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할 것인가. 손절당할 것인가.
변하지 않는 인생 진리가 있다. 그것은 필멸에 대한 것과 변함에 관한 것이다. 인류는 시작부터 죽음과 늘 함께 있었다. 그것을 외면하고 사는 이유는 설마라는 안일한 생각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것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또렷이 보아야만자신을 점검하고 옷매무새를 바르게 고칠 수 있다. 죽음도 그러하다. 지긋이 마주 보고 서 있어야만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바르게 고쳐가며 살 수 있다. 시간은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그 찰나의 시간들을 어떤 순간과 의미로 채워갈지는 스스로의 선택과정이다.
깊은 숙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을 상기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깨어있는 자들이다. 예수도 우리에게 늘 깨어있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하루 24시간이 눈만 뜨면 주어지는 것에 감사함을 모르는 오만한 동물이 나는 인간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나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뭘 잘했다고 뭐가 이뻐서 금보다 더 귀한 시간을 그것도 온 우주의 에너지를 담아서 전해주냐 말이다. 노력하지 않고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고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시간은 세상에서 끌어모은 어떤 욕망의 결과물들보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시간을 금보다 귀하게 써야만 하는 이유다.
우리가 창조주라고 생각해 보자. 내가 만드는 세상을 어떤 것으로 채우고 싶은가. 불의하고 어둡고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것으로 채우고 싶은 신은 없을 것이다. 우리도 그와 같다. 내 안에 신성이 자리함을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들은 스스로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할 창조주의 사명을 태어남과 동시에 부여받았다. 이렇게 대단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들인데 그 귀한 시간을 귀하다 생각도 안 하고 허송세월하듯 무의미한 일상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거울 한번 쳐다보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사람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외면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도 이렇게 수시로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점검해야만 하는 데 내면의 모습은 대체 어디에 비춰봐야 할까. 종교도 내면 성찰의 도구가 되겠지만 입과 발로만 종교생활에 의지한다면 그건 아니겠고. 내면 거울로 책을 선택하는 건 어떨까. 이왕이면 묵직했으면 좋겠다. 근원적 물음에 답을 찾게 만드는 책이면 더 좋겠다. 자발적 등에가 되어 아테나이인들의 무지를 건드려주던 소크라테스처럼 뒤통수 도 한 대씩 때려주면 좋겠다. 정신 차리라고 말이다. 네 모습이 아직도 그렇게 잘 난 것처럼 보이냐고 너 자신을 좀 알라고 다그쳐 주면 좋겠다.
시간이 누적되어 삶이 묵직해질수록 우리는 한낱 필멸의 인간이며 죽음 앞에 감히 고개 들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겸손을 배워간다.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들에서 배우는 하나의 가르침은 교만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 어떠한 신도 인간의 교만을 눈감아주지 않는다. 그 대가는 두려울 정도로 아프고 현타가 올 정도로 따끔하다.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고 교만한 존재인가는 시간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시간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들에 시간을 낭비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수다와 모임과 시끌벅적한 이벤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는 것이 일상이니 자신을 돌아보고 죽음을 숙고할 시간이 어디 있으랴. 당연히 감사는 뒷전이고 늘 핑계와 동반하고 살아가기 바쁘다. 그들의 모습 속에 서 과거 내 모습도 존재했음을 알기에 타산지석으로 여기며 또 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 삼는다.
우리는 태어났기 때문에 그냥 사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운명에 따라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끊임없이 찾으며 죽는 순간까지 답을 찾는 과정으로 성장하며 살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남은 시간이 너무나 짧다. 그것의 사라짐을 알기에 더 아름답고 귀하다. 그 시간을 함부로 넘나드는 사람들을 나는 손절할 것이다. 남의 시간을 아껴주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도 아끼지 않는다.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더라도 알지 못한다. 손절의 이유는 단 하나이다. 깨어있지 않음이 깨어있고자 함을 방해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