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폭식증의 역사는 무척 길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3살 첫째와 50일 된 둘째를 혼자 키우기 시작하면서 삼시 세끼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었다. 잠깐의 틈이 생기면 싱크대 앞에 서서 대충 끼니를 때웠다. 그 잠깐의 틈이란 것은 항상 유동적이고 언제 다음 틈이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무척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어야 했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밥을 먹을 사치 따윈 부릴 수 없었기에 자주 체했고, 속이 아팠다. 까스활명수를 늘 박스로 샀다. 매일 마셨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사는 삶이란 무척 고단하고 고달프고 고생스럽고 매번 시간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우울증은 극에 치달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 음식을 잔뜩 먹고 부대낀 속을 달래기 위해 토하기 시작했다. 토할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온몸을 관통하는 그 짜릿함. 고통스러웠지만 다시 느끼고 싶을 정도의 후련함이 따라왔다. 가슴 가득 얹힌 근심과 걱정, 불안이 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느긋하게 밥을 먹을 수 없는 환경,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음식을 먹어야 했던 상황, 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토하기 시작한 무모함, 토한 뒤에 느낀 카타르시스. 이 모든 것이 쿵짝쿵짝 박자가 맞았다. 그렇게 내 먹토는 11년이라는 유구한 역사가 펼쳐질지도 모른 채 이 땅에 태어났다.
'정신과 의사와 나눈 대화'를 2020년부터 기록 중이다. '정신과 의사와 나눈 대화'를 살펴보면 토하는 증상 때문에 괴롭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의사 선생님은 "천천히 먹으세요.", "조금씩 자주 먹으세요."라고 조언하셨다. 나 역시 그의 조언을 따르려고 하지만 한번 터진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잔뜩 먹고 토하면 되니까 다 먹어야지.'라고 생각해서 더 많이 먹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도 더 먹었다. 그리고 또 토했다.
카타르시스 때문에 토하기 시작한 일이 이제는 많이 먹었다는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방법으로 변경되었다. 게다가 살이 급속도로 찌기 시작하자 살을 빼기 위해서 토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토하면 기분이 좋다. 신경 안정제 역할을 한다.
이렇게 근 10년을 먹고 토하길 반복했다. 심할 때는 일주일에 5회는 토했고, 괜찮을 때는 한 달에 1~2회만 토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거나 불안이 심하면 폭식증이 더 심해졌다. 식욕이 정말 없었을 때는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기 힘들 정도로 우울증과 무기력이 심했을 시기였다. 그때 몸무게는 46~7kg 정도였다. 먹은 게 없으니 토할 일도 없었다.
지금은 어떨까? 우울증은 거의 끝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 순간 기분이 좋고 땅굴 파는 일도 줄었다. 아니, 없다. 2월 초 병원에 가서 약을 좀 줄이면 좋겠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다가 의사 선생님한테 칼같이 차단당했다. 폭식증 때문이었다.
불안이 심해지면 폭식증이 도지고, 더불어 체중에 대한 강박도 심해지니 불안장애가 나았다고 볼 수는 없다. 새 학기를 앞두고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오들오들 추위에 떨며 자는 나를 떠올리면 사실 약을 줄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주 토하니 위가 아팠다. 현재 목 상황은 괜찮지만 언젠가는 목 통증 때문에 괴로울 날도 오리라. 무엇보다 우리 집 어린이들이 엄마가 토한다는 사실을 알고 폭풍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이제 안 토한다고 사정을 봐달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매번 약속을 어겼다.
아이들은 항상 내 약속을 믿어줬고, 아이들을 앞에서 부끄러운 엄마가 될 수는 없었다.
지난달에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 어떤 주제로 할지 고민하며 이것저것 올려보다가 모두 삭제했다. 대신 몸무게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게시글에는 삼시 세끼 식단과 운동과 먹토 여부 등을 기록했다. 공개적으로 토하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그것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매일 적다 보니 나처럼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인간에게는 아주 적합한 방법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내 결심을 보고 있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먹고 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냐고?
이번 주 화요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4일 동안 토하지 않고 있다. 고작 4일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매일 토하던 나로서는 아주 큰 발전이다. 게다가 운동도 꾸준히 한다. 내 인스타의 유일한 댓글러인 정연 씨가 열심히 응원해 줘서 힘이 난다. 소망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응원해 줬으면 좋겠는데...
또르륵
....
이 인간이 삼시 세끼 무얼 먹고 사는지, 운동은 하는지, 몸무게는 얼마인지 ㅋㅋㅋ 알고 싶은 분은 인스타에 놀러 오시라~ 주소는 알져?
https://www.instagram.com/love_riri1925/
*대문 사진: 정월대보름이라고 직접 할 리는 없고 반찬 가게에서 구입한 나물 셋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