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스텔라 Jan 05. 2021

죄 짓는 어른

오래도록 묵혀둔 불편함이 한꺼번에 터졌다

선생님은 하늘같이 존경하고 떠받드는 게 도리라고 했다. 성희롱과 분풀이, 빈정과 욕설을 일삼는 교사의 기억은 누구나 있지 않나. 언젠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죄수를 관리감독하는 일제 형무소의 구조가 일반 초중고등학교 건물의 구조, 형태와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 열 맞춰 절을 하고 날을 정해 존경해요 감사해요를 의무화하는 관계는 한국과 일본에서 사람을 제어할 때나 이용하는 군대식 문화다.


별개로, 내게는 존경하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있다. 20년 넘게 가까이 지내왔지만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챙긴 일은 몇 년에 한번 꼴로, 그마저도 전화 통화가 다다. 감사의 날을 기릴 만큼, 그들이 나를 위해 삶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거대한 희생을 하거나 치명적 보탬이 된 적은 없었고 내게 굳이 그럴 이유도 없다. 누가 교사였어도 모든 학생을 그렇게 대할 초인적 능력이 없을 터였다. 그저 괜찮은 어른이자 꽤 믿을 만한 인생 선배가 되어 준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스쳐간 교육자들은 여럿이겠으나 극히 일부만 존경의 대상이었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들 말고도 멘토로 생각하는 이가 몇 더 있다. 종사하는 업종이 교육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로, 남다른 인품과 덕망으로 선한 영향을 끼치는 유형이다. 그 친절과 사려깊음은 누가 봐도 닮고 싶은 성정이고, 옆에 있는 누구든 위로를 얻어가게 된다. 이상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매년 날을 정해 감사인사를 받거나 대단한 존칭을 가져가지 않는다. 세상과 사람에 들이는 진심, 맡은 바에 쏟는 열정에 비해 노후가 보장되는 삶도 아니다.

스승의날이 예전같지 않다고 아쉬움 섞인 소릴하는 교사의 말을 들었을 때 속이 메슥거렸다. 본인이 원해서 쟁취한 일을 직업 삼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감사까지 당연하게 얻어가려는 오만이 징그러웠다. 자아성취에 더불어 안정적인 근로여건과 사회적 위치와 권위 등을 수반하는 공무직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성과겠지만, 그 개인적 성과가 모든 어린이에게 존경받을 일은 아니다. 성희롱과 분풀이, 빈정을 일삼는 교사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호봉은 계속 오르고, 따로 더해지는 수당과 상여금, 복리후생비가 적지 않음을 모르지 않는다. 툭 까놓고, 그 일이 3D 직업은 아니지 않나. 전인격적인 보살핌을 통해 피폐해진 아이의 정서를 구원해낸 미담 제조기 교사는 드물다. 그저 직업인으로서, 직업인답게, 기본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직업적 윤리를 지키면 그뿐이다. 부여된 사회적 계급과 봉급은 합리적이며 충분한 보상이다. 뭔 감사 데이까지 챙겨먹겠다고.

공무원, 연장자 등의 실체 없는 신뢰와 존경 등. 오래도록 묵혀둔 불편함이 한꺼번에 터진 것은 학대받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권위와 폭력과 근무태만 아래에 놓인 아이들이 자꾸 뉴스에 떴다. 며칠 내내 홀로 방치돼 죽은 아기, 학대에 못이겨 건물 외벽을 타고 도망친 아이, 여행가방에 갇혀 고문 당하다 죽은 아이, 냉장고에서 발견된 아기, 어린이집 교사의 상습 폭행을 당한 5살 짜리들.... 정답을 안다는 어른들과 사회의 안전과 정의를 구현한다는 경찰과 아동보호기관과 기타 관련부서 공무원과 단골의 편의를 봐준 소아과의사와...... 당연히 존경받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가해자였다.


한때는 가을을 타는 거라고 에둘렀지만 쉼 없이 솟구치는 울음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 창밖을 보다가 밥을 먹다가 납작 엎드린 줄 알았던 슬픔이 틈만 나면 일어서서 심장에 불을 냈다. 양치를 할 때마다 치약을 삼켰다. 욕실은 가장 취약한 장소였다.

거뭇거뭇하게 멍든 피부에 기아 수준으로 마르기까지 한 아기를 학대 현장으로 되돌려보내고 또 다시 돌려보낸 경찰과 소아과전문의, 그리고 아동기관. 그럴 거면 왜 입양했냐고 양부모에게 묻고 싶은 만큼 그럴 거면 왜 그 일을 택하고 하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아기를 죽이냐고 묻고 싶었다. 세상을 위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며 숭고한 판타지에 젖어있었을지 모르지만, 무능하고 무감각했다. 당신 삶을 내던져가며 숭고한 희생을 보여달라는 게 아니라, 영웅적 기질을 발휘하라는 게 아니라, 그저 자리값을 기대했을 뿐이다.


절박하고 취약한 약자를 살리라고 마련된 엄격한 자리들. 아동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직업군. 온 힘을 다해 그 직업과 위치를 쟁취한 사람들은 순수한 열망을 품은 수많은 후보자를 제쳤고,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던 생의 길목을 가로막았다. 습관적으로, 생명 구제를 부인했다. 사건을 거쳐간 모든 담당자는 살인 방조로 처벌되어야 하고 어떤 유사 일도 할 수 없게 영구 제명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존경과 숭배를 원하는 어른들, 아니 세상 모든 어른들이 어린 생명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다. 미안하다는 말이 허황되고 무책임해서 차마 종이에 옮겨 적을 수조차 없었다. 고작 한 장을 채우기까지, 진정서를 쓰는 일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가의 이전글 바삭한 겨울에는 치킨이 춥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