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평범함을 열렬히 사랑해 왔고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때때로 그 평범함에 질식할 것 같은 때가 있다. 저마다의 짙은 색깔을 꼭꼭 씹어 삼킨 이들을 마주할 때면 어쩐지 나의 옅음이 초라해 보인다. 나는 애초부터 이렇게 시시한 사람이었나?
최초의 꿈을 상기시켜 본다. 기억 저편 깊숙이 자리 잡은 꿈. 어쩌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꿈. 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었지. 그것이 내가 가진 최초의 꿈이자 마지막 꿈이었다.
볼품없는 그림 솜씨로 12색 크레파스로 그려낸 삽화를 곁들인 나의 동화들을 꺼내 본다. 지금에서야 빤하고 유치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색이 번질 정도로 꾹꾹 정성스레 눌러쓴 그 마음이 부럽다. 나는 무언갈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견고함 같은 것 말이다. 재클린 윌슨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고 <클로디아의 비밀>을 인생 최고의 책으로 이야기하던 나는 이제 없다. 일기 숙제는 늘 빼 먹어 혼나면서도 글쓰기 교실에 가서 원고지를 빼곡히 채우던 나는 없다.
글쓰기 교실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도 정말 글 멋있게 쓰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느꼈고 안타깝게도 나는 글로 밥을 벌어 먹을 만큼 큰 재능이 없음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했다. (겨우 초등학생이었는데도 나는 스스로에 대해 냉철했다.)
그렇게 작가를 꿈꾸던 어린이는 자라나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관심사의 전부인 청소년이 되었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는 대로 성인이 되었다. 흘러가는 계곡에 몸을 맡긴 낙엽처럼 떠내려왔다. ‘평범하게 살기도 어렵다’는 세상 속에서 평범함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나는 많이 옅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딱히 취향이랄 것도, 취미랄 것도, 쏟아낼 열정 같은 것도 없는 사람.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은데 무엇이 좋고 무엇이 싫은지 모르는 사람.
지금도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저 옅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가 될 자신은 없지만, 그저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는 낙엽이고 싶지는 않다. 계속 고민하며 살고 싶다. 비록 내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나의 취향을 탐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 하다못해, 누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어물쩍하는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작가를 꿈꾸던 그 어릴 때의 짙은 나를 자주 꺼내 주어야겠다. 그때의 두근거림을 잊지 않도록, 부지런히 먼지를 떨어내고 닦아 주어야지.
있잖아. 나는 초록색을 제일 좋아하고, 요리를 즐겨 해. 멋들어진 글을 쓰진 못하지만, 솔직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어떤 직업으로 삶을 꾸려나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나의 존재가 할 수 있는 한 무해하다면 좋겠어. 나이가 들어서도 음악을 즐기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