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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텔라 Feb 16. 2021

무얼 줘도 아깝지 않을 당신께 코로나를 주었네

겨우 만난 한 명의 친구. 코로나는 거기 있었다.





안녕, 잘 지내니? 우리는 코로나에 걸렸어.


명료한 문장이었다. 그럼에도 의심했다. 뭐라고? 무슨 말이지. 첫 문장에 얼어붙어 두번째 문장으로 쉬이 넘어가지 못했다.


일흔이 넘은 카트린과 여든인 에드몽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했다. 안부차 친구 집을 방문했고, 그로부터 이틀 뒤 친구의 확진 판정 소식을 전해들었다. 친구도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몰랐으니 탓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더러 걱정 말라고 했다. 좀 피곤하고 감기 증세가 있을 뿐이라고. 프랑스는 감염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일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당장은 집에서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다.


프랑스는 지금 하루 2만 명씩 신규 확진자가 나온다. 연말 연초라고 젊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모임을 벌이는 실황은 익히 듣고 보아서 알고 있었다. 코로나가 발견된 이래, 코로나 시절 어느 구간에나, 사람들은 내일이 없을 것처럼 마스크를 끼지 않고 지인 파티를 벌여왔다. 그곳에 사는 몇몇 지인들이 실제 그러하다고 알려주었다.


프랑스인, 한국인. 국적과 사는 곳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 남편에게는 최초의 확진자였다. 소중한 사람의 감염. 그것만이 의미였다.


코로나가 터지기 바로 몇 개월 전, 우리집에 모여 와인을 마시고 음식을 나눴다. 손주나 다름없는 아기를 보겠다며 열 시간 비행 거리를 한걸음에 날아오실 만큼 열정과 사랑이 대단한 분들이었다. 나중에 불쑥 커 있을 아기를 상상하며 웃으셨다. 그렇게 서울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다시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는 날, 공항철도 열차 문이 닫히려는 순간에 눈물을 훔치는 카트린 할머니를 보았다. 우리가 약속하고 다짐한 것처럼 1년 늦어도 2년 안에는 다시 만날 텐데 할머니도 참. 그렇게 우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땐 이럴 줄 몰랐으니까.


카트린은 40년 3월 생이다. 작년 3월에는 케이크 하나 없이 보내는 생일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겠다며 생일 다음 날엔가 그날의 감상을 보내주셨다. 그 즈음 바이러스는 유럽 전역에 창궐하기 시작했고 국경을 가로지르던 기차는 운행을 멈췄다. 매년 그러했듯 스위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설산의 풍경을 만끽하던 카트린과 에드몽은 가까스로 막차를 타고 운 좋게 프랑스 자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가짜뉴스와 가설이 난무하고 실험과 공포에 질겁한 분위기에서 며칠 뒤 생일을 맞았다. 카트린은 문밖으로는 아예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았다. 집 안 작은 테라스에서 화분의 꽃이 피고 지고 계절이 바뀌었지만 외출은 끝없이 제한적이었다. 그렇게 일 년. 지겹게 우울한 시절을 보내고 다음 달이면 또 다시 두 번째 생일을 맞는다.


감염 소식을 들은 날,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가슴에 차가운 바람이 차올랐다. 숨이 가빠지고 흉부가 파르르 떨렸다.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흐느꼈다. 전염병 중 치사율이 낮은 편이라지만 노인에게는 아니었다. 느린 걸음으로 광량의 변화를 읽으며 오랜 시간 산책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배움과 자극에 활짝 열린 성정에 아이처럼 눈이 반짝이는 분들이다. 후유증이 남아서는 안 된다. 그날 열차 문이 닫히기 직전에 본 얼굴이 마지막이어서는 안 돼. 명치가 저릿저릿했다. 양팔에서는 쥐가 났다. 두 사람을 지켜주세요. 어깨를 감싸고 기도했다. 그렇게 1년을 조심하고 절제했는데. 할아버지는 며칠 뒤면 백신을 맞을 예정이었는데. 대단한 모임에, 집회에 나간 적도 없는데. 단 한 명의 친구를 방문했다가 코로나를 만나다니.


“엄마, 이번 주말에 또 사람 만날 거야?”


조바심이 나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엄마는 시국에 진지하지 않은 편이다. 주말마다 나들이를 가고 사람을 만났다. 모임 인원 제한을 지키고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며 꽤 당당하게 말하지만, 목욕탕에 가고 찜질방에 가고 관광버스에 올랐으니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확진자 수가 손에 꼽히는 지방이어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빠는 엄마가 이미 항체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농담을 했다.


엄마에게 카트린과 에드몽이 코로나에 감염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곳과 이곳이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매주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가자나. 이제 곧 아흔인 분들이 적적하겠다고 챙겨주러 가는 거잖아. 정작 엄마는 돌아다니고 외식하고 매주 모임하면 어떡해.” 처음 하는 말도 아니었다. 스마트폰 너머 부산한 바깥 소음이 들릴 때마다 걱정되고 신경질이 나고 화가 돋고 부끄러웠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정하고 멀쩡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마 때문에 코로나 걸리면, 나 원망할 거야.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가족이 원망할거야. 늘 놀러다녔던 엄마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건 어쩔 수 없어."


불편해진 엄마는 풀이 죽었다. “그래. 그렇겠지… 코로나가 그래서 문제야. 사람 간에 불신을 낳고…” 아니, 그거 아니야 엄마. 그 말이 아니야.


죄 없는 사람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밀어내는 그런 류의 혐오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적 경고에 개의치 않았던 거, 다른 사람들이 절박하게 불편을 감수하고 무료함을 견뎌내고 있을 때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것, 사활이 걸린 피치못할 상황이 아님에도 ‘균을 옮기거나 옮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기꺼이 외부에 노출된 것. 그 가능성을 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괜찮다’고 말한 것. 그 모든 오만함에 대한 것이었다.


홀로 자유롭겠다고 가족마저 도박에 걸려들게 하면 안 되잖아. 나 진짜 원망할 거야. 엄마가 그깟 것들 참지 않다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병 옮기면, 엄마 그거 다 일부러 한 거야. 울음이 차올라서 말끝이 흐려졌다.


서울과 파리를 왕래하는 항공편이 줄어들면서 국제우편 요금은 배로 뛰었다. 적잖이 당황한 카트린 할머니는 우편물이 1킬로그램만 넘어도 감당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끝내 서울로 부치는 편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부를 묻는 엽서는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잦아졌다. 칠십 넘도록 내 평생 이렇게 이상한 시절은 없었어. 너희도 이럴수록 기운 잃지 않아야 해! 그곳보다 훨씬 안전하고 협조적인 사람들과 살고 있는 우리를 할머니는 매번 손글씨로 격려하셨다.




보고 싶어요. 견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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