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해명이 차려졌다
아내. 남편은 겸연쩍을 때 나를 아내라 부른다. 아내, 아까 할아버지가 맘에 걸렸어? 몇 시간 전 우리 눈 앞에서 폐지 더미를 엎지른 할아버지 얘기였다. 종일 일했을 수고가 도로 위에 널브러진 것이 누가 봐도 안타까울 장면이었다. 우리는 횡단보도 중간에 멈추어 눈빛을 나눴다.
도와주지 않아도 될까?
괜찮을 거야.
사람이 다치거나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나도 모르게 더디 걷다가 거듭 뒤를 돌아본 것이, 끝내 남편 맘에 걸린 모양이었다. 남편은 당시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남편은 그동안 화가 났다고 했다. 겨울 지나 봄 여름 가을을 맞기까지 아무리 일상을 가두고 절제해도 노인들이 자꾸만 엎어버렸다. 우리 아기는 드디어 생에 첫 달리기를 보여주었는데,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놀 수가 없는 것도 다 그들 때문인 것만 같았다. 모이지 말라는데 모이고 독감보다 치사율이 낮은 전염병이라는 가짜뉴스를 퍼다 나르질 않나. 그들이 시절의 향수에 취해 고집 부리는 동안 어린 아이들은 눈 읽는 법을 익혔다. 맨 얼굴을 만날 일이 없으니 눈매로 분위기를 파악할밖에. 그렇게 무고한 인생들의 첫발을 망쳐놓은 시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심지어 길거리에서 담배 피는 이를 만나면 대부분이 노년층이었다. 서둘러 아기 얼굴을 가려봤자 불쾌하고 불안했다. 분했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배려와 양보만 바라는 병약함이 고깝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만약 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꼭 가서 도와줄거야.
나는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막 떠먹은 된장국을 한 술 더 떠먹었다. 우리는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고 각자의 백팩에 식료품을 눌러 담아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편은 내게 혹은 누구에게도 실수하지 않았고, 얼굴 붉힐 일은 더더욱 없었다. 한낮의 지나간 장면일 뿐이었다. 코 끝이 찡했다. 이해를 구하고 싶었구나. 내 발걸음의 중량과 어색하게 머무른 공기를 마음에 담아 놓고 있었구나. 남편은 사과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해명을 마친 후에는 종이박스에 환경부담금을 매기는 게 어떨지, 박스 재사용과 수거 노동력에 합리적 대가가 돌아가게 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기업의 참여와 정부의 필수적 개입에 대하여 등등의 관련 생각을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실천 가능할 일들을 논의하는 것으로 식탁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나는 우리 아기가 자랄수록 식탁의 대화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 주위에 머문 달라진 공기의 결을 감지하고 그 장면을 기억하고, 아이에게 내 태도와 선택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어쩌면 부모로서 사과를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길 테니까. 그때는 지금처럼 저녁의 식탁을 이용하면 되겠다. 남편을 보니 그럴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