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이야기 - Ecuador, Banos
바뇨스에서의 첫날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바뇨스에 도착하자마자 사고를 쳤기 때문.
버스에 내려서 정신없이 와이파이를 찾고 있던 나는 내 손목에서 나와 인천공항에서부터 함께한 나의 동반자 "미키마우스" 시계가 없어진 것이었다.
왠지 언니들이 사줘었기때문에 이건 부적이다 라는 의미부여도 마구마구 한 이유도 있었고,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강도에게 내 핸드폰 훔쳐 가시오 라는 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기에 시계는 남미 여행의 중요한 필수품 중에 하나였는데 그 시계를 어디서 잃어버린지 조차도 모르고 다닌 것이었다. (이 사실을 무려! 숙소에 도착한 후에나 알았다!)
그렇게 시계가 없어 진지도 모른 채 연신 내 몸의 반이나 되는 짐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숙소 검색을 위해 와이파이가 써 붙어 있는 카페를 찾아 돌아다녔다. 물어물어 간신히 한 카페를 찾은 나는 "바뇨스 괜찮은 숙소"를 검색했고 그 중에 꽤나 많은 한국인들에게 후한 리뷰를 받은 이 곳 "D'MATHIAS HOSTEL 디마티아스 호스텔" 을 찾을 수 있었다.
디마티아스 호스텔은 높은 리뷰에 걸맞게 합리적인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숙소의 상태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역시나 알아주는 길치 인 나였기에 30분을 찾아 헤맨 후에야 가까스로 숙소를 찾은 나는 카운터 남자의 안내를 받아 2층에 위치한 숙소로 올라갔고, 그제야 손목의 허전함을 느낀 나는 속으로 '하..좆됏다' 를 연신 되새기며 미키씨를 찾아 나섰다.
숙소에는 2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세 명의 아시안 남자 아이들이 앉아있었고 그곳이 남녀 공용 도미토리 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시계를 찾아다녔다.
"Hi there, just wonder, did you guys see any blue mikey mouse watch?"
영어로 말하는 나를 조금 어리둥절하게 처다 보고는 "no..sorry"라고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난 "thank you anyway"라고 짧은 대답을 해주고는 정신없이 시계를 찾아 나섰지만.. 그렇게 나의 미키는 나와.. 준비 없는 이별을 해야 했다. (잘 살고 있니..)
그렇게 허무하게 숙소로 다시 돌아온 나는 정신을 차리고 짐을 정리해야겠다! 다짐하고는 짐을 정리하려 하는 찰라
"쨍그랑!"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일까.
이것은 내가 저 멀리 키토에서부터 고이 모셔온 나의 소중한 참기름 병이 깨지는 소리였다. 대참사였다. 순식간의 온 방은 참기름 냄새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나의 얼굴은 민망함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지 라는 생각도 잠시 빨리 병을 치워야겠다고 생각을 한 찰라, 같은 방을 묶고 있었던 착했던 세 명의 청년들은 나의 팔다리 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민첩하게 나의 사고를 수습해주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그들도 한국인 이라는 것과 (그 아이들은 내가 교포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좀 까맣긴하지..ㅠㅠ) 남미를 여행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30분 안에 저녁을 먹으로 나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같이 저녁을 먹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고 나는 흔쾌히 (참기름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고) 오케이를 했다. 그렇게 기범이, 성훈이, 현승이와의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기범이는 여행을 하며 알게 된 다른 한국인들이 잠시 후 이곳에 올거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남미에 대해 꽤나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기범이는 이 곳 바뇨스에, 한국에서의 맛과 기가 막히게 비슷한 곱창구이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고급정보도 알려주었다.
딱히 계획이 없던 나는 그들과 함께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다는 곱창구이의 맛을 보러 가기로 했다.
곱창가게는 신기하게도 저녁 7시가 넘은 후에야 문을 열었는데, 곱창을 석회에 구워주는 방식이었다. 곱창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맛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어금니가 나갈 것만 같이 즐겼던 곱창의 식감은 비밀이지만.
곱창을 맛있게 먹은 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맥주를 한잔씩 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어디를 어떻게 여행을 했는지, 어디로 떠날 것인지, 남미에 대한 일화들을 시시콜콜 주고받았고, 자연스레 바뇨스에서의 투어들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7명이 남짓한 일생들은 투어를 하기엔 적절한 인원이었다. 우리는 삼삼오오 팀을 나누어 레프팅부터 캐녀닝, 캐노피 (짚라인)까지 2박3일에 거쳐 바뇨스에 있는 거진 모든 투어들을 섭렵할 수 있었다.
혼자 온 여행에서 누군가를 만나 같이 여행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의지하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를 타지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마냥 신이 나고 좋았다. 아주 가끔 외롭기도 했던 혼자만의 여행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지만, 이렇게 누군가과 같은 언어로 수다를 떠는 작은 일상도 여행에서 맞이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아니었을까.
투어를 끝마칠 무렵, 우리는 서로의 다른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미 여행을 하기 전 갈라파고스 섬 예약을 마친 나는 바뇨스에서 갈라파고스 섬을 가기위해 과야킬로 향할 거라고 말했다.
이미 남미에서 스쿠버 다이빙 자격을 땃다는 한국 일행들은 갈라파고스의 아름다움 속에서 다이빙을 해보고 싶다고 했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남미여행을 갈라파고스를 더함으로써 화룡정점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참으로 극적(?)으로 그 투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라파고스를 가기 위한 비행기 표를 예약하였고, 우리는 극적으로 갈라파고스 팀을 탄생시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