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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미 Jun 11. 2023

제주 파리 서울 릴

내 친구 또낭이





따릉이를 타고 집에 오는 길, 분명히 어두운 길인데 마냥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골목을 달리다가 나의 친구 또낭이 생각이 났다. 나의 두 번째 프랑스인 친구!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많은 아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 친구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손에 꼽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친해진 뒤, 우리가 마신 함께 마신 와인이 정말 30병은 넘지 않을까? 

매일 지각해도 매일 술자리에는 나오고, 공부는 안 해도 여행은 가는 웃긴 또낭이. 여행조차 지각하는 또낭이. 



두 번째로 프랑스에 갔을 때, 투르에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약 5시간의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릴 역에 또낭이는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또낭이는 지각을 했다. "또낭아 너 보러 간 건데, 네가 늦으면 어떡하니"라고 말해도 "난 프랑스 인이잖아" 하고 웃어넘기는 웃기는 놈이다. 그 와중에 보드를 손에 들고 있길래, 멋이냐며 놀려도 또낭이는 아무 말없이 그저 웃었다. 그렇게 나는 잔스포츠 배낭을 메고, 또낭이는 보드를 한 손에 들고 저녁 내내 술을 마셨다. 릴은 벨기에와 가깝기 때문에 와인보다 맥주를 접하기 더 쉬운데, 와인도 맥주도 다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더 신이 났다. 귀스타브와 이름 기억나지 않는 사나운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고도 우리는 한참 릴의 구시가지에서 맥주와 와인을 들이부었다. 얘네가 알려준 릴 사투리 욕은 아직도 기억하고, 그다음 릴에 갔을 때 또낭의 또 다른 친구 공자크에게 써먹어서 한 잔 얻어먹었다. 그러고 보면 친구의 친구들은 참 친구 같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지 않는다. 


릴까지 오는데 걸린 5시간보다 아마도 훨씬 더 오랜 시간 술을 마시고 또낭이네 집으로 가는 길, 또낭이가 갑자기 "너 자전거 잘 타?"냐고 물었고 난 당연히 "oui !!" 


그렇게 또낭이의 학생카드로 자전거 한 대를 빌렸고, 그 자전거의 페달을 내가 죽어라 밟고 또낭이는 자전거의  뒤꽁무니를 잡고 보드 위에 타서 편히 집으로 귀가했다. '왼쪽! 오른쪽! 더 빨리!' 같은 말이나 하면서 말이다.. 


네 손에 보드는 정말 멋이었구나. 바퀴가 하나도 닳지 않은 걸 보고 내가 빨리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땐 이미 늦었다.



오늘 자전거를 타면서 그날 릴에서의 질주가 생각났고, 또낭이 생각이 났다. 


릴에서 찍은 우리의 사진을 찾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또낭이 또는 또낭이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사진을 찾으려고 한참 폴더를 뒤졌다. 그리고 열심히 패달을 밟았던 릴과 반대로 또낭이가 밟은 차에서 편하게 여행했던 제주도가 생각났고, 이 사진을 찾았다. 


오늘은 어쩐지 또낭이와 함께한 시간의 사진이 보고 싶었다. 


정말 찾고 싶은 그 사진은 아마 찾을 때는 나타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 툭 튀어나와 또 오늘을 떠올리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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