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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Jan 04. 2024

우울의 반대를 맞춰보세요

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우울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갑자기 퀴즈를 풀게 생긴 여러분에게 보기를 드립니다.


1번 행복

2번 활력

3번 기쁨 

4번 즐거움 


이거 다 정답 아니야?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정답은 이 글의 제일 마지막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2년 전 가을이었어요. 당시 저는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서 아이들을 챙기는 일을 제외하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잠만 잤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거든요. 내 안의 온갖 힘이란 힘은 다 끌어모아 아이들을 돌보는데 쓰고 나면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었습니다. 


그래도 브런치는 놓지 않고 글을 썼네요.


2022년 10월에 쓴 글입니다. 


한 번 볼까요? 


잠이 늘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상태에서 무던히 자려고 애를 쓰는 내 마음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무기력을 동반한 졸림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는데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침대에 누워서 태아처럼 몸을 한껏 구부린 채 옆으로 누워있었다. 차라리 긴 여행에서 돌아온 피곤한 사람이라면 이번 여행이 힘들었네, 하며 이유를 댈 수 있겠으나 내 졸림엔 이유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이 상태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주말에 집 밖에 나가지 않았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처럼 침대에 붙박이처럼 붙어서 자고 또 잤다. 사람이 이토록 많이 잘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잤다. 그러면서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나 자신과 싸웠는데 공허함과 자기혐오와 지난 과거와 토하고 싶은 충동과 나를 둘러싼 온갖 것들로부터 싸우고 또 싸웠다.  

달아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달아나야 할 대상이 나라는 사실이 이미 내가 패배했음을 일깨웠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으면 괴롭고 괴로워서 부엌 찬장에 숨겨둔 신경안정제라도 몇 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버텼다. 입술 한쪽이 터졌고 살은 쪘다. 

텅 빈 것 같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 


우울증 환자의 심리 상태가 짐작되시나요? 저의 경우, 우울이 덮치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생기입니다. 흥미로운 대상, 사소한 즐거움, 작은 기쁨을 모조리 박탈당한 채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슬픔을 느낄 수 없어서 슬펐습니다. 슬픔이 주는 환희, 슬픈 감정이 지나간 뒤에 느끼는 후련함,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죄다 뺏긴 채 살아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상태가 지속되리라는 끔찍한 생각에 숨이 막힙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한낮의 우울』의 저자인 앤드류 솔로몬은 우울증 환자의 고립감을 덜어주라고 말합니다. 옆에 말없이 앉아 있어도 좋고, 같이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어도 좋고, 그저 이야기를 들어줘도 좋다고 말합니다. 앤드류 솔로몬 역시 우울증 환자인데 어머니의 자살 이후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아버지가 그를 극진히 돌봅니다. 친구들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죠. 저 역시 남편이 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변함없이 곁을 지켰습니다. 우울증 환자인 아내에게 소리 한 번 치지 않고, 지난 10년 내내 힘들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작년 한 해는 심각한 우울증 삽화를 겪지 않았는데 그것은 정기적인 병원 상담과 약 복용, 그리고 남편 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우울증 환자가 아무것도 못하리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앤드류 솔로몬은 심각한 우울증 겪고 있었지만 6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책을 썼습니다. 『한낮의 우울』은 우울과 관련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룹니다. 우울증의 역사, 환자, 중독, 자살, 치료 등 다양한 주제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볼 수 있죠. 



여러분도 실제로 이 책을 보시면 엄청 놀랄 거예요. 


이 책이 정말 우울증 환자가 쓴 책이란 말이야?


앤드류 솔로몬처럼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무언가를 해냅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탄생부터 우울증을 향해 뻗어나가는 삶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한데 사실 약을 평생 먹을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을 지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울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자,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셨습니까? 


제가 선택한 답은 '활력'입니다. 우울증은 생기를 뺏고, 삶의 동력을 잡아먹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내면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갑니다. 생에 대한 기이한 의지, 주어진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회복력. 누군가의 내면엔 이런 요소가 숨어 있다고 믿습니다. 우울증이 삶의 활력을 빼앗지만 인간이 가진 생명력은 우울증보다 더 강합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살아 있기로 선택*합니다.


*『한낮의 우울』의 마지막 내용이다.











뜬금없이 왜 이 사진이냐고요?



졸업앨범에 넣을 담임 프로필 사진을 찍었는데 


저 왕관 쓰고 찍었습니다 -_-


우울증 환자도 웃길 수 있습니다ㅋㅋㅋ


아무도 안 웃으면 우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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