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이야기 Ecuador - 지나가는 소나기 '키토'
국경을 넘는 일은 물을 마시는 일보다 더 간단했다. 여권을 보여주고 도장을 받고 하얗게 그어져 있는 에콰도르의 국경을 밟으면 그대로 에콰도르에 입성!
하지만 그 보다 더 힘든 일은 택시 기사들과 흥정을 해서 에콰도르의 시내까지 들어가는 일이었다. 원체 바가지도 심했고, 서로가 원하는 가격이 달랐기에 택시를 잡는 데만 30분이 넘는 시간을 소비해야했다.
흥정에 흥정을 거쳐 겨우 인터넷에서 합리적인 가격이라 칭할 수 있는 (한화로 2만원정도) 가격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사실 기사아저씨도 내가 30분째 도로 주변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으니 탐탁치않는 금액이었겠지만주머니 사정을 늘 생각해야하는 여행자라 어쩔쏘냐.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여행자니까)
그래도 나름 합리적(?)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에콰도르 시내로 들어 갈수 있었다. 에콰도르는 콜롬비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이파일레스에서 시내로 들어간 다음,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로 넘어가기 위해 또 다시 버스에 올랐다. 8시간 정도가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8시간 버스를 타는 것은 그냥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간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현지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나름 무난하게 키토에 도착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키토는 도착한 첫날부터 비가 내렸다. 나는 원래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여행을 하며 만나는 비는 그리 반가운 친구는 아니었다. 내 몸에 반이나 넘는 큰 짐을 지고 빗속을 이동하는 일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었기때문에.
천만다행으로 나름 큰 고비없이 숙소를 찾고 짐을 풀었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기 시작할 떄때즈음 사라졌던 교실안의 옛날 난로가 이 숙소에 있었다. 뭔가 어릴 때로 다시 돌아간 묘한 기분이 들 찰라, '꼬르륵' 배꼽시계가 나의 귓등을 때렸다.
운수 좋은 날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키토에서 묵은 숙소는 빵과 계란이 제공되는 나름 인심 후한 곳이었기에, 다행이 저녁은 굳이 밖을 나가지 않고도 간단하게 떼울 수 있었다.
배 부르고 등 따땃하니 넋 놓고 있기 딱 좋은 이 순간, 누군가에 공용 거실에 크게 틀어 놓고 간 티비에서 알아듣기 힘든 언어가 흘러나왔다 - 뉴스였다. 마침 일기예보 코너였는데, 키토는 앞으로 일주일 내내 비가 올 예정이란다.
에콰도르에 도착한 날부터 비 소식이라니.. 에콰도르.. 나한테 왜이래..?
아침에 눈을 뜨니, 먹구름이 가득했다. 오후에는 백발백중 비가 올 날씨였다.
숙소에서 만난 몇몇이 유럽친구들에게 숙소 근처에 실내 시장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유레카'를 외치며 점심도 떼우고 몇가지 과일도 좀 살겸,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나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키토의 시장.
기다린 빌딩안에 작은 가게들이 오목조목 모여있는 모습은 흡사 우리나라 신림동의 '순대타운'과 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풍겼다. 몇 가지의 과일을 구매하고 시장 귀퉁이의 식당(?)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들의 말에 수줍게 손가락으로 음식을 가르켜 주문을 했다.
남미에서 어떤 음식을 시킬지 모를 땐 'Pollo'라는 단어가 보이면 주저말고 고르도록.
'Pollo'는 스페인어로 닭고기라는 뜻인데, '닭은 옳다'는 말은 진짜 만국 공통인 것 같다.
그렇게 정체모를 닭고기 요리를 주문했는데 운이 좋게도 튀긴 닭요리였다! 하지만 남미의 모든 음식이 그러하하듯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 반도 먹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허기는 채웠고 2천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기에 반이라도 먹었다면 뭔가 선빵(?)을 한 기분이 들었다.
상가를 아니 시장을 돌아보고, 몇 가지의 과일을 구입 한 후 자리를 뜨려는데, 깔끔하게 차려입고 어여쁜 아이를 안고 있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
'이걸 어쩌지.. 나 스페인어 할 줄 모르는데..'
그 남자도 눈치를 챈 것일까. 말을 하다가 갑자기 바디랭귀지로 나의 카메라를 가르켰다.
"Picture? Do you want me to take a picture of you and your daugther?"
나의 말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환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을 찍어주고 이메일로 보내주겠다며 (이걸 설명하는데 거의 20분은 소비한 듯^^;;) 이메일 주소를 받고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시장을 나왔다.
시장에서 간단히 3시간을 보내고, 두손을 무겁게 숙소로 돌아왔다. 사실 키토는 적도의 도시로 유명한데, 나는 딱히 투어를 한다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날씨에 유독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나의 빌어먹을 성격 탓이 크겠지만, 그것보다도 뭔가 쾌적하고 도시적인 느낌이 강한 키토가 자연을 사랑하고 가까이 있길 원하는 내 성향과 맞지 않았을 수도..
하여간 키토에서의 이틀은.. 시장이 전부였다. 그래도 난 여행하면서 꼭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그 지역의 시장을 둘러보는 일이었기에 나름 뿌듯하고 PRODUCTIVE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빗줄기가 더 굵어지기 전에 키토를 떠날 생각이다.
유일하게 여행자의 본분을 다 하 듯, 그저 스치 듯 이 곳 키토를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