당당한 처사라고 하긴 어렵죠. 다만, 사고 상황의 사진이나 영상을 어떠한 악감정도 없이 사실대로 온라인에 유포한다고 하더라도, 그 글이 온라인으로 퍼진다면 실제 현장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의 섣부른 판단 때문에 롯데월드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안전청결 캐스트나 시큐리티가 손님의 촬영을 제재하는 것은 이해는 합니다. 다만 손님의 촬영할 권리를 막는 방법밖에 없는 걸까, 하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어요."


뛰쳐나간 안전청결 캐스트는 보트가 레일 중간에 멈춰 있는 모습, 손님이 보트에서 빠져나와 이동하는 모습을 손님이 휴대폰으로 촬영할 수 있는 곳에 우선적으로 보초를 선다. 캐스트뿐만 아니라 시큐리티 직원(롯데월드 보안 담당), 오거스 후룸과 관련이 있는 바이저 분들도 상황에 가담해 동태를 살핀다. 사실 이런 식으로 많은 직원이 역동적으로 모여들어서 오거스 후룸을 둘러싸고 있으면 손님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그냥 지나가려고 하던 손님도 호기심이 동해서, "뭐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생겼나 봐! 얘들아 저기 봐 보트가 레일 중간에 멈춰 있어!" 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흥미를 느끼며 다가온다. 손님을 통제하기 위해 우르르 모인 안전청결 캐스트가 통제해야 하는 손님의 수를 늘린 꼴이 되어버린다.

좌측 상단 레일에서 보트가 멈추는 경우 안전청결 캐스트가 뛰쳐나간다. 출처 :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 홈페이지

각자의 자리에 위치한 캐스트는 서 있는 상태로 손님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사진 촬영은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새로운 손님이 지나갈 때마다 한다. 카카오톡을 하고 있는 손님, 통화를 하고 있는 손님, 셀카를 찍는 손님 등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는 손님은 주요 관찰 대상이다. 촬영하는 순간은 정말 찰나에 가깝기에 방심하게 되면 손님 촬영하는 순간을 놓친다. 특히 여러 손님이 동시에 휴대폰을 들고 있으면 눈동자를 쉴 틈 없이 휙휙 굴려야 한다. 사진을 촬영한 다음 제재를 해 봤자 돌이킬 수 없다. "휴대폰으로 찍으신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될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찍은 사진을 지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도의 안내는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사진을 지웠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사진을 많이 찍기 위해 놀러 온 테마파크에서 찍은 사진을 검사받는 것 자체에서 손님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손님이 휴대폰을 들어서 찍으려는 자세를 취하는 순간 제재하는 것이 좋다.


제재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왜 사진 못 찍게 해요?"라고 묻는 손님에게 설명을 드려야 한다. "혹시 장비가 멈춰있는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촬영을 제재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 정도에서 수긍하고 휴대폰을 내려놓는 손님이 많지만, 납득을 하지 못하는 손님도 있다. "찍고 나서 유포 안 할게요." 또는 "놀이공원에서 사진 찍지 말라는 말은 내 인생 40 평생 처음 들어보네. 전 촬영하고 싶어요." 캐스트 입장에서도 롯데월드 차원에서 제재하는 사항을 캐스트가 이행하는 것이라, 사항을 최대한 친절히 손님에게 설명드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유포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계속 반문한다면 캐스트는 매우 난처해지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희도 통제를 해야 해서요... " 라며 같은 내용을 반복하게 된다.


또 다른 동료 캐스트인 H는 오거스 후룸 1번 상황을 길을 가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상황에 비유했다.

"오거스 후룸 장비 고장도, 길을 가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주변 친구에게 '찍지 마 제발... 부끄러우니까"라고 하는 건 마치 안전청결 캐스트와 시큐리티가 오거스 후룸으로 부리나케 달려와서 손님이 촬영하는 걸 막는 것과 비슷한 거야. 롯데월드 측이든 넘어진 사람이든 본인의 부족한 모습이 온라인에 퍼지는 건 바라지 않겠지."


그럴듯한 비유였다. 그의 생각에 의견을 덧붙이겠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상황'이 유포되면 '우스꽝스럽다'라는 현상 자체로만 해석되지만, '오거스 후룸 1번 상황'은 온라인에 유포되었을 때 M 캐스트의 의견처럼 '사고가 나서 손님이 불편을 겪었다'라는 현실을 '롯데월드는 어트랙션 관리에 소홀하다'라고 2차, 3차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부족한 사람을 통해 오거스 후룸 1번 상황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이 2차, 3차로 해석될 경우 롯데월드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롯데월드 측에서 촬영을 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안전청결 캐스트는 제재를 했음에도 촬영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손님을 끝까지 제재해야 할까?


필자는 캐스트로 일할 때 매뉴얼대로 '촬영 절대 금지'의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바이저 님께서는 '제재를 여러 번에 걸쳐서 했고, 제재하는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찍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더 이상 제재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다. 사진을 찍겠다고 부리는 고집이 통하지 않아서 심술이 난 손님에게 불만 VOG(손님이 롯데월드 서비스에 불만족했을 경우 롯데월드 홈페이지에 올리는 의견)를 받는 것보다, 그냥 찍게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오거스 후룸 1번 상황에 안전청결 캐스트가 가는 이유'와 바이저 님의 의견은 상충했기에 혼란스러웠지만, 우선 바이저 님의 의견을 따랐다. 손님의 촬영을 허락할 때 사진을 유포하는 확률보다, 촬영을 끝까지 제재당해 심술이 난 손님이 불만 VOG를 올릴 확률이 높아서 그랬던 것일까,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오거스 후룸 1번 상황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어서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캐스트로 일하며 전혀 듣지 못하기도 했다.


"오거스 후룸 1번 상황 마치고 정상 운행합니다. 사유는 리프트 고장입니다."


상황이 끝났다는 무전기 방송이 들리면 안전청결 캐스트는 "요새 오거스 후룸 고장이 잦네" 정도의 담백한 소회를 서로 나누고는 각자 본인의 업무를 하러 간다. 쓰레기를 치우러 가거나, 식사시간이라면 밥을 먹으러 간다. 근무 대기 시간일 경우엔 캐스트 휴게실로 들어간다. 하지만 상황은 오거스 후룸 1번 상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치지직" 무전기 방송을 알리는 노이즈가 들린다. 이번엔 또 무슨 상황일까.  




*미디어 리터러시 :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에 접근하여 메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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